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오후,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6학년 마지막 체육대회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린 건 환한 웃음이 아니라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엄마, 체육대회가 공정하지 않은 게 너무 싫어." 저는 그 한마디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이번에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두 아이의 눈물을 마주한 날. 오늘 이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몰랐던 아이 마음
사실 저는 체육대회를 가볍게 생각하는 쪽이었습니다. 이기든 지든 다 같이 뛰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비기면 비긴 대로 훈훈하고, 누가 울 일도 없으니 좋은 거 아닌가. 솔직히 그런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6학년 딸은 어젯밤 아홉 시도 안 돼서 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반 계주 대표로 뽑힌 뒤로 쉬는 시간마다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3학년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에는 같은 반에 전교에서 제일 빠른 아이 두 명이 있어서 계주 대표에 뽑히지 못했는데, 올해는 당당하게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일주일 후 체육대회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체육대회가 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큰 의미라는 걸, 저는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3년 전, 아이가 처음 느낀 공정성의 무너짐
딸의 전화를 듣다 보니 3년 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3학년이던 딸은 백군이었고, 200점 차이로 이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행자가 갑자기 "청군 응원이 멋졌다"는 이유로 200점을 줘서 비기게 만들어 버렸다고요.
저는 그날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그래도 비겼으면 됐지 뭐~" 하고 넘겼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는 3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싸해졌던 것, 열심히 뛴 게 아무 의미 없어진 그 느낌, 어른이 마음대로 점수를 바꿔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던 것. 저한테는 지나간 에피소드였지만, 아이한테는 처음으로 "세상이 불공정할 수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줄 걸"
승패를 어른이 설계하면 벌어지는 일
그리고 오늘, 같은 진행자가 다시 왔습니다. 이번엔 딸이 청군이었고, 백군이 200점 앞서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계주만 남은 상황. 계주 이기면 200점이니까, 청군이 이겨도 비기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계주 도중 백군 마지막 주자가 뒤처지자 바톤을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포기해 버린 거죠. 청군 주자는 끝까지 달려서 결승선을 통과했고, 아이들은 당연히 비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더니 "청군이 끝까지 뛰었으니 300점"이라고 했답니다. 원래 200점짜리 종목인데요. 갑자기 청군이 100점 차이로 이겨 버렸습니다.
딸이 말하더군요. "엄마, 이긴 우리 팀 애들도 황당해했어. 백군 애들은 울었어. 아무도 안 기뻐했어." 이긴 쪽도 진 쪽도 찝찝한 결말. 3년 전에는 억지로 비기게 해서 욕을 먹었으니, 이번엔 한쪽을 억지로 이기게 만든 것뿐이었습니다. 방법만 바꿨을 뿐 본질은 같았습니다. 점수를 어른 한 사람이 마음대로 쥐고 흔든다는 것.
영국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른 이유
딸의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문득 영국에서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영국에서 살면서 알게 된 여름 학기마다 열리던 Sports Day. 하우스별로 팀을 나눠 뛰고, 이기면 트로피를 받고, 지면 "다음에 하자"로 끝나던 그 행사입니다.
영국은 시스템, 규칙 엄청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어른이 점수를 조정하는 장면이요. 규칙대로 경기하고, 결과가 나오면 그걸로 끝. 지는 팀 아이들이 속상해하면 선생님이 등을 두드려 주는 것까지가 어른의 역할이었습니다. 결과를 바꿔 주는 게 아니라,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는 것. (원래 우리도 이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오늘 딸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그 차이가 왜 중요한지 알 것 같았습니다.
계주가 사라진 아들의 체육대회
딸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먹먹했는데, 퇴근 후 집에 와 보니 이번에는 3학년 아들이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엄마, 이번에 우리 체육대회에서 계주 달리기가 없어졌어. 안 하기로 했대. 왜 그런 거야?"
작년에 계주 대표에 뽑히지 못해 속상해하던 아이였습니다. 같은 반에 전교에서 제일 빠른 아이가 두 명이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올해 당당하게 계주 대표로 이름이 불렸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일주일만 기다리면 되는 거였습니다. 매일 "며칠 남았어?" 세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계주가 사라졌습니다. 아이에게 명확한 이유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요즘 우리 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들이 문제야." 소음 민원, 안전사고 걱정, 학부모 반응. 어디서부터 무엇이 작용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가 몇 달을 기다리고 연습한 무대가 어른들의 사정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차라리 계주 달리기를 안 할 예정이었다면, 애초부터 계주 대표를 뽑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들이 "왜 그런 거야?" 하고 물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비기게 하는 것도, 없애 버리는 것도 답이 아닌 이유
최근에 "체육대회는 비기게 해야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일부 MZ엄마들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네요. 저는 승패는 있어야 하고,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지는대로 경험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오늘 하루 참 힘드네요. 딸은 점수를 마음대로 바꾸는 어른 때문에 상처받았고, 아들은 기회 자체를 빼앗긴 채 울고 있었습니다. 억지로 비기게 만드는 것, 억지로 이기게 만드는 것, 아예 종목을 없애 버리는 것. 방법은 다 달랐지만 본질은 하나였습니다. 아이들의 경험을 어른이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는 것.
아이들이 상처받는 건 지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때, 자기가 준비한 무대가 이유 없이 사라질 때 상처받는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전부 알아챕니다. "이건 진짜가 아니다"라는 걸요. 그 기억은 3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약하지 않습니다. 공정하게 겨루고,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아쉬워하고, 또 다음을 기약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그냥 놔두는 것. 그게 체육대회에서 어른이 해야 할 전부가 아닐까요.
오늘 밤, 딸에게는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3년 전에 네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들어줘서 미안해. 네가 느낀 게 맞았어." 그리고 아들에게는, 아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야"라는 말이 위로가 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아이가 흘린 눈물 앞에서 어른으로서 할 말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답이라는 걸요.
우리 아이들은 뛰고 싶었을 뿐입니다. 공정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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