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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이슈가 되는 발칙한 주제들

영국 쇼트트랙 선수 페이스북, 한글 악플 도배

by 영국품절녀 2014. 2. 14.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어제 오후 학교에서 워크숍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품절녀님께서 쇼트트랙 경기 중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고 말해주더군요.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쇼트트랙 500m 결승전에서 영국인 선수가 무리하게 안쪽으로 파고들다 넘어지면서, 박승희 선수와 이탈리아 선수와 부딪혀 넘어졌던 것이지요. 박승희 선수는 단거리 경기이기 때문에 재빨리 일어나서 다시 경기에 복귀하려다 다시 넘어지기까지 했더군요.

 

 

결국 영국인 선수가 실격처리 되어 동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무척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결승전에 나왔던 4명 중 가장 우승 확률이 높았던 선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실수가 아닌 이유로 메달 색깔이 결정되었고, 부상까지 입다 보니 선수 본인 스스로도 굉장히 속상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기 후 눈살을 찌푸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한국 네티즌들이 영국인 선수의 facebook 에 악플을 쏟아낸 것이지요. 그들은 그녀에게 불편한 감정을 여지 없이 분출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일부는 크리스티를 격려하기도 했지만요. 아울러 한국인들끼리 댓글로 싸움까지 – 그것도 한글로 - 벌어져서 그 선수의 홈페이지를 도배해 놨더군요. 저는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출처: Elise Christie 페이스북 댓글 캡쳐)

 

경기 후, 영국인 선수의 인터뷰를 보니 한국인이 듣고 싶었던 내용이 전혀 없더군요. 그녀는 반칙을 한 것이 자기인 줄 몰랐다고 하였지요. 그저 본능적으로 행동했을 뿐인데, 지금은 후회스럽다고 했어요. 그리고 심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실수이든 고의든 간에, 자신 때문에 넘어져 정당한 레이스를 펼친 다른 선수에 대한 미안함이 별로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터뷰를 듣는 순간 좀 언짢기는 했습니다. 바로 이 인터뷰가 한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부채질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BBC 인터뷰 장면

 

매너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한국인들은 왜 그녀의 홈페이지에까지 가서 악플들을 쏟아냈을까요?

품절녀님과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저희도 종종 악플들을 접하고는 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건전한 비판이나 다른 의견을 제시해 준 분들의 댓글은 그대로 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댓글로 싸움까지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관련 댓글들을 지운 적도 있습니다.

 

(출처: Elise Christie 페이스북 댓글 캡쳐)

 

악성 댓글에 대한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로 인해 상처받은 한 연예인의 자살사건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듯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만, "한국인의 스트레스지수" 가 높은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수치는 높은데,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는 쉽게 표출할 수는 없지요. 학창시절부터 좁은 교실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적절히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조차 배울 기회를 상실하기도 했고요. 익명의 인터넷 공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분출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겠네요. 이번 경우도 한국인 선수의 금메달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했던 사람들이 그것이 좌절되자 그 원인 대상자에게 화풀이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댓글의 대상자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어서 문제가 될 듯 합니다.

 

 

 

(출처: Elise Christie 페이스북 댓글 캡쳐)

 

물론 댓글을 남긴 한국인들은 영국인 선수 때문에 4년간 고생한 한국인 선수의 노력과 시간이 물거품 된 것에 화가 났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쇼트트랙 결승전 경기 중 넘어진 영국인 남자 선수 관련 포스팅에서 올림픽을 축제로서 즐기지 못하는 한국 선수에 대해서 짧은 의견을 남겼지요. 그에 관한 많은 반박 댓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올림픽을 위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된 지옥 훈련을 매일 받습니다. 그들의 피와 땀방울이 저들만의 몫일까요? 안타까움도 있을 테지만 그 이면에 크게는 기대를 걸고 지켜봐 주는 국가와 국민들 그리고 가슴 졸이며 뒷받침해준 부모님들 감독 코치..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이 함께 뛰는 것입니다. 과연 같은 입장의 님이라면 영국선수처럼 밝게만 웃을 수 있고 즐기실 자신 있으신지요?.

 

저는 한국인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 성적을 내기 위해 흘린 땀과 고통의 정도를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겪을 부담감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과연 윗글처럼 한국인 선수들만 고된 지옥 훈련을 받고, 국민과 가족의 한 몸에 기대를 받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모든 나라 선수들이 자신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많은 땀과 시간을 투자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뽑힌 선수들에게 거는 기대는 한국 못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로지 한국이나 아시아 국가들만 스포츠와 국가주의를 연결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 역시 재작년 런던 올림픽 당시 엄청난 스포츠 국가주의 열풍에 휩싸였었습니다. 영국 언론에서는 연일 메달리스트들의 과거 개인사를 들추어 내면서 그들의 인생을 드라마화 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올림픽 후 방송과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기대가 비단 한국이나 아시아 국가들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네요.

 

오히려 저는 선수촌과 같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개인 훈련 혹은 관련 단체의 지원만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는 외국 선수들이 오히려 더 대단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히딩크 감독이 처음 한국 대표팀을 맡고 난 후 했던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한국 축구팀의 약점은 기술이 아닌 바로 체력이라는 말을 오늘 다시 한 번 곱씹어 봤습니다.

 

영국인 선수는 경기 후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자신의 실수로 메달 색깔이 뒤바뀐 선수들에 대한 사과를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개인적으로 미안함을 표현했습니다. 그것도 한국인들의 악성 댓글이 난무하는 곳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심경을 남겼습니다.

 

 

한국인 및 모든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나는 일부러 충돌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경기를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박승희(선수)가 괜찮길 바랄 뿐 아니라 (끝까지 경기를 마친 박승희 선수가) 자랑스럽습니다.

 

영국 선수에게 인터뷰는 경기의 상황과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하는 자리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기자도 다른 선수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공격성 악플 폭탄이 쏟아지는 한 가운데서 이렇게 사과를 표현하는 영국 선수가 예전에 헐리웃 액션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메달까지 가져간 미국의 "모 선수" 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순수하게 보여집니다. 남은 경기에서도 행운을 빕니다.


이번 올림픽만큼 시작조차 하기 전부터 뒤숭숭한 분위기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대통령의 발언 – 안현수 선수 귀화가 체육계의 부조리 탓이 아닌지... – 은 아직 올림픽이 진행 중임을 감안하면 부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기적으로 선수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 만큼 이 사안이 중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역시 올림픽은 그저 스포츠 이벤트라고 하기에는 그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결과에 관계 없이 훈련 중 받았을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고 오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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