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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

영국 프리미어리그 선수와의 우연한 만남, 감동

by 영국품절녀 2012. 6. 26.

영국 품절녀가 이번주 굉장히 바쁜 관계로 "품절남"이 씁니다.

지난 금요일, 영국인 친구가 전화로 당일 저녁, 캔터베리 럭비 클럽에서 올림픽 기념 퀴즈대회가 있다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최하는 퀴즈 이벤트인데 8명이 한 팀이 되어 실력을 겨루는 대회라는 겁니다. 참가비가 일 인당 4파운드였기 때문에 고민이 좀 되었지만, 일부러 전화까지 해 준 것이 고마워서 가기로 했지요.


저희 집에서 승용차로 약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걸어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에 캔터베리 럭비 클럽이 있더군요. 주변과 건물 내부를 보니 명문 클럽은 아님이 분명할 만큼 굉장히 허름해 보였습니다. 각각의 자리에는 이런 저런 국기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마침 태극기가 놓여져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4파운드 내고 나온 음식이라곤 달랑 저것이 다 였습니다. 무지하게 배가 고팠는데 짜증이 확~ 나더군요. 행사의 수익금은 아프리카의 빈곤 지역의 교육사업에 쓰인다고 하니 화를 낼 수는 없었지요.


퀴즈 자체는 굉~~~장히 재미없었습니다. 운동 선수 맞추는 경기도 대부분 영국 스포츠 스타에 관한 문제라 우리 팀의 일본인, 루마니아인 등등은 절대 맞출 수가 없었죠. 그나마 저는 가기 전에 수영이나 육상 기록 정도를 한 번 훑고 가서 몇 문제 맞추는 수준이이었습니다.

 

                       퀴즈대회의 답안지 입니다.  문제도 굉장히 많아 보이지요?  굉장히 지루했었습니다.

 

영국 스포츠 스타의 얼굴을 합성해 놓고 이름을 맞추는 문제였습니다. 그냥도 모르는데, 합성까지 하니 더욱 모를 수 밖에요.

 

 

퀴즈쇼 사회자였습니다. 나름 훈남이더군요. 유머감각도 있고 괜찮아 보였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여자분들 위의 번호로 연락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 친구는 지금 위의 번호로 스포츠와 관련된 유머를 문자로 보내면 선물을 준다고 하더군요. 끝날때까지 아무도~ 안했습니다. ㅎㅎ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자리에 최근에 은퇴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가 온 것이었습니다. 전직 포츠머스의 수비수 린보이 플리머스(Linvoy Primus)였습니다. 사실 저는 몸은 영국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야구에 있는지라 누군지 잘 몰랐지만, 주변 영국인에게 물어보니 꽤 유명한 선수라고 하더군요.

 

 


 퀴즈쇼 중간에 린보이 플리머스의 스피치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자라왔으며, 축구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꽤 진지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을 당시를 추억하며, "난 수많은 프리미어리그의 공격수들과 부딪혀 봤지만, 티에리 앙리가 가장 힘든 선수였다"고 했습니다. 예측하지 못하는 곳에서 튀어나와 골을 넣는 그가 가장 막기 어려웠던 선수인가 봅니다.

 

스피치 처음에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활약상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더군요. 수비수라 공을 걷어내는 것이 많았고, 겨우 건진 그의 헤딩슛!! 골~인 장면입니다.

그의 스피치 요지는 자신이 현재 동료 축구선수들과 함께 "Faith and Football"이라는 자선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성적 부진으로 심한 우울증에 있을 때 신앙의 힘이 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한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운동과 신앙을 함께 병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 http://www.faithandfootball.org.uk/


퀴즈 대회가 마치고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총 8팀 중에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았던 우리 팀은 겨우 뒤에서 2등이라도 했네요. 저는 꼴찌할 줄 알았거든요. 저는 우리팀 순위 보다는 어쨌든 프리미어리거 - 물론 알지도 못했던 선수였지만 - 와 대화를 하고 싶어 그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인기있는 인물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 말 붙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그가 잠깐 한가한 틈을 타 간신히 말을 건넬 수 있었네요.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제가 건넨 첫 마디는

아~ 사실 난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러자 그도 역시


하하, 나도 그래요. 라고 센스있게 받아주더군요.

잠깐 (약 1~2분 정도) 이나마 이런 대화를 나누고 가져간 사진기로 잽싸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프로선수와 사진을 찍었네요. 나름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들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스캔들의 주인공들이자, 사고 뭉치들로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 물론 우리 박지성, 이청용 선수들이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요.) 그런데 이 프리미어리거를 보면서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수"들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은퇴 후에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열성적으로 활동하며, 작은 시골 교회까지 찾아다니는 그에게서 진정한 스타의 모습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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