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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짐을 쌌지만, 떠나는 감독의 모습은 달랐어요

by 영국품절녀 2026. 6. 30.

 

안녕하세요. 브리스톨 언니(영국품절녀) 입니다. 

같은 날이었어요. 한국도, 스코틀랜드도 똑같이 월드컵에서 짐을 쌌어요. 화면 속 두 나라 감독의 표정마저 어딘가 닮아 있었죠. 멍하니 굳은 얼굴, 떨어뜨린 고개.

솔직히 저는 마음이 두 배로 내려 앉았어요. 우리야 그렇다 쳐도, 제가 남몰래 응원하던 스코틀랜드까지 같은 날 무너졌거든요. 살고 싶을 만큼 좋았던 그 여행의 기억이 있는 나라라, 더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거기까지였어요. 그 며칠 뒤, 두 나라가 보여준 '그 다음'이 너무도 달랐거든요.

스코틀랜드부터 이야기할게요. 탈락이 확정되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스티브 클라크 감독이 스스로 사령탑에서 내려왔어요. 놀라운 건, 그가 월드컵 직전에 2030년까지 가는 새 계약을 맺었다는 거예요. 그걸 딱 한 달 만에 내려놓은 거죠.

떠나는 편지도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그는 자기 변명을 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 작별에서 가장 가슴 아픈 건 내 선수들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쌓은 이 추억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어요. 끝까지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 거예요.

팬들도 비슷했어요. 28년 만에 어렵게 돌아온 무대였으니 실망이 왜 없었겠어요. 그런데 한 팬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다들 감독을 욕하겠지만, 그는 우리를 세 번이나 큰 무대에 데려갔다."

"우리는 작은 나라고, 그냥 우리가 충분히 잘하지 못한 것뿐이다."

 

화살을 누군가에게 겨누는 대신, 담담히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한국이 있었어요. 같은 탈락이었는데, 우리 쪽 풍경은 사뭇 달랐어요. 탈락이 확정된 뒤 며칠간 감독의 거취를 두고 나라가 들썩였고,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빠르게 번졌어요. 정치권까지 가세할 만큼 책임론이 거세졌고요. 그리고 결국, 홍명보 감독도 멕시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혔어요.

흥미로운 건, 두 감독 다 '자진 사퇴'라는 형식은 같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결이 달랐어요. 클라크 감독은 계약이 한참 남아 있는데도, 누가 떠밀기 전에 스스로 빠르게 내려놓았어요. 반면 홍 감독의 사퇴는 — 형식은 자진이지만 — 대회 내내 이어진 거센 사퇴 여론에 떠밀린 결과라는 평가가 많아요. 실제로 그는 12년 전에도 비슷한 흐름 속에 물러난 적이 있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 마무리가 많이 아쉬웠어요. "죄송하다"는 말은 했지만, 어쩐지 진심으로 공감하기보다 상황을 한번 매듭짓는 데 가까워 보였거든요. 떠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잘 다가오지 않았어요. 클라크 감독이 끝까지 선수에게 공을 돌리며 물러난 모습과 자꾸 겹쳐 보여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요. 같은 '자진'이라는 단어 안에, 사실은 꽤 다른 온도가 담겨 있었던 거예요.

물론 방금 한 말은, 홍 감독 한 사람의 '태도'에 대한 제 아쉬움이에요. 그런데 한 발 떨어져 두 나라를 나란히 놓고 보면, 또 다른 결이 보이더라고요. 이건 단순히 어느 나라가 더 성숙하고 어느 나라가 부족하냐의 문제만은 아니구나, 하는 거였어요.

영국에서 7년을 살아보니, 그곳은 책임 있는 사람이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는 게 오래된 관행이었어요. 감독이 결과로 말하고 조용히 떠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죠. 반대로 한국은, 여론이 뜨겁게 책임을 묻는 문화예요. 그런데 저는 그 뜨거움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만큼 간절하니까요. 우리가 우리 대표팀에 거는 기대와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한쪽은 조용히 책임을 '지는' 쪽이고, 한쪽은 분명하게 책임을 '묻는' 쪽이에요. 둘 다 그 나라가 축구를, 그리고 패배를 대하는 자기만의 방식인 거죠. 어느 게 정답이라고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잘 지는 일은, 잘 이기는 일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

같은 날 똑같이 짐을 쌌던 두 팀이, 그 마지막 모습으로 저에게 그걸 가르쳐 준 것 같아요. 우리 대표팀에게도, 스코틀랜드에게도 —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 밤이에요.

같은 날 탈락한 두 나라의 '언론 반응'이 어떻게 정반대였는지는 이 글에 좀 더 자세히 정리해 뒀어요. 여긴 그저, 그 마지막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아 적어본 자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