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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이슈가 되는 발칙한 주제들

영국에서 0시간 파트 타임 경험, 이건 아니야

by 영국품절녀 2013. 8. 2.

 

제가 전에 영국 시간제 일자리의 장점들을 나열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어떤 분은 제가 정규직보다 파트타임을 더 선호한다고 오해를 하시기도 했는데요, 당연히 저도 정규직에 종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니 차선책으로나마 파트 타임을 선택한 것이랍니다. 다만 평소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던 파트 타임 개념과는 달리 영국에서 직접 경험해 보니, 장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실제로 영국 파트 타임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니, 파트 타임도 나름 정규직과 임시직에 따른 큰 양질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한국 온라인 기사에서 "영국 왕실의 노예 계약, 임시직 0시간 파트 타임" 에 대해 읽게 되었는데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영국 대학 기숙사 청소가

바로 "임시직 0시간 파트 타임"인 거에요.

 

 

가디언 신문을 보니, 임시직 0시간 노동 계약(Zero – Hour contracts)이란 말 그대로 고용주들의 필요에 의해 유연하게 노동력을 값싸게 쓰는 방식입니다. 물론 고용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계약서에 노동 기간도, 시간도 확실히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최소한의 노동 임금을 제공하고 있지요. 또한 병가나 휴가도 보장하고 있지 않아, 시간 당 일을 한 만큼만 페이가 지급되는 것입니다.

 

 

영국 왕실 노예 계약과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영국에서 가장 큰 스포츠 용품 체인점 스포츠 다이렉트는 무려 90%의 직원 (약 2만 3천명) 임시직 0시간 파트타이머들이며, 병가 및 휴가비 일체 없이 노동 시간조차도 전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 당 페이 지급 이외에 직원들을 위한 보너스 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근무 태도 평가에 따라 보너스가 지급이 된다고 합니다. 이미 20명의 직원들이 보너스 지급 대상자에서 열외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정확한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얼마든지 고용주의 판단에 의해 보너스 지급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source)

 

  

 

제가 "영국 시간제 일자리"를 포스팅 하면서 "파트 타임의 유연성이 참 좋다" 라는 말을 했었는데요,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source)

 

 

그렇다면, 제가 경험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와 임시직 0시간 파트 타임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알아 볼게요.

 

 

1. 노동 시간의 보장 여부

 

제가 작년 9월부터 6월 초까지 일을 했던 학교에서는 정확하게 주당 노동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물론 학교의 특별한 행사 및 일정에 따라 스케줄이 조금씩 변경이 되어 일을 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기도, 늘어나기도 했지만요, 매 달 일하는 시간 차이는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일하고 있는 파트 타임은 노동 시간이 예측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일 달라집니다.

 

실제로 다른 기숙사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니, 일이 많을 때에는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정신 없이 일을 시키다가, 어떤 날에 일이 없다면서 나오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네요.  저도 요즘에는 일이 없어서 예상보다도 2시간이나 일찍 귀가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당일 날 아침이 되어서야 통보를 하거나 아니면 일을 하는 도중에 일찍 퇴근하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피고용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한달 동안 일을 어느 정도 하겠거니 예상하고 지출 규모를 잡을 텐데요, 저 역시도 주당 5일씩 하루에 6시간씩 일을 해서 받는 돈으로 앞으로 생활비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빨리 끝나게 되니,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이미 지출 규모를 예상하고 소비를 했는데, 계획보다 돈이 적게 들어온다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2. 병가 및 휴가 비용 및 보너스 제공 유무

 

임시직 0시간 파트 타이머들은 전혀 병가 및 휴가 비용 등을 제공받지 못합니다. 물론 고용주에 따라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시간 당 페이에 Holiday pay가 매 달 포함되어 나옵니다. 단, 주말 급여는 평일과 동일하며, 병가도 인정이 안 되지요. 반면에 정규직 파트 타이머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들은 임시직 파트 타이머들과의 페이 차이는 얼마 안 되지만, 주말 급여는 평일 페이보다 두 배가 높고, 병가 인정도 된다고 하네요.

 

임시직 파트 타이머에서 정규직 파트 타이머가 된 분의 말입니다.

 

4~5성급 호텔에서 일을 할 때에는 병가 인정이 안 되고, 그저 시간 당 페이만 지급되었다. 그런데 여기는 (대학교 기숙사 청소) 호텔에 비하면 천국이다.

 

 

 

 

영국은 공/사기업에서 점점 0시간 파트 타이머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출처: BBC)

 

 

아무리 임시직 파트 타임이라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부 고용인들은 자신이 필요할 때에는 막 부려먹다가, 일이 없을 때에는 비용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아예 출근조차 하지 말라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작년부터 영국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요,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정규직의 수는 점점 줄이되, 파트 타이머들의 고용은 증가시키고 있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현재 영국에서는 2011년 기준으로 약 이십 만 명이 임시직 0시간 파트 타이머들로 평균 £9 를 받고 일을 하고 있으며, 일부는 최소 임금인 £6 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보통 직원들의 경우에는 약 15£를 받는다고 하거든요. 또한 이마저도 노동 시간이 확실하게 보장되지도 않아 피고용인들의 생활은 상당히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일하는 곳에서도 보면, 일부는 아예 청소 일을 하고,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다른 곳에서 파트 타임을 하면서 두가지 일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노동당에서는 0시간 노동 계약에 대해 큰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공/사기업들에게는 유리한 고용 방식이겠지만, 이는 분명 노동 착취라고 비판을 하고 있지요. 특히 취업이 어려운 젊은이들이 대부분 임시직 파트타이머들이에요.

 

 

 (source)

 

"진짜 일"을 달라고 외치는 영국 젊은이들의 말~

 

 Zero-hour contracts mean zero rights

 

0시간 노동 계약 = 노동 권리 無

 

 

 

다행히 영국의 대부분 체인점에서 임시직 0시간 파트 타임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형마트인 아스다, 테스코, 세인즈 베리 등에서도 정규직의 수는 얼마 되지 않으며 파트 타이머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지만, 노동 시간 및 병가, 휴가를 확실히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청소 일을 하는 올해 대학 졸업한 영국 친구는 밤 시간과 주말에는 세인즈베리에서 일을 합니다. 제가 그녀에게 앞으로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녀의 대답은요??

 

원래는 관광업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방면으로 취업하기 너무 어렵다. 아무래도 세인즈베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할 것 같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나처럼 이렇게 임시직 파트 타이머로 일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대학 졸업 후에 마트에서 일을 하는 영국 대졸자들을 보면 안타까워 보였는데요, 이제는 고용의 안정성이 전혀 보장 되지 않는 스포츠 다이렉스와 같은 곳에서 임시직 0시간 파트 타이머로 일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위치가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습니다. 한국도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는데요, 이런 노동 착취의 성격을 띈 임시직 파트 타임이 아닌, 고용의 안정성과 복지가 보장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영국 젊은이들이 외치는 "일 다운 일을 달라" 라는 문구가 우리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 같아서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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