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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대학 기말시험 채점하다 빵 터지게 만든 낙서들

by 영국품절녀 2015. 6. 26.

메르스 때문에 어수선한 채로 한 학기가 끝났습니다. 실제로 제가 강의하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은 2주 동안 나타나지 않길래 궁금했었는데, 결국 수업에 나와 메르스 때문에 자가 격리를 했었다고 하더군요. 교환학생을 가르치는 저희 반에 있던 홍콩 학생들은 소환 명령이 떨어져 모든 강의가 종료도 하기 전에 귀국을 해 버렸지요. 다행히 시험을 마지막 한 주 전에 실시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강의를 할 때 항상 마지막 한 주전에 시험을 보게 합니다. 아무래도 교양과목과 외국인 교환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전공과목에 더욱 집중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 저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과제에 대한 채점 및 피드백을 미리 공개해 학생들이 직접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저 또한 학생들 시험 답안지와 과제에 피드백을 첨삭해서 학생들이 읽도록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기 말에는 굉장히 바쁘네요. 특히 이번에는 학술회의가 2개나 겹쳐 있어서 더욱 바빴던 것 같습니다.


저는 채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귀찮은 것도 사실이지요. 무엇보다 상대평가라는 제도 때문에 점수를 통해 줄 세우는 것이 무척 싫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학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기에 최대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채점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미리 점수를 공개하다 보니 학점 정정기간에도 거의 연락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채점을 하다 보면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시험지 혹은 문제지에 재미있는 글귀나 낙서를 하기 때문이지요. 채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답니다. 유형별로 한 번 볼게요.


1) 그림을 그리는 학생

 

 

잠자리와 해바라기, 그리고 해까지 그린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시간이 안 가는지 모래시계를 그렸고요. 어떤 학생은 갈매기(?)와 엄지 손가락을 든 사람을 그렸네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그림도 보시죠. 
 
작은 동그라미로 도형들을 잔뜩 그려놨습니다.

 

실제로는 문제지 뒷면 전체에 있었던 그림인데요. 물론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왼쪽을 보니 일본어 히라가나를 적다가 지웠습니다. 아마 곧 일본어 시험이 있을 예정이었나 봅니다.

 

어떤 학생은 제 얼굴이라고 그렸네요. 보자마자 무척 웃었습니다. 품절녀님도 배꼽잡고 웃더군요.

 

 

(2) 격려해주는 학생 

 

저는 개인적으로 ‘교수님 짱짱맨’ 이란 말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하하~~

 

(3) 열심히 아이디어 정리하는 학생


 
제 수업을 듣는 외국인 교환학생의 메모입니다. 문제지에다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네요. 이런 것들을 보면 성적을 좀 더 잘 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문제지를 이용하는 학생은 많았습니다.

 

(4) 투정부리는 학생 
 


제가 역사 교양 과목을 가르치는데, 기말 시험 한 달 전 8문제를 미리 공지를 했습니다. 그 중 4문제를 시험시간에 보여주고, 그 중 다시 2문제를 선택해서 작성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조선시대 예송논쟁’에 대한 질문을 준비했었나 봅니다. 시험지 한 귀퉁이에 소심하게 이런 투정을 적었더군요.

(5) 4차원 학생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학생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역사관련 시험 답안지인데, K팝이 좋다니요. 어쨌든 덕분에 채점하다 웃었습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채점은 괴롭습니다. 신경도 날카로워지게 마련이지요. 정확한 채점기준을 통해 선입견을 배제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학생들이 있어 채점할 때 청량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딱딱했을 제 수업을 재미있게 들어준 학생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수업시간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던 반말을 한 번 써 봅니다.

“너네들도 방학 잘 보내라,
난 까롱이랑 씨름이나 할란다...” 

 

여러분의 공감 은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