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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한국전쟁을 영국 중학생에게 가르치다

by 영국품절녀 2014. 3. 29.

안녕하세요? 품절남입니다. 요즘 며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블로그 포스팅을 못 했어요. 품절녀님의 컨디션도 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보니 마음은 블로그에 가 있는데, 몸이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저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4년간의 박사과정 중, 영국 학부생들을 가르쳐보기도 했고, 학회나 세미나에서 박사생들이나 교수들 앞에서 발표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국 청소년들과 만나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근처 영국 중학교(GCSE)의 역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정치학과 및 사학과의 교수 및 박사과정생들이 3개의 특강을 준비해서 프로그램에 참가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는 젊은 교수의 추천으로 저도 경험상 참여해 보았습니다.

 

특강은 "러시아 혁명,"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냉전" 의 세 개의 주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앞의 두 주제는 사학과에서 맡고, "냉전"은 저와 미국인 친구가 맡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영어가 아니었습니다. "강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었죠. 아무리 중학생들이라고 하더라도, 모처럼 대학까지 와서 드는 특강인데, 내용이 너무 쉬워서도 안될 것 같더군요. 영국 중학교 역사 교과서 수준 자체가 높기는 해도 냉전과 관련된 전문용어를 무차별적으로 남발할 수도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학생들이 역사를 좋아해서 온 것인지, 아니면 학교 행사니까 억지로 온 것인지도 알 수 없었기에 준비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소개해 준 교수로부터 받은 파워포인트 파일에는 강의할 주요 내용이 간략히 정리되어 있기는 했습니다만, 내용 자체는 전적으로 저와 미국인 친구가 채워 넣어야 했습니다. 강의 내용을 두고 고민을 하던 저는 이 기회에 영국 중학생들에게 "한국 전쟁" 을 한번 소개시켜 보기로 했습니다.

 

(출처: Telegraph.co.uk)

한국전 참가했던 용사자들인 영국 베테랑들

 

미국에서는 한국 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미군 사상자를 내었음에도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비해, 일반 대중의 인식이 무척 낮은 편이라고 합니다. 영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도 한국 전쟁은 무척 간략하게 소개되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이나마 이들에게 "한국에서 1950년에 전쟁이 있었고, 아직도 한반도는 분단 상태이며, 냉전의 논리가 적용되는 적용되는 곳이다" 라는 현실을 가르쳐 주고자 했습니다.

 

그래도 막상 특강 당일이 되니 다시 걱정되는 점은 역시 영어더군요. 과연 이 아이들이 저의 한국식 영어 발음을 알아는 들을 지 꽤 우려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 일찍일어나 준비한 원고를 큰 소리로 읽어 보고, 자신 없는 단어들은 인터넷 영어사전을 통해 반복해서 들어보며 연습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입과 혀를 좀 풀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항상 첫 몇 시간은 버벅되기 일수입니다.


이제 저의 강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국인 친구가 먼저 냉전의 배경과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조에 대해서 간략히 약 10분 간 설명했습니다. 그 후 제가 바톤을 이어 받아 한국 전쟁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약 10명의 중학생들 앞에서 열심히 떠들었는데도, 학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더군요. 아주 쉬운 질문 - 이를테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수상이 누구였나? - 을 해도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니까요. 모르진 않을텐데 조용히만 있으니 답답했습니다.

 

그 때 저의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인솔 교사" 였습니다. 인솔한 교사가 역사 과목 담당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의 설명을 무척 재미있게 들어주더군요. 고개도 끄덕끄덕 거려주면서요. 그래서 저는 다시 숨을 고르고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 중학생과의 만나기 전의 제 기분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만약 영국 중학생들의 역사 지식 수준이 높았다면 저도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겠지요. 자연스럽게 현재 한국 학생 - 그리고 저의 중학교 시절과 - 자연스럽게 비교도 되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저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질의 응답시간을 통해서, 다양한 질문을 하던 학생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강의시간을 포함해 이 날 하루 동안 보여준 행동은 한국 청소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그저 평범한 중학생이었습니다. 틈만나면 장난치거나 떠들고, 선생님으로부터 주의를 받는 모습을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단 10분 분량의 짧은 설명으로 영국 학생들이 한국전쟁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이해를 했을까라는 부분에는 저 스스로도 의문이 남습니다. 다만 이들이 나중에 한국 관련 뉴스를 들을 때, 한국하면 싸이 이외에도 한국 전쟁이라는 사건도 있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네요. 콩글리시를 핏대높여 외치던 저를 떠올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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