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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브런치 매거진 (영국은 맛있다)

[브런치매거진] 영국 에일 맥주, 그 맛을 찾아서

by 영국품절녀 2015. 10. 19.

 

 

브런치 매거진 [영국은 맛있다] 6화. Ale (에일 맥주)

 

이번 편은 브런치 주인장의 남편이자 박사학위보다 요리에 더 관심이 많았던 자(?)가 한 번 끄적거려 보려고 한다. 제1화 'English Breakfast' 편의 주인공으로서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하곤 한다. 그런데 확실히 프랑스, 스페인 및 이탈리아 요리에 비하면 단순하고 맛없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드높은 영국인들조차 영국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흔들 정도이니까...

 

 

그러한 그들도 영국의 맥주에는 꽤 까다로운 것 같다. 한국 맥주가 북한 맥주보다 맛없다고 해서 한국 맥주회사 속을 뒤집어 놓았던 언론 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그 기자 역시 영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하긴 맥주 맛에 까다롭지 않아도 한국 맥주가 싱겁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니 좋은 예는 아닐 수도 있겠다.

 

영국에서 약 7년 정도를 살았던 것 같지만 처음부터 영국 맥주 자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술 자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 얼굴이 금세 벌겋게 되는 것도 한 이유다 - 영국에 왔다고 딱히 맥주를 더 마시거나 덜 마신 것도 아니다. 아일랜드에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난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기사가 어디 여행 가냐고 묻자 아일랜드 간다고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기사는

 

"아~ 아일랜드 가시는군요?

기네스 마시러 가는 건가요? 부럽습니다."

 

그 말까지 들었으면서도 나는 기네스를 결코 마시지 않았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가끔 마셨던 맥주는 한국에서도 흔히 마셔 봤던 라거(Larger) 타입의 맥주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입맛, 아니 맥주에 대한 취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덜 시원하고 더 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에일(Ale)이다.

 

왼쪽부터 라거, 에일 그리고 흑맥주이다.

아직도 난 흑맥주를 좋아하진 않는다.

 

에일 맥주를 언제부터 마시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맥주를 마실 때 안주를 먹지 않으면서 시작된 것 같다. 영국의 펍에서 한국과 같은 안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말이다. 쓴 맛이 강한 에일은 안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운동 후 시원한 한 잔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에일은 청량감을 주기에 부족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일이 좋다. 에일을 왜 좋아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다만 이 정도로 답할 수 있을 정도겠다.

 

"맥주 그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거든요."

 

물론 맥주 습관 하나 바뀌었다고 내 식습관이 영국화 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저녁 집밥은 항상 한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에일을 자주 마실수록 그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한국에서 주로 마시는 라거 생맥주통의 꼭지와 달리

에일은 손잡이를 크게 당겨서 맥주를 잔에 담는다.

 

그렇다고 내가 맥주에 관한 전문가는 아니다. 전문가가 될 생각도 없다. 맥주는 그저 보리가 발효돼서 만들어진 술인 줄로만 알았다. 보리 맥(麥) 자를 쓰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보리 외에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 물은 일단 제외하고 - 홉(hop)이라는 식물, 아니 어떤 식물의 꽃이었다. 내가 살던 이웃 마을에서 매년 한다는 홉 축제(Hop Festival)를 이젠 더 이상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햇빛이 아직은 따가운 9월 초의 영국 남부의 파버샴(Faversham)에서의 한 때다.

 

축제에서는 홉으로 만든 화관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솔직히 꽃이 이쁜지는 모르겠다.

 


화관을 써야지 그래도 축제의 기분이 나는 것 같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축제 관련 사진을 몇 장 더 보면서 추억을 떠 올려  봐야겠다.

 

모리스 댄스라고 하는데, 지역 축제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해서 흥을 돋군다.

 

이 그룹은 축제 컨셉에 맞춰 모자를 홉으로 꾸민 것이 인상적이었다.

 

추억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  

에일이 점차 세계 맥주 시장에서 사라지는 이유를 찾아 보니 일단 제조하는데 품이 많이 든다고 한다. 라거 맥주에 비해 높은 온도로 마셔야 하니 보관 비용도 높기는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전통 지키기에 유달리 집착이 강한 영국인들은 CAMRA (Campaign for Real Ale)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에일 지키기에 노력한다고 한다. 마침 내가 살던 캔터베리(Canterbury)에서는 매년 CAMRA 축제가 열린다. 이 때마다 영국 전역의 펍 주인들이 에일 맥주 공급처를 찾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어설퍼 보이는 맥주통이지만 그래도 맛은 진짜였다.

 

에일과 안주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안주가 포크파이라면 말이다.

 

허름해 보이는 한 농장의 헛간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지만 맥주를 음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옆자리에는 런던에서 펍을 운영하는 한 할아버지가 친구들을 데리고 이 곳에 왔다고 한다. 볼펜을 꺼내 들고 행사 팸플릿에 적힌 맥주 이름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맥주의 맛을 꼼꼼히 정리하고 있다. 일행인 듯 보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 가며 맥주의 맛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데 그 광경이 낯설기는 했다. 그저 맥주를 맛 보고 포크 파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이 곳은 그들에게 우리의 킨텍스나 코엑스처럼 제품설명회이자 계약을 맺는 곳이었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했던 고민 아닌 고민 중의 하나가 그 맛없다는 한국의 맥주였다. 영국에서도 약간은 비싼 에일이었지만 병맥주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 또한 에일이었다. 별  문제없이 마셔왔던 한국 맥주였지만 일단 에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국 맥주가 싱겁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싱겁다. 이제는...

 


생각보다 싼 가격에 한 묶음으로 수퍼에서 구입했던 에일맥주

 

어~ 그런데 다행이다. 한국을 떠나 있던 그 몇 년간 한국인들의 입맛도 꽤 바뀐 것 같다. 대형 마트에 가도 에일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태원 정도에서나 팔던 에일도 신촌, 홍대, 종로 및 강남 등지의 전문점에서 판다. 그리고 굳이 에일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맥주집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생긴 것 같다. 맛만 따져 보면 오히려 내가 즐기던 영국의 에일보다 우월한 곳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오래 살면서 거의 정해진 펍만 다녀봤던 나는 한국의 어떤 에일 혹은 맥주에게도 좋은 점수를 주기 꺼려진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 같다.

 

저는 에일을 마시면서 영국에서의 추억을 같이 마십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찾았던 그 소소한 행복 말입니다.
어떤 맛있는 에일이 오더라도 그 추억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 맛과 추억인 셈이지요.

 

브런치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conni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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