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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이슈가 되는 발칙한 주제들

영국인 시험 채점자가 놀란 동양인의 단어 실력

by 영국품절녀 2013. 7. 23.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오늘 한국 언론에 우리의 영어 교육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나왔더군요.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기사가 있어서 제 경험에 비추어 한 번 소개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기사의 요지는 서울 강남의 사설 영어학원에서 한국 초등 5 및 중2 학생들이 공부하는 영어 단어가 같은 연령대의 영국 학생들에게는 생소하거나 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토플시험에 대비하는 영어 단어이므로, 일반 중학생들의 단어 실력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요.) 그래도 한국 영어 교육 시장이 너무 과열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쭉~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린 자녀들의 영어 단어 실력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하실 수 있을 거에요.

 

(출처: 경향신문)


어떠신가요? 저도 영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지만, 한국 초/중학생들의 영어 단어 실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과연 이런 단어들이 초등 및 중학교 수준에 과연 필요할까' 라는 것이었어요. 이런 고급 단어를 이 시기에 배운 초/중학생들은 고등학교 때에는 이 보다 훨씬 수준 높은 영어 단어를 기계처럼 암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단어들을 한국 초등 및 중학생들이

회화나 작문에서 자유자재로 사용이나 할 수 있을까요??

 

품절녀님의 블로그를 꾸준히 구독하시는 분들께서는 저와 품절녀님이 한 달에 1~2회씩 IELTS 영어시험 스탭으로 일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짬이 날 때 마다 종종 저는 시험 채점하는 영국 원어민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요. 전에 영어 작문(Writing)을 채점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IELTS 시험 감독만으로만 경력이 10년 이상 된 자신이 보기에 동아시아 학생들의 영어 작문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 학생들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작문 답안지를 작성해서 놀랄 때가 많아. 그런데 문제는 단어는 고급인데 문장 수준 자체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지.

 

(출처: edudemic.com)

 

비단 중국 학생들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중국 학생들이 대다수라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 한국이나 일본 학생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저의 석사과정 시절, 마침 교환 학생으로 온 일본인 여학생을 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일본에서 꽤 유명한 명문대에 재학 중이던 그 여학생이 그 당시에 보던 책은 일본에서 가져온 꽤 두꺼운 영어단어교재였습니다. 단어 암기하는 방식도 한국 학생들과 딱히 달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즉,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쓰면서 외우고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비추어볼 때, 외국어 공부 자체는 암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어 자체만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 같습니다.  품절녀 님의 말을 들어보면, 영어 수업 시간에 문장은 만들지 못하면서도 어려운 단어 자체만 알고 말하는 사람들은 중국, 일본, 한국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일부 단어들의 경우에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도 모를 때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단어교재에도 예문이 함께 나오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문장의 예문으로는 그 단어가 품고 있는 뉘앙스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한 단락이나 그 문장의 전후 문맥을 통해 그 단어의 뜻이 보다 명료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위의 단어 중 영국 초등학생이 모르는 단어인 fatigue라는 단어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그 뜻은 바로 옆에 나와 있듯이, "피로" 입니다. 초등학생 5학년 정도가 되면 한국어 "피로" 의 의미 정도는 대략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또래의 한국 학생들이 한국어의 "피로" 와 "피곤" 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아마 거의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하물며 성인들에게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두 단어의 정확한 의미와 용례를 알려면 국어사전을 뒤적거려야 할 것입니다. 즉, 한국어의 뉘앙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fatigue란 단어를 기계적으로 "피로" 라고만 암기시켜 보았자 그들이 이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으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상 그들에게 죽은 단어나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 아예 모르는 것 보다는 낫지 않느냐라는 반문에는 할 말은 없습니다.

 

또 한가지 제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언어를 막론하고 어휘라는 것이 반복적으로 일상생활 혹은 학교 생활에서 사용되어야 확실하게 기억되고, 그에 따라 상황에 맞추어 올바르게 표현됩니다. 그런데 이들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수준 높은 단어들을 활용할 기회는 별로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에 하나 이 학생들이 조기 유학을 간다고 하더라도, 이런 단어 자체를 모르는 또래의 영국 혹은 미국 학생들과 대화 시 난감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source)

 

영국에서 공부하는 입장이라 조심스럽게 글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동안 경험을 통해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도 있지요. 저와 친한 후배 중에, 영국에 조기 유학 온 친구가 있습니다. 중학생 때 영국에 온 그 친구는 영국의 최고 명문대 중 한 곳에서 학부를 마쳤으며 현재는 박사 과정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굉장히 잘합니다. 언젠가 한 번 한-영, 영-한 동시통역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랄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그 비결을 물어보니, 영국에 와서도 한국 서적을 꾸준히 읽어 왔다고 했습니다. 즉, 나이 대에 맞는 한국어와 영어 학습을 동시에 병행하다 보니 균형 잡힌 언어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죠.

 

우리말도 아직 잘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부터 가르치는 부모들이 과연 자녀들에게 올바른 언어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의문이 듭니다. 결국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 깨닫는 날이 올 거에요. 영어 교육의 광풍 속에 올바른 한국어 교육 및 학습이 설 자리를 잃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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