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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드라마 정도전, 이인임의 퇴장과 국제 관계

by 영국품절녀 2014. 3. 23.

안녕하세요? 품절남입니다. 품절녀님의 글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을 듯 합니다. 오늘 저희 동네 사는 한국인 가족과 점심식사를 했는데요, 그 분들은 영국 오시기 전부터 저희 블로그를 애독해주셨는데요, 품절녀님이 빨리 블로그에 복귀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봐도 제 글은 조금 딱딱하고 재미없네요. 저 역시 품절녀님의 빠른 복귀를 기다리니 조금만 더 인내(?)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포스팅은 결핵에 관한 글이었습니다만 도입 부분에 요즘 인기 주말 드라마인 "정도전" 에 관한 글을 간단히 올렸습니다. 어제 에피소드를 보니 고려말 최고 권신이었던 이인임이 퇴장을 했는데요.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제 곧 명나라와의 영토문제로 신진사대부와 군부와의 갈등이 벌어질 듯 합니다. 이인임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군부와 신진사대부지만 중국을 보는 관점은 근본적으로 달랐던 모양입니다.

 

 

드라마 정도전은 극 초반부터 이인임으로 대표되는 권문세족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기득권층의 모습을 자못 현실감 있게 그려왔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이인임의 대사 속에는 그 당시 기득권층이 – 물론 모든 권문세족이 드라마 속의 이인임 같지는 않겠지만 – 자신들의 탐욕에만 몰두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국정운영에 대한 논리와 관점이 있다는 것을 대변합니다. 특히 이인임이 종종 던지는 촌철살인의 명대사들은 오늘날 우리들도 쉽게 반박할 수 없게 하곤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곧 주요 테마가 될 요동 정벌과 관련해서 이인임은 외교에 관한 한 꽤 괜찮은 식견(드라마 4회)을 이미 보여줍니다. 명나라와 북원(몽골)의 대립이 계속되는 것을 바랐던 그는 최영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두 국가의 갈등이) 장기화 정도가 아니라 굳어지길 원합니다. 중국을 잘라 북엔 원 남은 명, 고려가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중국이 분열됐을 때 우리는 강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통일되자 한나라에 (고)조선, 당나라에 고구려가 망했지 않습니까... 명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면 우리는 영원히 조공이나 바치는 변변찮은 나라가 될 겁니다.

 

즉, 고려가 중국의 양대 세력 사이에서 균형추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강대국 사이에서의 고려라는 국가의 역량을 극대화 시키겠다는 말입니다. 이인임이 고려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이러한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되었던 것과 같이, 그의 권력 기반은 고려라는 국가였습니다. 고려라는 국가의 안위가 주변 강대국에 좌지우지 되는 것 자체가 이인임의 권력에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위의 이인임의 대사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숨기면서도 반대파를 설득하고 자신의 국정 철학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수사(레토릭)으로도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드라마속의 이인임의 발언을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의 인식과 당시의 국제 정세가 현재의 한국 상황에 쉽게 투영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대국 – 미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 - 그리고 북한의 존재까지 오늘날의 동북아시아 국제정세는 고려말 보다 더욱 복잡하지요. 그만큼 이인임의 고려의 균형자론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추후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한국의 외교가 전적으로 균형자론을 따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인임이 정치 무대에서 퇴장된 이후의 이야기는 요동정벌론과 위화도 회군이 될 것입니다. 아직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족의 명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던 대다수 사대부들과 영토 회복에 강경한 의지를 보이는 군부 사이에는 애초부터 정치적 타협점이 존재하지 않을 듯 합니다. 만약 이 당시 이인임이 이 문제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재미있는 역사의 가정이 될 것 같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이인임이 어느 정도의 식견을 가진 정치가였는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선 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초, 고려역사를 정리할 때 부정적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이지요. 다만 드라마 속의 이인임은 권력과 재물을 탐하면서도 스스로의 관리에는 엄격한 현실주의적인 정치가로 그려집니다. 이런 이유로 악당 캐릭터였음에도 오히려 주인공인 정도전 이상 시청자들이 관심을 받아온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젊은 시절 혈기 넘치던 이상주의자였던 정도전을 냉정한 현실정치가로 조련한 인물이 바로 이인임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드라마 "정도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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