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5월 21일, 부부의 날이다.
2(둘)가 1(하나)가 되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5월 21일이라고 한다. 부부의 날이 있다고는 알았지만, 오늘인지는 사실 몰랐다. 사실 결혼기념일도 깜박하는데 나인데... 그런데 올해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오늘의 부부의 날이라고 해서 알게 된 것이다. 아마도 해외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출산하고 살면서, 예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부부의 의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참고로 영국에는 정확히 부부의 날은 아니지만, 매년 8월 18일이 'National Couple's Day'라고 한다. 나라마다 부부, 커플을 기념하는 날이 있다는 게 재미있다. 그 정도로 부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해외에서 힘들 때, 한국 음식이 나를 살렸다
영국에서 살던 시절, 힘들거나 아프거나 지칠 때면 나는 항상 한국 음식을 찾았다.
이국땅에서 감기 하나 걸려도 마음까지 무너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몸이 아프면 괜히 한국이 그립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에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건지..."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때 남편이 묵묵히 부엌으로 가서 닭곰탕을 끓여주고, 꼬리곰탕을 푹 고아서 내밀어 주면, 그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레몬 생강차를 꿀에 타서 건네주던 남편의 손도 떠오른다.
돌이켜 보면, 해외 생활에서 한국 음식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그건 한국에 있는 것 같은 안도감이었고, "여기서도 괜찮아, 우리 둘이 있잖아"라는 위로였다. 영국 슈퍼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를 한국 식료품점에서 어렵게 사다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꽃할배를 시청하던 그 당시 금요일 밤. 그게 우리 부부에게는 최고의 힐링이었다.
해외에서는 맘 놓고 수다 떨 친구도 별로 없고, 함께 밥 먹을 사람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밥친구가 되는 것이다. 힘든 날 "뭐 먹고 싶어?"라는 한마디가, 사실은 "오늘 많이 힘들었지?"라는 말과 같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매일 밥을 차려주는 남편
한국에 돌아오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친구도 가족도 가까이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은 배달 한 번이면 뚝딱이니까. 그런데 한국에서의 일상도 만만치 않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면, 해외에서 느꼈던 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또 다른 고단함이 찾아온다.
그런데 신기한 건, 한국에 와서도 우리 부부의 위로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우리 집은 식사를 거의 남편이 담당한다. ㅎㅎ 워낙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솔직히 요리를 잘 못하고, 요리하는 것 자체를 즐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매일 밥을 차려주는 남편에게 늘 고맙다. 최근에도 마늘쫑 장아찌를 담그고 , 중식 볶음밥을 만들어 주고, 차돌 된장찌개에 계란말이까지. 매일 매일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주는 남편을 보면, 영국에서 아픈 나를 위해 닭곰탕을 끓여주던 그때와 마음이 다를 게 없구나 싶다.
해외에서는 한국 음식이 '생존'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남편의 밥상이 '일상 속 사랑'이 되었다. 환경은 달라졌지만, 밥 한 끼에 담긴 마음은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똑같다. 가끔은 아이들 없이 단둘이 외식을 하면서, 연애할 때처럼 마주 보고 밥을 먹는 시간. 그게 우리에게는 여전히 최고의 데이트다.
스푸닝, 숟가락처럼 포개지는 부부의 밤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사랑 표현이 떠오른다. 바로 '스푸닝(Spooning)'이다.
영국에서 살 때 BBC 기사에서 처음 이 단어를 접했다. 숟가락 두 개를 포개 놓은 듯,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뒤에서 꼬옥 껴안아주는 자세다.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cuddling(꼭 붙어자기)"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고,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가까움과 친밀감의 표시로 여겨진다.
사실 나도 이 스푸닝을 아주 좋아한다. ㅎㅎ 언제부턴가 남편의 넓은 등에 찰싹~ 달라 붙어야만 잠이 잘 오더라. 처음에 남편은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따뜻한 상대방의 체온을 느끼면서,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그래야 잠이 오니까. ㅎㅎ 특히 영국 클래식한 오래된 집에서 겨울 추위를 견디는 데 스푸닝은 필수였다.
요즘 주변 지인들한테 물어보면, 각방이 너무 편하다고 하는 분들이 꽤 많다. 나도 가끔 혼자 잘 때가 편할 때가 있다. 솔직히. 그런데 아직까지는 남편과 같이 자는 게 더 좋다. 그냥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느낌이랄까.
신혼 때의 스푸닝, 육아 후의 각방 — 한국 부부의 현실
한국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신혼의 20대 부부는 한 몸이 돼 포개서 잔다. 30대까지는 마주보고 자지만, 40대는 천장을 향해 자고,
50대는 서로 등 돌리고 자고, 60대는 떨어져서(각방에서) 자고, 70대는 피차 어디서 자는지 모르고...
농담 같지만,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꽤 현실적이다. 신혼 초에는 스푸닝은 물론이고 한 이불 속에서 오밀조밀 자던 부부도, 아기가 태어나면 상황이 확 달라진다. 아기 야간 수유 때문에 남편은 거실로, 아내는 아이와 안방에서.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취침 시간도 달라지고, 각자의 잠자리가 편해지고, 어느새 "원래 따로 자는 거 아니었어?"가 되어 버린다.
영국도 마찬가지? Sleep Divorce(수면 이혼)의 시대
재미있는 건, 영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이걸 아예 'Sleep Divorce(수면 이혼)'라고 부른다.
영국 부부 5쌍 중 1쌍이 정기적으로 따로 자고 있고, 29%는 아예 영구적으로 각방을 쓴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55세 이상에서는 각방 비율이 20%까지 올라가고, 반면 18~34세 젊은 부부는 10% 정도만 따로 잔다고. 코골이가 가장 큰 원인(71%)이고, 뒤척임, 서로 다른 수면 패턴, 취침 시간 차이 등도 한몫을 한다.
흥미로운 건, 각방을 쓰는 부부 중 28%가 오히려 "따로 자는 것이 관계를 살렸다"고 답했고, 60%가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같이 자든, 따로 자든,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든 서로를 향한 마음이 식지 않는 것이 아닐까.
부부의 날 특별 퀴즈: 우리 부부는 건강할까?
부부의 날을 맞아, 한 가지 재미있는 테스트를 소개한다.
영국 BBC와 가디언(The Guardian)지의 관계 상담 전문가 파멜라 스티븐슨 코널리(Pamela Stephenson Connolly) 박사가 개발하고, 영국 카운셀링 협회(BACP)의 자문을 거친 부부 관계 건강 검진 테스트다. 10개의 핵심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5점 척도(항상 4점 ~ 전혀 없다 0점)로 채점한다. 총점은 40점 만점.
지금 한번 해 보자! ✍️
(항상=4 / 대부분=3 / 때때로=2 / 거의 없다=1 / 전혀 없다=0)
1️⃣ 서로의 사고방식과 결정을 존중하나요? (의견이 달라도) 2️⃣ 삶의 목표와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나요? (양육, 저축 등)
3️⃣ 일과 가사 외에 둘만의 시간을 자주 보내나요? 4️⃣ 배우자가 공정하고 진실하다고 믿나요?
5️⃣ 나 스스로 배우자에게 공정하고 정직한가요? 6️⃣ 서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이 된다고 느끼나요?
7️⃣ 언쟁 시 인신공격이나 화를 내지 않고 대화하나요? 8️⃣ 가사, 육아, 집안 행사 등에서 평등하다고 느끼나요?
9️⃣ 안아주기, 뽀뽀 등 애정 표현을 자주 하나요? 🔟 건강한 부부 관계(잠자리)를 유지하고 있나요?
📊 점수 해석
점수 구간 관계 건강도 권장 행동 영국 통계 비율
| 35~40점 | 매우 건강 💚 | 현재 수준 유지 노력 | 23% |
| 25~34점 | 양호하나 개선 필요 💛 | 특정 영역 집중 개선 | 51% |
| 25점 미만 | 심각한 개선 필요 🧡 | 전문 상담 권장 | 26% |
10개 질문을 영역별로 나눠보면 이렇다.
- 상호 존중과 신뢰 (1, 4, 5번) — 관계의 토대
- 의사소통과 갈등 해결 (6, 7번) — 문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
- 공유와 평등 (2, 3, 8번) — 일상적 삶의 균형
- 신체적 친밀감 (9, 10번) — 애정 표현의 빈도와 질
나의 경우, 자가 진단 결과 30점이 나왔다. '양호하나 개선 필요' 구간의 중상위권. 세부적으로 보면 상호 존중과 신뢰는 11점(12점 만점)으로 높았지만, 의사소통 영역은 5점(8점 만점)으로 좀 아쉬웠다. 18년 차 부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이지만, 일과 육아로 인해 대화 시간이 줄어든 것이 점수에 반영된 것 같다. (참고로 남편의 진단 결과는 25점이었다. 😅 우리 부부 사이에도 체감 온도 차이가 있다는 걸 확인...)
영국 관계 상담 전문가들은 이 테스트를 연 1~2회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을 권장한다. 점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 추이라고. 부부의 날, 오늘 한 번 같이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각자 따로 해 보고, 결과를 비교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다.
오늘 밤, 밥 한 끼와 스푸닝 한 번
해외에 계신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것이다. 이국땅에서 배우자가 해주는 한국 음식 한 그릇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그리고 한국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부부들도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거창한 선물이나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남편의 손길, "오늘 뭐 먹을까?" 하고 서로의 입맛을 챙기는 그 순간이 사실은 가장 큰 사랑 표현이라는 것을.
영국에서 둘이 삼겹살 구워 먹던 그 좁은 부엌도, 한국에서 남편이 차돌 된장찌개 끓여놓고 "밥 먹어~" 하고 부르는 식탁도, 결국 같은 마음이었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
그리고 오늘 밤, 각방을 쓰든 한 침대를 쓰든, 잠들기 전에 잠깐이라도 상대방의 등에 살짝 붙어보는 건 어떨까. 스푸닝까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 하루 수고했어" 한마디와 함께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것.
곧 있으면 20년을 함께 살아온 우리 부부가 찾은, 가장 확실한 사랑의 방식은 결국 밥 한 끼의 진심과, 잠들기 전 그 짧은 온기였다.
오늘도 우리는 밥으로 사랑하고, 스푸닝으로 잠든다.
✅ 부부의 날 퀴즈, 해 보셨나요? 댓글로 점수 구간만 알려주셔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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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생활 중 하나보다 둘이라서 다행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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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해외 생활 유일한 친구, 부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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