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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

영국 로얄 웨딩 주례자에게 부활절 성찬을 받은 유일한 한국인 부부

by 영국품절녀 2011. 5. 5.


저번 주 부활절을 앞둔 목요일은 “Maundy Thursday” 라고 해서, 발을 씻겨 주는 목요일이었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던 세족식에서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날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세족식을 한다고 하길래 귀찮아 하는 신랑을 끌고 가 보았지요. 해가 길어져 7시가 지났는데도 밖은 아직도 밝더군요. 작년과 마찬가지로 성당 마당에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빈 무덤을 재현해 놓았는데요. 이번에는 규모 면에서 작년보다는 훨씬 조그맣게 만든 것 같네요.


                                부활절 기간 동안 캔터베리 대성당 앞에 무덤과 Eater Garden이 있었어요.

사진을 찍자 마자 부지런히 입장했는데요, 다행이 일찍 가지 않더라도 자리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성당 입구에서 오늘의 순서지를 나누어 주면서, Good evening이라고 인사를 해주시고, 예배당 안의 안내 요원들이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지정해 주더군요. 입장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 영국인이고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오랜만에 제가 영국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세족식 및 성찬 예배 순서와 합독해야 할 기도문과 성가곡이 들어 있어요. 캔터베리 대성당의 예배는 
        2시간으로 다소 길지만, 워낙 앉고 일어서고, 따라해야 할 기도문과 성가가 있어서 지루한 줄 모르겠어요.

 

7 27분 정도 되자, 진행하는 성공회 신부님께서 오늘 순서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고, 시간이 되자 성가대 대원들이 미사 개시를 알리는 성가(Opening Hymn)을 부르면서 입장했어요. 이 때 십자가를 든 신부님과 그 뒤로 사제 및 사제단 및 성가대가 입장했어요. 예전에 크라스마스 캐롤 서비스 때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운이 좋았던 점은 제가 앉았던 자리가 성가대석 바로 옆자리였기 때문이에요. 오늘 행사에 참여했던 성가대에는 여성이 없어서 소년들이 소프라노를 맡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안 것은 남자 카운트 테너도 있다는 점입니다. 약간 무뚝뚝하게 생긴 아저씨가 고음을 내는데, 정말 아름답게 들렸답니다. 그리고 성가대 앞줄에서 노래를 열심히 부르던 소년들의 모습도 너무 귀여웠지만, 꽤 진지하게 노래 부르는 통에 인상에 많이 남더군요. 가끔씩 웃음을 참으려고 이를 깍 무는 모습에 저도 웃음이 나오더군요.

 

        이건 이번 로얄 웨딩 성가대의 모습입니다. 부활절 예배의 성가대도 딱 저렇게 어린 소년들과 남성들이였어요.

                                             (출처: BBC royal wedding capture)

 

오늘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족식성찬식인데요.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실까…' 생각했었는데요. 미리 내정된 5~6명 내외의 사람의 발을 씻겨 주는 것으로 세족식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성찬식(천주교에서는 성체성사라고 합니다)은 모든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저희도 순서가 되자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는데요, 캔터베리 대주교님께서 직접 영성체(빵)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성체를 먹은 뒤, 다른 신부님이 금색 포도주 잔에 가득 담긴 포도주를 “Blood of Jesus Christ” 라는 말과 함께 입에 대주었어요. 인상적인 것은 교회에서는 각각의 잔에 따로 나누어 주는데요, 이 곳에서는 하나의 잔에 가득 담고 나누어 마시더라고요. 포도주를 조금 마시고 난 부분은 수건으로 닦았습니다. 포도주가 무척 달고 맛있었어요. ^^


                  이번 영국 왕실 결혼식 주례를 맡으셨던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님이 주신 영성체를 
             받아서 먹었습니다. 유명한 분을 직접 앞에서 뵈니깐, 좀 떨리던데요. ㅎㅎ
(출처: www.kansascity.com)

                                       
 

                             제가 먹은 영성체가 딱 저렇게 생겼고요.  저희는 무릎을 꿇고 받았어요.

                                                         (출처: Google Image) 

 

캔터베리 대성당의 미사의 인상적인 점 중의 하나가 파이프오르간입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반주에 성가대원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제가 중세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난답니다. 특히 오늘 성가대의 찬양은 교회를 그래도 제법 오래 다녔다는 제가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15~17세기 노래들이었고요, 그나마도 대부분 라틴어로 된 찬양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몰라도 참 평화롭게 들렸습니다. 오는 길에 나름 대학 합창단 출신 남편이 아는 척을 했어요. 원래 가톨릭이나 성공회의 미사에 나오는 라틴어 찬양에는 순서가 있다고 하더군요. Kyrie(주요), Gloria(영광), Benedictus(찬미 받으소서), Dona Nobis Pacem(자비를 베푸소서), Credo(사도신경), Agnus Dei(하나님의 어린양) 등이 있는데요. 오늘의 성가대 찬양은 Kyrie Credo를 제외하고 충실히 따랐다고 하더군요. 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름대로 미사 찬양의 규칙인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성가대의 찬양이 끝나자 모든 불이 꺼지고 성가대원들이 퇴장했습니다. 저는 끝나나 보다 했는데, 설교석에만 불이 켜지더니 목소리 좋은 신부님이 성경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말씀이 마치자 비로소 미사가 마쳤습니다. 나가는 길에 사람들 일부가 교회 지하 쪽으로 가길래 따라가 보았더니 자정까지 이어지는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희는 저녁도 먹지 않았던 터라 잠시 둘러 보고 나왔습니다. 갈 때 투덜대던 울 신랑도 오면서는 잘 온 것 같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어요. 캔터베리에 있다 보니 영국 문화 체험을 제대로 한다는 느낌을 다시 받는 하루였어요. 또한 영국 왕실 결혼 주례자이셨던 분께 직접 부활절 성찬을 받은 유일한 한국인 부부였다는 것도 추억거리가 되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