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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남매맘으로 살아가기

부모가 되어야 철든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by 영국품절녀 2016. 1. 23.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라는 영국 시인이 있습니다.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시로 "무지개" 를 꼽을 수 있겠네요. 시 자체도 훌륭하지만 그 한 구절은 더욱 유명할 듯 합니다. 이 시를 알고 계신 분들은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하지만....

바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입니다.

 

12월 초에 폐렴으로 입원했던 아기가 지난 주에 다시 입원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상태가 조금 더 안 좋았었지요. 아기를 먼저 재우고 품절녀님과 제가 거실에서 어떤 일을 하던 찰나에 아기가 "찡찡"거리면서 깼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열이 굉장히 있어 보였습니다. 급히 체온계로 온도를 재 보았죠.

 

"40.2!!"

 

급하게 해열제를 찾아 먹이니 짧은 시간 안에 온도가 쭉~ 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체온이 급하게 떨어지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해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터졌습니다. 갑자기 고열에 의한 경기(열성경련)가 찾아온 것입니다. 집사람이 아주 어렸을 때 종종 경기를 했었다고 하더군요.

 

 

 

링거 바늘로 인해 입원 내내 여러번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기의 사지가 갑자기 경직되고 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장모님께서 곁에 계셔서 급하게 조치를 취한 후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해열제와 감기약 정도만 처방 받고 집으로 귀가했는데..

그 다음날에도 해열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의 열이 떨어지지 않다가 다시 경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응급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응급실 대기실에서의 긴 시간병원의 아기 응급실에는 아픈 아기들로 차고 넘쳤습니다. 응급실에서만 3일 이상 입원을 대기 중인 아기도 있었습니다. 저희도 약 15시간의 기다림 끝에 입원을 하게 되었지요. 24시간 내에 경련이 두번 온 것이라 복합성 경련을 의심해서 인지 내과가 아닌 신경정신과에서 담당했습니다. 그 덕분에 입원이 비교적(?) 빨라진 듯 합니다.

 

 

잠시 열성경련 (Febrile Seizure) 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경련 시 주의사항

경련이 시작되면 호흡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편안한 자세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줍니다. 꽉 끼는 옷은 느슨하게 해 주고, 손과 발을 꽉 잡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경련을 일으키는지 잘 기억해놓았다가 의사에게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경련가이 5분이 지나가면 바로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뇌 손상 가능성)

 

저희 아기의 경우에는 약 2분 정도 경련을 일으켰는데, 사지가 경직되고 눈은 위로 올라가고 입에서는 거품이 나왔어요. 입술과 얼굴색은 파랗게 변하고요. 입원 후에는 뇌파 검사가 진행되었고, 개월수에 따른 발달상황 설문지 조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판명. 앞으로도 열이 갑자기 오르면 경련이 또 올 가능성이 높은 아기라서 열 조절을 잘 해줘야 한다고 했어요.

 

대부분 처음 열이 오를 때 경련이 발생하므로 예방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열성경련이 자주 재발하는 아기에게는 전조 증상(평소에 비해 처지고 보채거나 잘 놀지 못하는 증상)이 있을 때 열을 잘 체크했다가 해열제를 투약하여 억제하세요. 아이의 경련 빈도에 따라 항경련제를 해열제와 함께 투약하면 경련 증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열성경련이 더 알고 싶으시다면 --> 바로가기

 

 

(출처: emc.ac.kr)

 

열성 경련을 한 저희 아기는 뇌파 검사를 받았는데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45일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다행히 아기는 현재 퇴원했습니다. 다만 급한 불만 끈 셈이지, 아기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못합니다. 열도 아직 약간 높은 편이고요. 항생제를 먹다 보니 변도 좋지 못합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수액 꼽고 있을 때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이긴 합니다. 아기가 링거 바늘을 꼽은 왼손이 답답한지 튜브를 깨물거나 몸부림을 쳐서 바늘이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지난 금요일 취침시간에는 아기 튜브가 빠지면서 시트와 환자복이 다 젖을 정도로 피를 흘렸던 적도 있습니다. 늦게 발견했다면 큰일 날 뻔 한 셈이지요.

 

저희 부모님께서 지난 토요일에 문병을 오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약 한 시간 동안 앉지도 않으시고 아기의 자는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그나마 아기가 일어나서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자 마음을 조금 놓으신 듯 합니다. 아기는 다시 품절녀님께 맡기고 두 분은 저와 식사하러 가셨지요.

 

부모님과 식사자리에서는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문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7살 정도 되었던 때에 어머니께서 이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습니다. 환자복을 입었던 어머니가 낯설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나지만 그 보다 또렷한 기억은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는 그렇게 원만하지는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그 때 할아버지께서 며느리의 문병을 오신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말을 이으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저의 할아버지)

나보다 훨씬 다정다감했던 것 같애."

 

그 말씀을 하신 것을 보니 옛 기억에 언뜻 쓸쓸한 기분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 몇 년 전부터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 보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너도 아이를 키워보라고.

 

두 번에 걸쳐 아기가 입원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엄마는 강하다" 입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할 텐데, 아기를 끝까지 돌보더군요. 아기의 투정과 아픔을 온전히 안고 견디는 것을 보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서야 아버지가 저에게 종종 했던 말의 의미를 몸소, 아직은 어렴풋이나마 깨닫는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버지의 말이 말도 못하는 아기의 행동으로 이해가 된 것이죠.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말은 저에게 이렇게 들려집니다.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 우리 아기는 이렇게 부모를 어른이 되게끔 단련시키는가 봅니다. 그래서 아기에게 고맙습니다. 그래도 제가 철은 덜 들어도 좋으니 일단 아기가 아프지 않으면 더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참고로 이 시의 원제는 무지개가 아니라 “ My Heart Leaps Up (나의 마음은 뛰어 오르리) ” 입니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 뛰누나

나 어릴 때 그러하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진 뒤에도 그러하리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내 생의 하루하루가

모두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가기를

 

여러분의 공감 은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