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

영국 대학에서 본 일본 영화, 마음이 복잡

by 영국품절녀 2013. 1. 26.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품절녀님 컨디션이 좀 안 좋다고 해서 제가 대신 끄적거려 봅니다.

 

제가 이번 학기에 다시 학부생들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 지도교수님 과목인데, 금요일마다 종종 병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제가 금요일 일정을 대신 맡게 되었죠. 일본 정치와 사회를 배우는 수업인데, 금요일마다 강의와 관련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시청합니다. 제가 교수님 대신 들어가는 것이라 딱히 부담은 없네요. 한국 대학의 조교 역할이라 생각하시면 편할 듯 합니다.

 

그 과목의 첫 강의가 히로시마 원폭으로 시작하므로, 커리큘럼에는 "히로시마"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지난 주에, "반딧불의 묘" 부터 보라고 해서 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학생들과 같이 봤습니다. 작년에도 같은 과목의 시청각 수업을 담당했기 때문에 저는 또 보게 된 것이죠. 작년에도 처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반딧불의 묘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것 역시 영국이었습니다. 석사과정 시절 알고 지내던 형님 분이 영화를 몇 편 다운 받아서 줬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반딧불의 묘" 였죠.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어른들의 전쟁이 어린 남매의 부모님 뿐 만 아니라 남매의 목숨마저 앗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그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니 기분이 딱히 좋지 않더군요. 뭐라고 할까요? 씁쓸하다고 해야 하나요? 기숙사 옆방 살던 일본인 친구 – 친구라기 보다는 본 받을 점이 많았던 형님이었습니다. – 는 제가 반딧불의 묘를 봤다고 하자, 웃으면서 대뜸 한다는 말이...

 

"소화 20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 라는 첫 대사를 읊조리더니...
"참 복잡한 애니메이션 봤네..."  그러면서 자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면서 말을 안 하더군요. 뭔가 할 말이 더 있었던 것 같았는데, 조금 난감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원래 수다스러웠던 사람이 입을 다무니 그게 더 새롭긴 하더군요. 그만큼 일본인이 보기에도 그 애니메이션은 논란의 여지가 충분한 듯 합니다.

 

이 영화를 보는 엇갈리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할 듯 합니다.

하나는 일본인에게 전쟁 피해자로서의 의식을 고취시켜 전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거나, 혹은 군국주의를 미화하고 있다는 입장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국인으로서는 이런 감정을 먼저 느끼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앞서 잠깐 언급한 것과 같이,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고 결국은 죽음에까지 이른 어린 남매의 대한 연민 혹은 동정이 아닐까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군국주의 미화로 보는 입장과 반전 영화로 이해하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는 듯 합니다. 이에 대한 좋은 글들을 인터넷으로 찾으실 수 있을 테니 넘어가겠습니다. 그저 제 개인적인 생각 혹은 느낌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영화 잡지 KINO 기사에서 이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으로 잘 다루고 있는 듯 하니 참조해 보셔도 될 듯 합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정치학을 공부하는, 그리고 아마 평생 공부할,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무척 망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굳이 그런 조건을 붙여서 꼭 봐야 하는가라고 자문도 해 보았지요? 그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작품을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스타워즈를 보면서까지 심각하게 "왜 우리 제다이 기사들이 수호하는 공화국은 몰락하게 되었는가 아니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는가?" 를 생각해야 한다면 스트레스 해소하려다 더 쌓이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는 최대한 편한 입장에서 반딧불의 묘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더군요. 한국인으로서의 반감, 그리고 남매에 대한 동정... 역시 예전과 마찬가지로 보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조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영화 말미에 생각해 낸 것이...

나라면 이 영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그러면 지도교수님은 이 영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역사나 정치를 가르치는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객관성과 주관성을 가져야 할까요? 이러한 구분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요? 복잡한 영화를 보니 복잡한 생각만 하게 됐네요.

 

그래서 영화가 마치자 제가 영국인 학생들에게 한 마디 말만 덧붙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독일인들과 비교해서 일본인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피해자화 하였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물론 분위기는 조금 무거웠고, 모두 조용히 강의실을 떠났습니다. ㅎㅎ


토요일 아침부터 조금 심각했던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이 애니메이션이 영국 영화 제작사에서 다시 영화로 만든다는 뉴스가 있던데, 영화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요? 어쨌든 심각한 기분을 날리시라는 의미에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 하나 띄우겠습니다. 오늘은 토요일, 좋은 음악이나 책, 혹은 좋은 분들과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빌리 조엘의 PIANO MAN 입니다.


 

                 로그인 필요 없으니, 추천 버튼 꾸욱~ 눌러 주세요.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

 
 

영국품절녀 책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