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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

삼대가 모여 김장한 날, 철없는 며느리 못 말려

by 영국품절녀 2012. 11. 27.



요즘 한국은 김장 철인데 높게 치솟은 배추 값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저희 시댁은 친적 분이 직접 배추 농사를 하시므로 다행히 지난 주에 김장을 했다고 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중에,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네요.

얘야, 김장을 했는데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지난 번 김장 할 때에는 네가 있어서 참 좋았었는데... 네가 있어서 보쌈도 먹고...

할머니도 네 칭찬을 그렇게 많이 하시더라.... 밝고 명랑하고 애교도 많다고...

 

저는 작년 겨울 약 3개월 동안 개인적인 일로 인해 한국에 있었어요. 김장 시기가 맞아 시댁과 친정의 김장을 전부 다 도와 드렸답니다. 특히 시댁에서는 시할머니, 시어머니와 함께 맏며느리인 저 다시 말해서 맏며느리 3대가 모여 처음으로 함께 김장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적잖이 찔리는 무언가(?)가 있었답니다.

 

                               삼대가 작년 김장 철에 만든 김치를 올해 한국 다녀온 신랑이 가져왔어요.

 

그러면, 처음으로 삼대가 모인 김장 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지요.

작년 한국에 있는 동안 저는 서울에 있는 친정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내일 아침 일찍 김장을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오늘 (김장 전날) 저녁에 시댁(경기도)에 와서 자든지, 아니면 내일 (김장 당일) 아침 일찍 오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 내일 아침 일찍 갈게요" 했지요.

 

그런데 아뿔싸~~~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에 9시가 넘은 거에요. 저는 왜 안 깨웠냐고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시고, 저는 준비를 얼른 하고 시댁으로 출발을 했지요. 왜 하필 그런 날은 버스도 안 오고, 막히는지요. 11시가 넘어서 시댁에 도착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도 밝은 목소리로) 어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아버지 안녕하세요!!!

에그머니.. 시아버지께서 - 절구통에 마늘 찧기 - 를 하고 계시네요. 얼른 아버지 하시는 일을 받아서 조용히 마늘을 열심히 막 찧었어요. (폭풍 마늘 찧기라고....  들어는 보셨나요?)

어머니는 제가 늦어서 기분이 좋지 않으시는지 쳐다 보시지도 않는 거에요. 흑 ㅠㅠ

(마늘을 재빨리 찧은 후에) 어머니, 어머니.. 마늘 어디다가 놓을까요? 이제 저 뭐 할까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너는 지금 몇 시니? 다 끝나니까 오니? 나 너랑 말 안 할꺼야~~  (허걱.. 어머니~~~ 그것만은.... ) 

어머니의 한마디에 분위기는 살벌~~  시할머니께서는 모른 척하시면서 김장 속만 만드시고요.

역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제대로 맞는 순간이에요.

아니 왜 그래... 그러지마~~~

저는 그저 어머니 편에서 이것저것 도와드리면서 말을 계속 했어요.

어머니, 죄송해요. 이제 뭐 할까요? 이것 하면 되나요???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삼대가 오순도순 모여 앉아 김장을 하게 되었어요. 역시 전 못 말립니다. 김장 날에는 항상 고기를 먹던 저인지라... 김장 날 고기가 없다니.. 뭔가 이상한 거에요.

(혼잣말이지만 크게) 김장하는 날은 보쌈을 먹어야 하는데...

어머니, 우리는 보쌈 안 먹어요??

 

어머니는 철없는 며느리의 말이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으셨는지... 웃으시면서 "고기 먹고 싶니??" 하시네요. (저희 친정에서는 항상 김장 날에는 고기를 먹는데요, 시댁은 꼭 그렇지는 않았나 봅니다.) 고기를 좋아하시는 시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시더니 "그래, 내가 고기 사 오마" 하고 바로 나가셨어요.

 

                                             영국에서 울 신랑이 삶아 준 돼지 삼겹살

 

그렇게 삼대 맏며느리들은 순조롭게(?) 김장을 마치고, 새로 막 담은 김치와 함께 어머니가 맛있게 삶아주신 보쌈 고기를 먹었답니다. 정말 그 날 고기 맛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에요. 너무 맛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울 신랑이 고기를 잘 삶는 것이 시어머니를 닮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결혼하고 처음 시댁에서 김장한 날 - 거기다가 시할머니도 오신 날 - 저는 가장 어린 사람으로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두 분다 연로하셔서 힘드시므로, 어린 제가 일찍 와서 일을 했어야 하는데, 도착하니 거의 다 끝난 상태였거든요. 너무 죄송하기만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댁 분들은 철없는 며느리의 실수를 잘 덮어주시고, 그래도 김장하는 날 또 저를 그리워하셨다니 너무 감사할 뿐이지요. 올해 김장 날에도 그 날 저의 실수담을 이야기 하시면서 "우리 며느리가 있었으면 고기도 먹었을텐데.." 하시면서 제가 너무 보고 싶으셨대요. 시할머니께서는 밝고 명랑한 손주 며느리가 그저 귀엽기만 하신가 봅니다. ㅎㅎ 아무튼 맛있는 시어머니의 김장 김치를 맛 볼 수가 없어 속상한 며느리와 그 맛을 못 보여 주는 게 마냥 아쉽기만 한 시어머니는 쿵짝이 참 맞는 인연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매 순간 어머니의 김치가 참 그립기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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