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브리스톨 언니(영국품절녀)에요.
오늘 아침 10시, 드디어 한국 남아공전이 열려요. 손흥민 선수가 뛰는 경기라 저도 모르게 마음이 들뜨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영국에 있을 때처럼 동네 펍에서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절이 오늘따라 더 그립네요.
"멀리 살아본 사람은 알아요."
"내 나라가 밖에서 칭찬받는 한 줄이, 어떤 날엔 약이 된다는 걸요."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뛰던 시절, 저는 영국에 있었어요. 그때 저희 부부한텐 작은 규칙이 하나 있었어요. 박지성이 나오는 날엔 무조건 집 근처 펍으로 간다.
사실 처음엔 좀 사렸어요. 영국 사람들, 평소엔 어찌나 수줍은지 눈도 잘 못 마주치는데… 축구만 틀면 싹 돌변하거든요. 다들 갑자기 우락부락 상남자(요즘 말로 테토남?)가 되어 소리 지르고 테이블 두드리고. 그래서 괜히 갔다가 지기라도 하면 분위기 싸해질까 봐, 저랑 남편은 한동안 펍 근처도 안 갔어요. 몸 사리는 부부였던 거죠.
그런데 박지성이 선발로 나온다는데, 그걸 어떻게 안 가요. 큰맘 먹고 갔죠. 근데 웬걸 — 축구 좋아하는 영국 남자들은 박지성을 다 알더라고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일단 반갑게 인사부터 건네는 거예요. "Park 너네 나라 선수잖아!" 하면서요. 그 한마디에 긴장이 스르륵 풀렸어요. 그날부터 저희 규칙이 생긴 거예요. 축구는 무조건 펍으로 고고.
사실 박지성이 맨유에 온 그 해가, 공교롭게도 제가 영국 생활을 시작한 바로 그 해였어요. 그래서 저한텐 박지성의 맨유 시절이 곧 제 영국 시절이기도 해요. 그 도시 이름 하나에 제 20대가 통째로 들어 있는 셈이죠. (영국 발음으로는 맨유 아니고 만유 ㅎㅎ)
지금 돌아봐도 그 시절, 영국에 살면서 우리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걸 본 건 정말 큰 행운이자 자부심이었어요. 세계에서 제일 깐깐하다는 무대에서, 영국 사람들이 "쟤 우리가 아는 선수야" 하듯 박지성을 알아봐 줄 때면 괜히 제 어깨가 다 펴졌거든요. 솔직히 그 덕에 축구 볼 맛도, 펍 갈 맛도 제대로 났고요. ㅎㅎ
그런데 딱 하나, 두고두고 아쉬운 게 있어요. 그렇게 펍에서, 또 화면으로는 참 많이도 응원했는데 — 정작 박지성도, 손흥민도, 그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웸블리에서 우리 대표팀을 직접 보며 벅찼던 그 기분을, 정작 두 선수 경기에선 끝내 못 누려봤거든요. 언젠가 꼭 한 번은, 그 자리에 직접 있고 싶어요.

친한 동생이 박지성 선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에요.
내가 뛴 것도 아닌데, 박지성이 좋은 플레이 한 번 할 때마다 제가 칭찬받은 사람처럼 으쓱했어요. 타지에서 향수병에 절어 있을 땐, 그런 순간이 진짜 약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외신이 한국 축구 칭찬한 기사를 보면 반사적으로 캡처부터 해요. 자랑하고 싶어서요. 이번 월드컵 체코전 끝나고도 그랬어요. BBC가 우리 선수 칭찬한 기사 보면서, 또 혼자 흐뭇했죠.
전혀 다른 걸 알게 됐어요.
우리 선수가 안방에서 어떤 작은 말을 들었다는 걸, 저는 한국 기사가 아니라 바다 건너 기사로 먼저 알게 됐어요. 자세한 내막은 적지 않을게요. 다만 그 사실 하나가 오래 마음에 걸렸어요.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할 자리에서… 그리고 그걸 외신이 대신 또박또박 기록해준다는 그림이, 어쩐지 좀 외로웠거든요.
타지에 살면 누구나 작은 민간 외교관이 돼요. 누가 한국 욕하면 발끈하고, 작은 칭찬 하나에 울컥하고. 그렇게 바깥에서 내 나라를 지키며 살다 보면, 정작 안에서 난 생채기를 밖에서 전해 들을 때가 제일 시려요. 자랑할 땐 그렇게 빨리 퍼지던 소식이, 이런 건 왜 꼭 멀리 돌아서 오는 걸까요.
오해는 말아주세요. "영국 언론은 점잖고 우리는 못됐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에요. 제가 7년 살며 본 영국 미디어는 오히려 더 살벌했어요. 그 비교는 감정 빼고 본진 블로그에 따로 적어뒀고요. 여기엔, 그냥 그날 밤 제 마음만 적고 싶었어요.
좋다가도 미워지는 거더라고요.
한참 일렁이다가, 결국엔 이렇게 가라앉았어요. 화도 슬픔도 아니고, 그냥 조용한 마음으로요. 칭찬받는 날도 우리고, 시끄러운 날도 우리니까. 저는 여전히 멀리서 우리 선수들 잘 되길 바라는 쪽이고, 다음 경기엔 또 캡처할 칭찬 기사가 뜨길 바라요. 그거면 됐어요. 오늘은 딱 거기까지만. 우리나라 남아공 꼭 이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 여긴 마음만, 사실관계는 저쪽에
이 글엔 제 감정만 담았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국과 영국 축구 미디어 문화가 왜 이렇게 다른지는 — 표까지 곁들여 차분하게 본진 블로그에 정리해뒀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로 오세요.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멀리서 응원해본 적 있는 분이라면, 이 마음 조금은 아실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