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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실시간 영국 소식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좌우 이념대결을 넘어

by 영국품절녀 2013. 6. 4.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오늘은 약간 뒷북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요즘 논란이 되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서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기존의 검정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이를 보완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편찬했는데, 이것이 교육부의 검정에 통과한 모양입니다. 사실 온라인이나 뉴스에 나오는 단편적인 일부 문구나 서술만 가지고는 – 물론 이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집필자의 의도는 알 수는 있습니다만 – 무조건 "반민족적이다, 친일이다"라고 하기에는 제가 미처 교과서를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원래 전공이 역사이다 보니 관심이 가지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제 눈에 보기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과서 논쟁의 핵심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대리전 성격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통성과 직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진영간에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뭐 이 정도 내용이야' 이 문제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던 분들이라면 쉽게 아실 것이라 생각되기에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출처: Google Image)

 

다만 저는 이러한 이념 논쟁을 넘어서 근현대 역사 교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일단 좌·우를 막론하고 교과서에는 용어와 개념 설명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 및 개념정리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단, 교과서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시에는 교사가 보충설명을 통해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야 합니다.

이를 테면, 박정희 대통령의 제4공화국은 유신공화국이라고도 합니다. 이 시대에 "자유민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는데요, 이 용어는 "자유 민주주의"와 혼돈하기 쉬운 만큼 그 개념 정리를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예로, "테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뉴라이트 교과서의 일부 내용을 보니, 김구선생님에 대한 설명에서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라는 부분이 있더군요. 진보계 역사학자들은 이 용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사실, 김구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 뉴라이트에서 이 용어를 다분히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다만 교과서 – 그리고 일선 선생님들이 – 이와 같은 논쟁을 넘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일은 바로 "테러"라는 용어의 규정입니다. 이러한 개념 규정이 선행되어야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테러인지" 아니면 "정당한 독립운동의 투쟁"이었는지 학생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시간이 되면 "테러"라는 용어의 정확한 개념을 사전(국어사전 및 영어사전 등)을 통해서 한 번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

 

(출처: 프레시안)

 

다음으로 역사 교사들은 현재 문제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기술의 차이점을 분명히 짚어 주고, 이를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시대를 읽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저와 같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 외에, 성인이 되어서도 역사를 재미있게 보는 분들이 - 요즘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 아직 많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역사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마지막 책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지요. 더군다나 시험을 위해 배우는 것이라, 지겹고 시험이 끝나면 머리에 남는 것이 별로 많지 않지요. 그만큼 역사 – 특히 근현대사 – 교과서의 역사관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비록 구체적 사건의 연도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한반도의 역사가 구한말부터 현재까지 어떠한 흐름으로 이어져 왔고, 그 주요 원동력은 무엇인지는 학생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테면 "경제발전이 근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해야 한다면 군사정권 시대에 일어난 인권 및 민주주의적 가치의 훼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는 학생들에게 흥미거리도 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될 수 있겠네요.

 

(출처: Google Image)

 

학생들이 일제 식민지 시대를 보는 두 가지의 시선??

 

● 피식민지의 백성으로서 일제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수탈, 핍박 및 압제를 겪은 시기


●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이 아니었다.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축적되는 시기 (위의 사진에 나오는 뉴라이트 교과서의 기술 직접 인용)

 

이 두 시선에 대해 고민하고 비교해 보면서, 어느 쪽의 역사관이 식민지 시대를 보다 더 적절하고 타당하게 기술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역사 선생님의 공정한 역할이 보다 중요해 질 듯 합니다. 물론 두 번째 기술에 앞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역시 일제 식민지 제도 (사회 및 교육 전반에 걸쳐)에 "근대민족국가" 를 배양할 토양이 존재했는가도 정밀하게 검토해야 할 듯 합니다.


 

제가 석사시절 한국에서 영국 중학교로 전학 온 학생을 과외 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를 주로 가르치기는 했는데, 역사 과목의 숙제도 종종 도와주기도 했지요. 영국 역사교육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역사적 사건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중요한 용어는 별도의 유인물을 통해 확실하게 이해시키더군요.

이를테면 2차 세계대전 때를 가정하고 전쟁 포스터를 만들어 보거나 혹은 그 당시 자신과 같은 나이의 학생(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라고 하는 등 학생들이 그 시대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좋은 경험이 될 듯합니다. 아울러 그 학교 역사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1차대전의 발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민족주의"의 용어의 유래 및 정치/사회적 의미를 정리해서 별도의 유인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교육 시스템이었습니다. 더욱이 역사 과목을 좋아하는 영국 학생들이 꽤 많다는 것도 부럽네요.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우 편향 논란을 넘어, 이제 한국 학생들은 상이한 두 관점의 역사 교과서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네요. 다만 걱정되는 것이 역사 과목 자체가 교내 시험 및 대학 입시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이 얼마나 교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합니다. 역사 평론가 이덕일 선생은 역사문제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제라는 점에서 볼 때 국사 교과서 서술 체제에 대한 전 사회적인 논의의 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역사 교과서 및 역사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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