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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

낯선 영국인 할머니의 전화, 안타까운 이유

by 영국품절녀 2011. 8. 26.


3주 전 쯤인가 부터 저희 집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저녁 7시 ~ 7시 30분 경에 전화 벨이 울립니다. 저희는 휴대폰을 거의 사용하므로, 집에 오는 전화는 대부분이 스팸 전화거나(광고), 미국에서 사는 시동생의 전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전화 벨이 울려 받아 보니, 너무 가냘픈 목소리의 영국 할머니가 조쉬를 바꿔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울 신랑을 찾는 줄 알았어요. 울 신랑을 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거든요. 그런데 재차 물었더니, 조가 아니라 조쉬랍니다.

저희 신랑이 제일 처음에 받았던 것 같아요. 잘못 거셨다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는 그 다음 날 또 비슷한 시간에 전화 벨이 울렸어요. 이번에는 제가 받았지요. 역시나 그 할머니가 또 조쉬를 찾는 거에요. 제가 잘못 거셨다고 하니깐, 할머니가 너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지요. 그리고 한 이틀 정도만 제외하고, 거의 3주 간 항상 저녁 7시 경에 조쉬를 찾는 할머니의 전화 벨이 울립니다. (발신자 표시를 보니 캔터베리 근방 어딘가에 사시는 것 같아요.)


아마도 할머니가 찾는 사람은 아들이거나 손자일 가능성이 있겠지요. 혹시 치매에 걸리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신 분 일 수도 있고요. 왜냐하면, 정신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항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물론 조쉬라는 사람이 전화 번호를 잘못 알려준 게 아닌가 라는 것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추측도 해 봅니다. 

영국은 대체로 자식들이 부모와 함께 살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도 물론 있어요) 다행히 건강한 노인들은 괜찮습니다. 문제는 홀로 사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지요. 이 분들은 외로움이 가장 큰 적이라고 합니다. 보통 자식들이 일주일 또는 열흘에 한 번 와서 청소를 해주거나 장을 봐 주고 간다고 해요. 그러면 할머니들은 그 동안 청소 및 목욕을 시키러 오는 사람 이외에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대상이 없다는 거에요.




            캔터베리에는 노인 비율이 높은 편 이라, 집 벽에 네모난 상자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노인들이 주로 사는 집으로, 위급 상황 시 상자에 불이 켜져, 도움을 청할 수 있지요.

저희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도 80세가 넘으신 분인데, 작년 가을에는 저희 집 옆 수퍼마켓 가셨다가 쓰러지셔서 사람들이 부축해 오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자식들은 1년에 한 번 정도, 크리스마스에만 오는 것 같더군요. 꽤 큰 집 - 뒷마당이 끝내줍니다 - 에서 홀로 사시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울 신랑이 울 집 전화번호를 알려 드리고 왔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연락할 수 있도록이요.


이런 상황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요. 한국에도 독거 노인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자식들이 부모 양육을 거부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지요. 한국도 이제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리 좋은 일 만은 아니지요. 출산율은 저하되고, 노인의 비율만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에요. 이제 이 많은 노인들의 부양은 누가 하나요?

매일 7시만 되면 전화기 속으로 들리는 힘없고 가냘픈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할머니의 자식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할머니는 매일 조쉬를 찾는 것인지,,이런 저런 생각이 끊이질 않네요. 우리 부모님과 주위의 소외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 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