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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영국 여름을 그리워하던 제가, 올해 처음 한 말

by 영국품절녀 2026. 7. 9.

 

안녕하세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요즘 아침에 현관문을 열면 잠깐 멈칫하게 돼요. 공기가 서늘하거든요. 낮에는 뜨거운데 아침저녁으로는 긴팔이 생각나는 날씨. 어디서 많이 겪어본 여름이다 싶었는데, 며칠 전에야 알았어요.

이거, "영국 여름이에요."

영국에 살 때 여름은 그랬어요. 해가 쨍쨍해도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하고, 멀쩡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그래서 한 여름에도 가방에는 늘 가디건이 들어 있었어요. 여름에 겉옷을 챙기는 나라. 에어컨이 없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라. 그게 제가 살던 영국이었어요.

귀국하고 나서는 매년 여름이 괴로웠어요. 그늘까지 후끈한 한국의 습한 더위 속에서, 저는 해마다 같은 노래를 불렀거든요. "아, 영국 가고 싶다. 프랑스 가고 싶다." 남편은 이제 거의 또 시작이구나 할 정도로요. 여름만 되면 시작되는 저의 영국앓이, 유럽앓이.

그런데 올해 여름, 그 노래가 멈췄어요.

프랑스 역대 최고기온 기록이 지난주 사흘 연속 깨졌다고 해요. 화요일에 깨지고, 수요일에 또 깨지고, 목요일에 다시. 폭염 사망자가 속출하는데 프랑스 가정 넷 중 셋에는 에어컨이 없고, 이제 와서 에어컨을 달자, 말자로 정치권이 싸우고 있대요.

그 뉴스를 보는데, 잊고 있던 밤 하나가 떠올랐어요.

딸이 7개월이었을 때, 우리 셋은 영국과 프랑스를 여행했어요. 그런데 하필 그 해 프랑스가 참 더웠어요. 우리가 묵었던 파리의 에어비앤비에는 에어컨이 없었고요. 프랑스니까요. 당연한 일이었어요.

문제는 7개월짜리 아기였어요. 밤이 되어도 집 안의 열기가 빠지지 않는 거예요. 저는 아기 옷을 다 벗겨놓고,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계속 닦아줬어요. 닦고, 수건이 미지근해지면 다시 찬물에 적시고, 또 닦고. 아기가 더위를 먹을까 봐 밤새 노심초사하면서요. 숨은 잘 쉬는지, 얼굴이 붉지는 않은지, 몇 번이고 들여다봤는지 몰라요.

그때는 그게 여행의 해프닝인 줄 알았어요. 운이 나빴다고. 하룻밤 고생한 추억이라고.

그런데 올 여름 뉴스를 보다가 깨달았어요. 지금 파리의 부모들에게는 그 밤이 해프닝이 아니라는 걸. 찬물 수건으로 아기를 닦아주는 그 밤이, 하루가 아니라 몇 주째 이어지고 있다는 걸. 저는 그 밤을 딱 하루 겪고도 십몇 년을 기억하는데요.

그리고 하나 더 깨달았어요. 제가 매년 노래를 부르며 그리워하던 그 여름 — 그늘이 서늘하고 소나기가 지나가던 그 여름은, 이제 영국에도 프랑스에도 없다는 것. 제가 돌아가고 싶던 계절은 지도 위 어디가 아니라, 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는 것.

웃기지요. 그 여름이 지금 어디에 와 있냐면, 한국의 아침저녁에 와 있어요. 서늘한 아침 공기에 "어, 영국 같다" 하는 순간이요. 시간이 뒤바뀐 것 같아요. 내가 떠나온 곳의 여름이 이곳에 와 있고, 내가 그리워하던 곳에는 40도의 여름이 가 있고.

그래서 이번 여름, 귀국 후 처음으로 이런 말이 나왔어요.

"한국에 있어서, 다행이다."

리모컨 버튼 하나면 켜지는 에어컨. 주문하면 다음 날 달아주는 설치 기사님. 어디를 가도 시원하다 못해 추운 실내. 매년 당연하게 누리면서 한 번도 감사한 적 없던 것들이, 올해는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지구 반대편에서는 그게 이웃 전체의 투표와 400만 원과 몇 달의 대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요.

영국앓이는 아마 내년 여름에 또 도질 거예요.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이제는 알아요. 제가 그리운 건 그 나라이기도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계절이기도 하다는 걸.

🇫🇷 더 깊이 읽기 그런데 유럽은 대체 왜 에어컨을 안 다는 걸까요? 설치비 400만 원, 이웃 투표, 그리고 "더위를 견디겠다"는 58%의 신념까지 — 유럽 에어컨 논쟁의 진짜 이유를 따로 정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