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해외 생활에서 김연아 존재, 넌 감동이었어

by 영국품절녀 2014. 2. 21.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다들 밤잠을 설쳐가면서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부분 그 결과에 분한 마음을 금치 못하실 것 같은데요, 한국에 있는 제 친구들도 SNS를 통해서 분노를 거침없이 표현하더군요. 어제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본 저로서도 오늘 김연아 선수의 우승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시아의 홈인데다가 쇼트 프로그램에서 받은 점수를 보니 러시아 선수들이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금메달은 사실상 어려워 보였으니까요. 저도 한국인으로서 분한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그래도 생각보다 담담하게 결과를 지켜보게 되더군요.

 

 

결과를 짐작이라도 한 듯한 김연아 선수의 웃는 얼굴에 빛이 났습니다.

 

 

저는 오늘 프리 경기에 대한 기술적인 분석이나 심판들의 편파 판정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피겨 전문가도 아닐 뿐 더러 이미 국내 많은 언론들이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다만 저의 짧지 않은 영국 생활 동안 김연아 선수의 존재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짧막하게나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김연아 선수를 알게 된 시점은 저 스스로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이전부터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석사 2학기째를 시작했을 무렵 일본 친구들과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본인 친구들은 한국의 금메달 행진에 놀라워하면서도 일본의 어린 피겨 선수가 나왔어야 했는데 나이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네~ 바로 아사다 마오 선수입니다." 저는 그때 한국에도 같은 이유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고 대답했었으니 "김연아 선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말" 이지요. (결국 여자 피겨 부분에서 일본 선수 (아라카와 시즈카)가 결국 우승을 차지하긴 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제 해외생활에 다시 한번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0년 1월 저와 품절녀님은 다시 영국 땅을 밟게 되었지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일본인들도 꽤 있었습니다. 곧 그들과의 대화는 그 해 2월에 열렸던 "벤쿠버 동계 올림픽의 여자 피겨스케이트"에 맞춰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미 한일 양국 모두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의 라이벌 구도가 첨예하게 맞섰던 때라 자칫 민감한 주제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나 그 일본인 친구들이나 피겨 전문가가 아닌지라 목청 높여 다툴 일은 없었지요. 제가 경기 전까지는 그 주제를 조심스럽게 피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어디서 김연아 선수의 결승 경기를 봤는지 기억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집에 인터넷은 물론이고 텔레비전까지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접한 뒤 일본 친구들의 반응이 조금 궁금하기는 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겠더군요. 한편으로는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주변 영국인들에게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물론 영국인의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없는 것 같네요. 그래서 제가 고른 딱 한 명은 바로 저의 박사과정 친구로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북유럽 출신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커피나 한 잔 하자며 학교 커피숍으로 갔지요. 제가 박사과정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학과에 대한 이런 저런 질문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넌지시 동계 올림픽을 봤냐고 물어봤습니다. 역시 북유럽 출신답게 모든 경기를 즐겨 봤다고 하더군요. 저는 더 이상 궁금증을 못 참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여자 피겨스케이트의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쑥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그 친구는 제 얼굴을 힐끗 보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면서 얘기하더군요.

한국 선수가 더 잘했어. 난 와이프가 일본인이라 일본(아사다 마오) 선수를 응원하긴 했는데, 내가 보더라도 킴(김연아 선수)이 훨씬 낫더라.

 

 

그 말을 듣고 저는 "너의 와이프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라고 되물으니, 그 친구는 웃으며

"아니, 아직도 아사다 마오 선수가 진 것을 억울해 해" 라고 답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치했던 질문이었는데도, 그 친구는 웃으면서 잘 받아주었습니다. 그 이후에 이어진 그 친구의 피겨 스케이트 및 동계 스포츠 각종 종목 분석 때문에 머리가 조금 아프긴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불러냈던 터라 저도 웃으면서 다 들어주었지요. 물론 그때는 영어 수준도 높지 않고, 제가 규칙을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 친구의 말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ㅎㅎ

 

그 이후에도 김연아 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일본인 친구들과 대화할 때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일부 일본인들의 피겨 스케이트에 대한 집착이 – 정확히 말하면 아사다 마오 선수에 대한 믿음 – 이미 대단하다고 느껴서, 저는 그저 "김연아 선수가 그 전에 은퇴하지 않을까?", "다음 올림픽에서는 승부를 예측하기 조차 어려울 것 같아" 정도로 말을 넘기곤 했습니다.

 

또한 제가 만났던 일부 영국인들은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적긴 했지만, 피겨 스케이트의 여왕이 누구이며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다 알더군요. 그들은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스케이트의 한국 선수는 몰라도 동계 올림픽의 꽃 피겨 스케이트의 한국 선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이 먼저 알아 봐 줄 때마다 은근히 뿌듯해 지기까지 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중간이 아닌 곳에 있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더군요.

 

오늘 새벽에 김연아 선수는 결점 없는 경기를 펼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시상대에 오르는 김연아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 누군들 아쉽지 않았을까요? 다만 시상대에서 우승한 선수를 축하해 주는 김연아 선수를 보면서 저는 고맙다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단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응원했었지만, 그녀의 우승은 저의 해외 생활의 기쁨이었고, 저의 한국이란 국가의 자부심이었죠.

 

 

공교롭게도 김연아 선수의 그 동안의 올림픽 여정이 저의 박사과정 기간과 겹쳤습니다. 아마 제가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 더욱 몰입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김연아 선수를 공식 경기에서는 보기 어려울 듯 합니다. 이젠 김연아 선수가 아닌 자연인 김연아로 돌아가겠네요. 스케이트 없는 그녀의 인생은 솔직히 본인 스스로도 상상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인생의 길이 펼쳐지겠지요. 김연아 선수도 저도 이제 다시 화려한 제2의 인생의 막을 열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김연아 선수가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고마워요. ^^ 
 

                 글쓴이에게 추천 버튼 꾸욱~ 눌러 주세요.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