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국품절녀 & 남 in UK/유학생 남편 둔 아내의 일기

영국대학교에서 청소를 하다 느낀 단상(斷想)

by 영국품절녀 2011. 6. 23.


울 신랑이 지난주부터 대학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방학 동안 기숙사를 청소하는 일이 랍니다. 6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약 3달 동안 하게 되었다고 해요. 보통 학부 생들은 대부분 시험이 마치는 즉시 기숙사를 떠납니다. 그러나 학교 기숙사는 방학 동안 프리세셔널 코스나 단기 어학연수 오는 학생들, 또한 학교에서 개최되는 각종 컨퍼런스에 오는 방문객들을 위해 사용되지요. 따라서 이들이 나가는 즉시 다시 깨끗이 청소를 해 두어 손님을 준비해야 한답니다. 이 때문에 그런지 저번 주말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교에 청소를 하러 나갔어요.

                      신랑이 학교에서 받아 온 오렌지 색깔의 티셔츠로 이것을 입고 청소를 한다고 해요.
                                        무슨 네덜란드 축구 응원단 티 같지 않나요?


일년 반 이상 머리만 쓰던 사람이 갑자기 안 쓰던 근육을 쓰려니 힘들었는지 저번 주는 내내 저녁식사가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들더군요. 주말에도 쉬지 못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오죽 했으면 이번 주 하루 정도는 쉴까?”라는 말을 하더군요. 전 걱정이 되어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그렇게 말하고 아침에 학교에 갔던 사람이 좀 심각해 져서 왔습니다.

                  아침 9시까지 청소하러 기숙사 가는 길 이래요. 오렌지 칼라 티를 입고 가는 모습 보이지요?  


 

지난 주까지는 그냥 청소와 정리로 정신 없이 보냈는데, 이번 주부터는 조금씩 일이 몸에 붙다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한국 대학교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생각하니, 차마 그렇게 쉽게 쉬겠다는 생각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울 신랑은 아침 9시부터 일해서 3시에 마치는데, 중간에 점심시간 약 25, 그리고 작업 마무리에 약 20, 그리고 일 준비까지 약 10분 정도를 사용하니,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5시간 남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받는 돈은 시간 당 7파운드가 조금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40파운드 정도를 버는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주말은 쉬더라도 한 달에 약 700파운드 ( 120만원) 정도를 버는 셈이 됩니다. 만약 주말에도 쉬지 않고 더 일하면 계산상 900파운드 ( 160만원)가 훌쩍 넘게 됩니다. 울 신랑은고작 5시간 일하는 것으로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한국 대학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너무 죄송스럽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급료도 그 분들에 비해 더 받다 보니 약간(?)의 죄책감까지 느껴진 모양입니다.


                                                  울 신랑이 청소하는 학교 기숙사 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답니다. 울 신랑은 일이 시작되고 9일 연속 빠지지 않고 일을 나갔습니다. 같이 일하는 영국, 중국 학생들은 중간에 휴식 일을 나름대로 지정해서 일에서 빠진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때 일당은 없답니다.

그런데 같은 팀에서 일하는 이디오피아 유학생이 있는데,
그 친구도 울 신랑처럼 한 번도 쉬지 않고 출근하다 보니 조금 친해졌다고 해요. 그 유학생은 인류학 박사과정에 있는데, 항상 아침마다 일찍 출근해 일 시작 전까지 구석에서 책을 본다고 하더군요. 울 신랑과 같이 부엌 청소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고 해요. 갑자기 울 신랑에게 결혼했냐고 물으면서 자신은 결혼을 일찍 했고 딸이 12살, 5살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가족은 고향에 두고 혼자 왔다고 했습니다. 신랑이 너는 쉬지 않을 거냐고 묻자, 자신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하더랍니다. 알고보니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부인과 딸 둘)과 영국에서 살기 위해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주말의 추가 근무도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금 형편이 어려운 국가의 출신 유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요령도 피우지 않고 땀을 흘린다고 했습니다.


 

사실 울 신랑은 3주전 업그레이드를 통과하고 조금 들떠 있었거든요. 그런데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열심히 지내는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바가 컸던 모양입니다. 신랑 말을 듣다 보니 이번 일로 인해 학업 보다 더 큰 인생 공부를 한 것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는 항상 위만 바라보며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아래도 살피면서 마음을 다 잡는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