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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명심해야 할 점

by 영국품절녀 2014. 3. 16.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품절녀님이 이번 주부터 입덧이 심해져서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답니다. 먹지를 못하다 보니 기운도 없고, 블로그 포스팅도 조금 힘들어 하네요. 어제부터는 "태어나서 요즘처럼 못 먹고 지내는 것 처음이야" 라고 할 정도로 힘들어 하고요. 그 동안 예리하게 영국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 글을 쓰시던 품절녀님인데 블로그 개설 이후 처음으로 포스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지난 한 주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글 재주 없는 제가 포스팅을 하게 되었네요. 품절녀님의 글을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어제(토요일) 저녁, 저는 여느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근처 교회에서 열리는 Global Cafe라는 곳에 갔습니다. 영국 각 지역마다 있는 모임인데요, 각 지역의 젊은 영국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을 위해 만든 일종의 사교모임입니다. 선교 목적으로 운영되는 모임입니다만,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아서 무슬림권에서 온 젊은이들도 꽤 많이 모여서 친구를 사귀기도 하는 곳이지요. 저는 토요일 저녁 별 일이 없으면 그곳에 가서 사람도 만나고 영어에 대한 감도 유지하곤 하지요. 작년 초까지는 학교에서 학부생들과 접할 기회가 없지는 않았지만, 주로 전공영어라 생활 영어를 쓸 일이 생각보다 딱히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생각 밖으로 대화의 주제는 "우크라이나 사태" 였습니다. 작년 연말부터 영국 뉴스를 장식했던 3개의 뉴스는 시리아 위기, 영국 홍수, 그리고 우크라니아 사태였지요.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는 영국 홍수가 조금 잠잠해진 2월부터 영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꾸준히 장식해 왔습니다. 주로 수도 키예프에서 벌어진 시위와 관련된 소식이었는데, 러시아가 개입되고 난 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네요.

 

(출처: Google Image)

 

이미 국내언론에서도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 왔습니다.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짧게 – 사실 짧게 정리하기도 어려울 만큼 복잡합니다만 –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로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요. 인구나 (약 3천만) 자원(석유 및 천연가스)도 풍부하고 드넓은 대지덕택에 곡물생산량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유명해진 것은 바로 "핵" 때문입니다. 20세기 최악의 사고 중 하나인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바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발생했지요. 그 일대는 현재도 사람이 살지 못하며 사고의 여파는 전 유럽뿐만이 아닌 세계를 강타했었지요. 아직도 이 일대에서는 기형아 및 암 발병률이 높다고 하네요. 또 다른 유명세의 배경에는 바로 보유했던 핵무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공산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될 때 독립했었는데요. 이 때 당시 소련이 우크라이나 지역에 배치했던 핵무기를 인수받아 한 때, 소련과 미국에 이은 3위의 핵무기 보유 국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한 서방으로부터 군사적 보호까지 약속 받았는데 (부다페스트 협약) 이 때문에 현재의 사태가 자칫 강대국들 (영/미-러)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문제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경제발전 속도가 지지부진했습니다. 더군다나 친서방인 서부의 우크라이나계 주민들과 친러시아인 러시아계 주민들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지요. 사실 우크라이나계 사람들은 언어, 민족 및 문화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웃 러시아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오죽했으면 대다수의 우크라이나들은 2차 대전 때 진격해 온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하기도 했으니까요.

 

비록 경제적 발전 속도는 더디었지만 민주화 과정은 비교적 착실하게 이루어졌지요. 이러한 바탕에는 친서방인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들은 민주화를 발판으로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이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에 반해 보다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동부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계 사람들의 친서방 노선을 반대하지요. 일상 생활에서 조차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풍부한 자원 덕택에 러시아와 오랫동안 협력해온 이들에게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 – 혹은 악화는 – 그들의 생존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위의 지도에서 알 수 있듰이 동부지역은 러시아어가 주요 공용어 중의 하나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러시아어를 공용어 자리에서 퇴출시키려 하니 당연히 반발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요. (출처: CNN)

 

이런 상황에서 수도에서 벌어진 유혈 시위로 친러시아 정권이 무너지고, 친서방 임시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것이죠. 그런데 임시 정부가 러시아어를 제2의 공용어 지위에서 박탈시키기로 결정하자 이번에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폭발한 것이지요. 특히 러시아계가 주류인 크림반도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차라리 자신들의 사는 곳을 러시아에 병합되기를 원한다며 실력행사에 들어갔고, 이에 러시아가 군대까지 파병하자 사태가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네요. 더군다나 크림반도는 전통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였으므로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정부 양쪽모두 쉽게 포기가 어려워 사실상 사태 수습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도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군사적 보호를 약속 했으므로 이 문제에서 쉽게 빠져오진 못할 것 같습니다.

 

설명이 조금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언론에서 자주 다뤘던 뉴스여서 그런지 영국과 유럽 친구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어요. 저는 주로 들으려 했지만, 제가 국제정치를 공부한 것을 아는 친구들은 저에게 이것 저것 많이 묻더군요. 저도 뉴스에서 들은 정도만 아는 터라 딱히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현재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많은 유럽인들은 러시아를 유럽의 국가가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옛 폴란드나 체코와 같은 동구권 국가 출신 유럽인들조차 러시아를 꽤 이질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에 조금 놀랐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긴 합니다만, 오늘 만났던 한 동유럽 출신 친구는 – 자신의 친할머니가 러시아인임에도 – 러시아는 민주주의도 아니며 비정상적인 국가라면서 심하게 거부감을 표출하더군요. 다른 친구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럼 러시아가 아시아 국가냐?"라고 물어보는데요. 그때에는 잘 대답을 못하거나, 아시아는 또 아니라고 말하더군요. 잘 이해는 안되지만 "러시아는 그냥 러시아" 라고 합니다.

 

비단 서유럽권뿐 만 아니라 동유럽권 친구들까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유럽인들이 가진 러시아에 대한 공포 – 혹은 부정적 인식 – 은 꽤 깊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는 듯 하지만 아무래도 냉전시대부터 이어진 이러한 관점이 아직까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정작 러시아에 대한 유럽인의 시각만은 아니었습니다. 충분한 자연 및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민을 통합하지 못한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언뜻 19세기 말의 한반도 –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자연 자원은 없는데 말이지요 – 와 겹쳐 보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요? 오늘 날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하겠습니다만, 국론 및 국민의 분열은 결국 외세의 개입을 불러 일으킨다는 데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소수인 러시아계를 배려하지 못한 우크라이나인들도 잘 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서방국가와의 약속을 철썩같이 믿은 친서방 정부의 무능도 비판받을 만 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주변 강대국들이 약속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만한 힘과 역량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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