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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유학생 남편 둔 아내의 일기

무심한 유학생 신랑이 건넨 결혼 기념일 카드, 눈물 펑펑

by 영국품절녀 2012. 2. 4.


저번 주에 저희 4주년 결혼 기념일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보내는 저희 부부의 결혼 기념일은 크게 특별할 것이 없지요
. 아직 저희는 가난한 유학생이라서 생활 형편이 빠듯하거든요. 아직까지 서로를 위한 선물을 사주는 것 자체를 사치라고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그 날도 여느 결혼 기념일처럼 간단하게 외식으로 끝마쳤지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분위기 좀 잡으려고 와인 한 잔 하자고 했더니만, 신랑은 피곤하다면서 그것마저도 싫다네요. (현재 신랑의 머리 속에는 온통 논문에 대한 생각뿐이거든요.) 그래서 저만 와인을 마시고, 신랑은 옆에서 다이어트 콜라를 홀짝~ 배고프다며 음식 먹기에만 충실합니다.

 

결혼 기념일이지만, 크게 할 말도 없더군요.  신랑은 계속 자신의 논문 이야기만 처음부터 끝까지 합니다. 저는 그런 신랑을 보면서 짜증이 났지만, '얼마나 논문 스트레스가 심하면 저럴까?' 하며 겉으로만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어 줍니다. 그리고는 영국인들처럼 저도 신랑에게 카드를 건넸지요. 그리고는 다른 한 면에는 신랑도 나에게 카드를 써서 달라고 했어요. 신랑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볼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가져 갑니다그리고는 무심한 신랑으로 인해 단촐하게 4주년 결혼 기념일 행사는 끝났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결혼 기념일에 명품 백, 반짝거리는 뭔가가 박혀 있는 반지를 받았네, 부부 여행을 갔네 등의 자랑을 듣고 나면 솔직히 나 왜 이러고 사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 바로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신랑에게 5주년 결혼 기념일은 뭔가 특별한 거 해달라고 철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큰 기대없이 결혼 기념일 다음 날 아침에 신랑이 써 준 카드를 펼쳐 보았습니다.

 

To. 신부 (결혼한지 4년이나 흘렀는데 신부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던데요.)

결혼 후 4년이 흘렀습니다. 
순식간에 흐른 듯 하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무엇보다도 감사드리는 것은 항상 저의 곁에, 저희 편에 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중간 생략)

몸은 피곤하지만  당신이 있어 행복하고
가난하지만 당신이 있어 풍요롭고
힘들 때도 있지만 당신이 있어 유쾌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랑에게 받은 카드를 쭉~ 읽어 내려가는데, 눈물이 펑펑 났습니다.

갑자기 영국에 와서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제 눈 앞을 스쳐 지나가는 거에요.
30
년 만에 가장 추웠다는 영국 겨울, 집 계약이 어긋나 일주일 동안 집 구하러 다닌 일,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일이 구해지지 않아 외롭고 힘들었던 일, 가난하고 힘든 생활 때문에 신랑과 자주 다툰 일 등등….


                                 
                                 2010년 겨울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남들처럼 화려하지 않은 결혼 기념일이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직스러운 신랑이 있기에
나 때문에 산다는 신랑이 있기에
(시부모님 죄송해요. ^^)
맛있는 음식 잘 해주는 신랑이 있기에

전 행복합니다.


                                        항상 우리 부부의 모습이길..... (출처: 구글 이미지)

이제 신랑 학위 받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신랑 월급 받을 날이 머지 않았네요.)

조금만 더 고생하면 우리에게도 밝은 미래가 있겠지요.

힘들게 공부하고, 생활하시는 유학생 및 해외 사는 부부들, 힘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