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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영국 명절과 기념일

영국인의 결혼 기념일, 로맨틱한 이유

by 영국품절녀 2012. 1. 28.



며칠 전 저희 4주년 결혼 기념일이었어요. 아직 신랑이 유학생인 관계로 1주년만 빼고 나머지 2,3,4주년 결혼 기념일을 영국에서 단출하게 보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1주년 결혼 기념일에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신랑이 진주 목걸이, 와인, 카드를 주는 깜짝 이벤트로 저에게 감동을 선사했답니다.

 

보통 아내들은 기념일 혹은 생일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남편들에게 무언의 압력 혹은 쪼아 대곤 합니다. 저는 결혼 기념일 날짜를 다른 날로 착각했다가 신랑을 당황스럽게 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에 신랑이 직접 프랑스 레스토랑을 몰래 예약하고, 전화로 외식하자고 했는데, 저는 아무 생각없이 “? 무슨 일이야?” 그랬지요.  그날 엄청 욕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시어머니도 저랑 비슷한가 봐요. 시어머니는 결혼 기념일을 자주 잊어버리시는 반면, 시아버지께서는 엄청 잘 챙겨주십니다. 어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바로 피자였다고 하시네요.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시아버지는 흔하지 않던 피자와 꽃 선물을 해 주셨다고 해요. 너무 로맨틱한 것 같아요. 시어머니께서는 너도 신랑한테 결혼 기념일 잘 챙겨달라고 해라.” 고 말을 덧붙이셨지요.

 

결혼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저희 부부의 대화 내용을 한 번 보세요.

: “나 결혼 기념일에 뭐 해 줄꺼야?”

신랑: "너만 결혼했냐그럼, 넌 나한테 뭐 해줄껀데?"


신랑의 말을 듣고 보니, 이치에 맞는 거에요.

왜 결혼 기념일은 꼭 남자가 챙겨야 하는 걸까요?” 결혼은 둘이 했는데 말이지요. 대다수의 아내들은 이 날 을 남편이 기억하지 못하거나 선물, 이벤트가 없으면 완전 토라져 버리잖아요. 남편들도 가끔은 아내들이 결혼 기념일을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고 합니다.

 

                     강춘님의 글과 그림이에요.  (출처: http://blog.daum.net/kangchooon)

요즘 저희 신랑이 많이 바쁘거든요. 논문, 강의에다가, 이번 학기에 학회 발표까지 겹쳐 온통 정신이 그쪽에 쏠려 있어요. 그런 신랑에게 더 이상 결혼 기념일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지요.  지금까지 울 신랑이 결혼 기념일을 다 챙겨줬으니 이번에는 제가 나서기로 했답니다.

 

어떻게 준비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영국인들의 결혼 기념일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요.

먼저, 친한 영국 아줌마에게 자문을 구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수집해 보았지요.


 

영국인들이 결혼 기념일을 보내는 방식?  


전통적으로 영국에는 결혼 기념일 명칭이 있습니다. 그 명칭이 바로 결혼 기념일 선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국, 유럽 국가 포함) 일부는 선물 목록에 따라서 배우자 혹은 친구들이 주인공들에게 선물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요.

                                              
                                               영국 결혼 기념일 명칭 및 선물 목록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Wedding_anniversary)


영국도 한국처럼 남자가 결혼 기념일 선물 및 이벤트를 준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해요.  제가 본 영국인들의 결혼 기념일 방식이 로맨틱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인 부부는 결혼 기념일에 빠뜨리지 않고 꼭 챙기는 것이 바로 배우자에게 카드 쓰는 것이라고 해요. 또한 남자들은 여자에게 특별한 선물과 함께 빼놓지 않고 꽃을 꼭 준다고 합니다. (꽃 목록도 정해져 있어요)
 


                                               영국 결혼 기념일 꽃 선물 목록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Wedding_anniversary)

젊은 부부들은 보통 외식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냥 집에서 특별한 음식을 해 놓고 친구들 혹은 가족들의 축하를 받는다고 해요. 특별한 결혼 기념일, 특히 25주년 결혼 기념일 (일명 Silver Wedding)에는 친구들이 앞으로의 영원한 결혼 생활을 기원하기 위해 은으로 된 문진 (Silver paperweights)를 선물한다고 해요. 한국도 마찬가지로 은혼식이 있잖아요. 일부는 결혼 기념일 파티에 친구들을 불러서 하는 경우도 있고요. 노년 부부에게는 자식들이 돈을 모아 크루즈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영국 여왕의 60주년 결혼 기념일 가족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국인들은 5, 10, 20, 25, 30, 40, 50, 60, 75주년의 결혼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75번째 결혼 기념일에 다이아몬드를 선물했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에 오른 지 60년 되는 해를 Diamond Jubilee라고 명하면서, 현재는 60주년 결혼 기념일에 다이아몬드를 선물한다고 합니다. 60주년까지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없으니 중요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참고로, 올해 2012년이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오른 지 60주년 되는 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저도 영국인처럼 이번 4주년 결혼 기념일을 목록에서 찾아봤어요. (제가 짠 계획)

1.     이탈리안 레스토랑 예약

2.     결혼 기념일 카드 쓰기

3.     4주년 결혼 기념일 선물: 과일과 꽃 (제라늄, 수국)


1, 2번까지는 했는데, 3번은 그냥 패스했어요. (수국을 사려고 갔더니 없네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저는 신랑에게 이렇게 말을 했어요.

내년 5주년은 특별한 결혼 기념일이라고 하니깐, 당신 기대해 볼께" 
신랑은 열심히 먹으면서 그냥 "OK" 하네요.


                      
                      

                        제가 이번에 고른 4주년 결혼 기념일 카드에요.  너무 원초적인가요? 
                  나름대로 카드의 의미를 부여하자면, 저희는 서로를 위해 다시 태어났지요.

우리가 굳이 영국인들처럼 결혼 기념일 선물을 따라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처럼 결혼 기념일에는 배우자에게 그동안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는 감사 카드를 건네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또한 꼭 남편이 챙겨야하는 결혼 기념일도 아니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 기념일은 절대로 잊지 말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부부만을 위한 시간을 꼭 함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선물까지 준비하면 금상첨화겠지요.

내년 결혼 기념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