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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유학생 남편 둔 아내의 일기

해외 생활의 적응과 함께 찾아온 외로움, 왜

by 영국품절녀 2013. 8. 26.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더운 것 같습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꽤 더운 여름이었던 영국은 이제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납니다. 지난 토요일, 제가 사는 이 곳 캔터베리에는 큰 비가 내렸습니다. 영국답지 않은 장대비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내렸네요. 영국에 와서 이렇게 빗줄기 굵은 비를 겪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생각이 꽤 났습니다.

 

 

품절녀님이 일하다가 빗소리가 너무 좋아서 찍은 영상이랍니다.

 

해외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은 몇 번쯤은 경험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문득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저와 품절녀님은 이곳 캔터베리에서 생활한 지 벌써 4년이 훌쩍 지났고, 석사시절까지 합치면 5년이 넘다 보니 이제 영국 생활은 제법 익숙해 졌지요. 언어에 대한 불편함도 딱히 없고, 이 곳에서 새롭게 형성된 많은 지인들과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외로울 때가 없지는 않습니다.

 

 

어제 교회에 갔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저는 예배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찬양 인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이크와 스피커 등의 음향기기를 준비했지요. 영국인 친구와 같이 하는 것이라 딱히 어려운 점도 없고 작년부터 늘 하던 일입니다. 제가 사는 이 곳은 한인교회가 없기 때문에 이 곳 영국교회를 캔터베리에 온 이후 계속 다니고 있는데요. 예배 시간 내내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보통 영국교회에서는 예배를 마친 후, 차 (혹은 커피)와 비스켓을 먹으면서 친교시간을 갖곤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는 친교시간을 갖는 대신 조용히 음향기기를 정리하는 일을 하러 갑니다. 누구와도 별로 대화하지 않게 되었지요. 그저 묵묵히 마이크와 케이블을 정리합니다. 제가 그럴 때마다 아침에 같은 일을 하는 영국인 친구가 와서 같이 합니다. 그 친구도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을 텐데, 저 때문에 괜히 일찍 정리하러 오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예배에서 그 일을 하고, 사람들과의 인사도 없이 시내에 나오거나 집에 돌아가곤 합니다.

 

요즘 저와 품절녀님이 교회에서 조금 겉도는 것을 일부 교회 분들도 의식했나 봅니다. 몇 주전에 교회 사람들과 나들이를 갔는데, 저희 부부에게 그나마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영국인 아주머니가 품절녀님에게 조용히 한 마디 건넸답니다. 저희 부부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교회에 출석하던 외국인들이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네요.

 

어제 역시 조용히 음향기기 정리 후 교회를  나서는데,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저에게 오시더군요. 영국에 어느 정도 살았고, 앞으로 학위를 어떻게 할 생각인지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이 교회에 4년째 다니면서 가끔 말도 걸어주던 분이어서 그런지 그날 따라 고맙긴 했습니다. 이 분 눈에도 요즘 저의 교회 생활이 아웃사이더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일 끝난 후 버스 정류장 옆에서 만난 오리들

 

사실 교회 분들과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에게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하진 않았지요. 그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무심코 여겨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희 부부가 요즘 "외로움"을 타는 것 같습니다. 지난 4~5년의 영국 생활을 통틀어 처음 느끼는, 쪼~금은 중증인 외로움이네요. 그래서 제 스스로도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곳의 지나온 생활을 돌아 보았습니다. 한 지역에 4년 정도 살았고, 많은 사람들과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내왔으며, 이 곳의 시스템에 전혀 문제 없이 적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러고 나니 외로움이 몰려 오네요?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일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빨리 학위를 받고 낯선 곳으로 가,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저를 보고 아내(품절녀님)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마도 타지에 남은 자들의 슬픔 혹은 외로움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이 곳에서 친분을 쌓았던 많은 사람들이 매년 하나 둘씩 떠나고, 우리만 이 곳에 계속 남겨지는 상황에서 오는 감정이라고 하더군요. 품절녀님 역시도 친했던 지인들이 다들 떠나버려서 무척 외로워하고 있거든요.

 

아내의 말을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도 제가 논문을 마무리할 시점에 조금 긴장의 끈이 풀어졌나 봅니다. 제 일에 더 깊이 몰두하다 보면 외로움 같은 것은 느낄 틈도 없지 않을까요? 한 주가 시작됩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의 기를 받아 저도 한 주 보람되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해외 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들도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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