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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남매맘으로 살아가기

임산부 좌석은 있으나 마나, 외출이 겁나

by 영국품절녀 2014. 8. 22.

오늘은 전편 (영국 - 한국 임산부 뱃지, 닮았지만 다르다.) 에 이어, '임산부 위한 양국 승객들의 좌석 양보' 입니다.

영국에서 임신을 한 저에게 임산부 뱃지에 대해 알려준 지인은 임산부 뱃지 효과를 톡톡히 봣다고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버스에서는 대부분 승객들이 노약자, 임산부는 물론이고 유모차를 가지고 타는 부모에게도 항상 배려석 및 공간을 비워두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영국인들은 임산부 및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에게도 참 배려를 잘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출처: Google Image)

 

그런데 실제로 제가 영국에서 사는 동안 대중 교통 이용이 현저히 낮았으며, 임산부로서 자리 양보를 받아 본 적은 없었으므로, 단순한 저의 경험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기에는 무리라 온라인 기사들을 검색해 봤지요. 역시나 영국 왕실에서도 임산부 뱃지의 효용을 알리면서 임산부 좌석 양보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어요.

 

 

(출처: mirror)

 

아무래도 제가 사는 곳은 작고 평온한 시골 동네라서 임산부 좌석 문제가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런던과 같은 도시에서는 임산부를 위한 좌석 양보 비율이 제가 예상한 바와는 사뭇 차이가 있었습니다.

 

(출처: London Evening Standard)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2010년도에 1,000명의 29~40주인 임산부에게 버스, 지하철의 좌석 양보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1/2이상이 좌석 양보를 받는 일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4월에도 실제로 웨스터민스터 대학생인 Kotjan이 임산부 인척(?) 임산부 뱃지를 달고 런던 지하철에서 임산부 뱃지의 효과 및 런던너들의 좌석 양보를 실험해 보았다고 합니다. 

 

 

(출처: Time Out London)

 

임산부로 가장한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승객에게는 아래와 같이 적힌 카드를 줍니다.

Congratulations! (축하합니다.)
You’ve offered your seat to a pregnant woman. (임산부에게 당신의 자리를 제공했군요.)

그렇지 않은 승객들에게는
You didn’t pass the test.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네요.)

일부는 당황스러워 하면서 그 때서야 비로소 임산부인 그녀에게 자리를 제공하려 했답니다.

결과는 약 100명의 런던 지하철 승객 중 단 "20"명만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고 하네요.


이 기사에는 트위터 리트윗 및 댓글들이 엄청 달렸어요. 대부분 런던너들의 비매너에 대한 비판이었어요. 20명이라는 숫자가 쇼킹할 뿐이다.. 가정 교육의 문제다 ~~ 이런 결과에 화가 난다~~

역시 바쁜 도시 런던도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나 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런던보다 서울 시민들의 임산부 좌석 양보 문제가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저는 약 3개월 동안 서울에서 살면서 그 동안 일주일에 적어도 3~4일은 버스,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임신 6개월차까지는 '배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내가 임산부라는 것을 모르나' 해서 승객들의 좌석 양보에 대해 그리 개의치 않았어요. 제가 서 있는 것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임신 7~8개월차 (배가 많이 나왔음에도)가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단지 딱 한 번 그것도 임산부 좌석이 아닌 (버스 뒤쪽) 일반 좌석에 앉으신 아줌마가 저를 불러 좌석을 양보해 주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임산부 좌석 배려를 받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임산부 좌석에 앉은 사람조차도" 저에게 양보를 해 준 적이 전혀 없습니다.

 

있으나 마나한 임산부 배려석~

 

 

저는 배가 많이 나온 뒤로부터는 갑자기 외출이 무서워졌습니다. 대중교통 이용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나가기도 전에 몸이 피곤해짐을 느낍니다. 특히 사람이 붐비는 시간이면 더더욱 말이지요. 가끔은 '임산부 뱃지를 가방에 걸고 나가 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가도 한번도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본 적이 없던지라 어색하다는 생각도 들고... 배가 이렇게나 많이 나왔는데 고작 이 뱃지가 없다고 해서 내가 임산부인 줄 모를까 라는 등등의 생각만 잔뜩~~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저는 임산부로서 내 권리는 내가 갖는다" 라는 생각으로~
버스에 빈 좌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임산부 좌석으로 향했어요.

그리고는 그 좌석에 앉은 젊은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 임산부 좌석인데요..

저에게 양보 좀 해 주세요.

 

그랬더니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얼른 자리를 양보해 주더군요. ㅎㅎ

 

 

저는 임산부 좌석을 보는 것 자체가 더 화납니다.

있으면 뭐해요??  좀처럼 임산부 좌석에 앉을 수가 없는데요.

차라리 없으면 기대라도 안할테니까요.

 

그 날  제 동생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줬더니.. 걱정스러운듯 건네는 말은

언니, 절대 혼자 있을 때 아줌마에게는 그렇게 하지마~
엄청 욕 먹을거야. 차라리 형부랑 같이 있을 때 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임산부인 제 동생 친구가 버스로 통근을 하는데, 임산부 좌석에 앉아 있었다고 해요. 그랬더니 앞에 서 있는 아줌마들이 그 친구를 내려 보면서.....

지만 임신했나...

뭐가 힘들다고.... 쯧쯧.....

 

 

그 친구는 너무 황당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부터는 무서워서 임산부 좌석에는 앉지도 않았다고 해요. 단언컨대 우리나라 임산부 좌석은 있으나 마나 무용지물입니다. 특히 지하철의 그 넒은 임산부 좌석에는 임산부는 거의 볼 수가 없어요. 제가 경험한 바, 지하철 2호선에서 저를 포함한 임산부 세 명이 임산부 좌석 앞에 서 있어도 그 누구하나 비켜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들 이어폰 귀에 꼽고 휴대폰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고요, 일부는 봐도 모른척 시치미 떼고 앉아 있지요. 울 신랑은 대놓고 양보해 달라는 말은 못하고, 저에게 "괜찮아?" 라는 말을 되풀이해도 그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일반인들은 임산부 좌석 양보에 주저할까요? 특히 우리나라는 버스 안내 방송으로 임산부를 위한 자리이므로 양보하거나 비워 두라고 하는 데도 왜 자신들의 자리인냥 차지하고 있는 걸까요?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에 실린 Esther Walker (당시 임신 7개월차)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1. 사람들은 임산부인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등... 임산부인지 알 수가 없을지도 몰라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임산부 뱃지' 일 것입니다. 특히 임신 초기에 배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덧, 냄새 등으로 대중 교통 이용이 무척 힘들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임산부 뱃지의 효용성이 낮은 편입니다. 저 역시도 막상 가지고는 있지만 사용하기는 다소 꺼려지니까요. 우리도 영국처럼 왕세자비가 직접 임산부 뱃지의 이용을 널리 홍보한 것처럼, TV를 통해 적극적으로 널리 홍보 좀 했으면 좋겠어요.

 

(출처: Google Image)

 

  "I'm not pregnant, I'm just fat"  VS   "I'm not fat, I'm pregnant"

 

실제로 임산부인줄 알고 자리를 양보했는데, 임산부가 아닌...

단지 배가 많이 나온 뚱뚱한 사람일 경우에는 서로 무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해요.

 임산부와 살찐 사람의 구별이 어려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합니다.

이러니 임산부 뱃지가 필요하겠지요.

 

2. 임산부인지는 알지만, 좌석 양보에는 관심없다.

아마도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임산부 좌석 써 붙어 있어도, 양보해 달라고 방송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임산부 앞에 놓고 그 곳에 앉아 있으니 말이에요. 저는 참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임산부의 고통을 모르는 남자 혹은 미혼 여자들은 임산부에게 양보를 덜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모두 경험한 아줌마들이 더 양보를 안 하고 설상가상으로 질타까지 한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이런 광경은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지하철에서 만난 임산부 뱃지를 착용한 사람?? 확실히 남자지요??

그의 모습을 보고 일부는 웃음으로.. 다른 일부는 눈쌀을 찌푸리는...

요즘 제가 임신 8개월차인데요, '신랑도 임신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종종 해 봅니다. ㅎㅎ

 

(출처: http://whatisawwhatiheard.blogspot.kr/2013/02/baby-on-board.html)

 

영국이나 한국이나 임산부 뱃지와 좌석 배려 문제는 비슷해 보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는 있을 것에요. 제가 임신을 하고 보니 더욱 더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자 배려심이 낮음을 체감합니다. 대중교통 임산부 좌석 양보는 말할 것도 없고요, 뻔히 유모차를 끌고 따라 나가는 엄마를 보고도 문을 확~ 닫고 먼저 가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실제로 이젠 런던이 신사들의 도시가 아닌 것처럼 서울도 동방예의도시(?)는 아니라는 사실은 지난 3개월 동안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