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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유학생 남편 둔 아내의 일기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산다는 남편, 뼈있는 한마디

by 영국품절녀 2012. 5. 9.



저는 울 신랑이 지어준 애칭들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희안한 애칭을 불러도 사람들이 못 알아 들으니깐, 신랑은 그때 그때 기분대로 저를 부른 답니다. 저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답을 하고 있고요. 많은 애칭 중에 하나가 바로 "뭉치~" 입니다. 다들 아시겠지요? 일명 사고뭉치~~ 제가 좀 사고를 잘 치는 편이에요.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황당한 사고를 치는 통에 울 신랑은 자신을 "소방관"이라고 불러요. 맨날 저의 사고 수습만 하러 다닌다고요.

 

                                           울 신랑은 소방관~~~ (출처: 구글 이미지)

최근에는 제가 사고를 한 번도 안 치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요, 드디어 이번에 한 건 터뜨리고 말았답니다. 저 때문에 울 신랑은 달밤에 체조를 했어요.

영국은 이번 주 월요일이 뱅크 홀리데이로 공휴일이었어요.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학회 발표로 인해 울 신랑은 요즘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저녁 늦게 집에 옵니다. 요즘 스트레스를 팍팍~ 받고 있는데, 제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어요.

 

뭉치 아내: 신랑, 언제 집에 올꺼야?

소방관 신랑: 응, 곧 가야지, 버스 시간표 좀 알려줘~~ (신랑 학교 인터넷이 이상해서 버스 사이트가 안 들어가진다고 해요.)

뭉치 아내: 8시 55분, 9시 55분, 11시가 막차야. (공휴일이라서 저녁 7시 이후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에요.)

소방관 신랑: 응, 그래 고마워~ 이따 봐~

전 신랑을 집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전화 벨이 울렸지요.

소방관 신랑: 야~~~~ 너 제대로 본 거야?  방금 버스 떠났잖아...47분이잖아...

뭉치 아내: 어...~~ 55분 맞는데.....4번 버스 아니었어?

소방관 신랑: 4번은 바닷가 가는 버스잖아,  6번을 봐야지.. 평소에는 잘 알려 주더니 갑자기 왜 그래~~

뭉치 아내: 미안해... 택시타고 와~~

 

전 미안하다는 말밖에 뭐라 할 말이 없는 거에요. 짠돌이 울 신랑은 택시비 16,000원 (10분도 안 걸리는데...)이 아깝다면서 씩씩대면서 걸어온다고 하네요. 하필 오늘은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인데.. 제가 뭐에 씌였는지.. 왜 그랬을까요...

신랑은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더랍니다. 즉, 버스가 방금 떠난 거에요. 신랑은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에 문자 한 개를 보냈더군요.

"OO 아..진짜~~~"  (OO은 저의 또 다른 애칭으로 비밀이에요. ^^)

에고고.. 전 다시 전화를 걸어 신랑이 걸어오는 동안 재미있게 해 주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데, 갑자기 야식이 먹고 싶은 거에요. 저는 걸어오는 길에 케밥을 하나 사오라고 시켰어요. 착한 울 신랑은 케밥을 사가지고 1시간을 걸어서 마침내 집에 도착했지요.

 

그러면서, 울 신랑이 저에게 한마디 하더군요.

나는 다시 태어나면 꼭 너의 "형"으로 태어나고 싶다~~

넌 무조건 "남동생"으로 태어나라~~

 

                                                     동생 괴롭히는 형아 ~~ (출처: 구글 이미지)

 

저는 신랑의 뼈있는 한마디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답니다. 사실 아내는 아무리 심한 잘못을 한다 해도 남편이 심하게 뭐라 할 수 없고, 차마 때릴 수도 없잖아요. (물론 때리는 남편도 있긴 하지만요.) 신랑은 가끔씩 저의 행동에 욱욱~ 할 때가 있는 가 봐요. 저도 마찬가지인데 말이지요. 제가 남동생이라면 잘못 했을 때 혼을 내거나 한 대 쥐어 박을 수 있으니 저는 남동생, 울 신랑은 형으로 태어나고 싶은 거겠지요.

 

어제 하루종일 신랑은 종아리와 어깨가 아프다면서, 저에게 칭얼칭얼 대네요. 그래도 저는 아무말 하지 않고, 마사지만 계속 해 주고 있어요. 제가 신랑에게 "종아리와 어깨가 언제쯤이면 괜찮아 질 것 같아?" 이렇게 물으니, 신랑은 싸한~ 미소를 지으면서  "일주일 정도 걸려~" 이럽니다.

에고고....저 일주일 동안은 신랑에게 꼼짝없이 잡혀서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아야 할 것 같아요. 하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저라면 당장 택시를 잡으면서, 신랑에게 "눈이 삐었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난리를 쳤을 것 같아요.

울 신랑 이 정도면, 참 괜찮은 남자같지 않나요? ^^ 그래도 또 다시 신랑하고는 결혼하고 싶진 않아요. 한 평생 살았으면 되었잖아요. 이렇게 제 불찰은 신랑의 忍(참을 인)을 통해 잘 마무리되었답니다. 신랑, 진짜 미안하고 사랑해~~~ ^^ 마사지 매일 해 줄게~~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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