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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영국인과 문화

영국인 할머니와의 짧지만 유쾌한 한국어 대화

by 영국품절녀 2013. 7. 12.

 

저는 매주 영국 할머니와 만나서 한국어 한마디를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이미 포스팅을 한 바 있는데요, 저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시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제 글을 읽으신 독자 한 분은 저에게 한국어 교재를 보내주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기꺼이 소중한 마음만 받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 수중에 한국어 교재는 없었지만, 할머니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본 후에 한국어 교재 및 수업 내용을 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관련 글 --> 사돈 위해 한국어 배우는 영국 시어머니, 감동

 

오늘은 할머니와의 만남 약 두 달을 넘긴 이 시점에서, 한국어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잠시 알려드려 볼까 합니다. 첫 날은 그저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신랑이 추천해 준 유튜브 동영상 하나의 주소 정도만 챙겨갔습니다. 이 영상은 간략하게 말하면 "한국어 알파벳 (자음, 모음) 10분 완성" 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미리 들어봤더니, 미국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국어 발음에 대해 상당히 설명을 잘 하더군요. 물론 몇 가지 실수한 부분들도 없지는 않았지만요. 

 

 

제가 이 영상을 할머니에게 보여드린 이유는

 먼저 한국어 소리와 글자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본 영국 할머니의 반응~~~

 

한국어 알파벳 10분 완성이라고??

난 10년도 더 걸리겠어...

 

위 영상을 보시면서 할머니는 소리를 따라하셨는데요. 아무래도 한국어 발음이 많이 어려우셨나 봅니다. 10분 안에 한국어 자음(14), 모음 (10)개, 게다가 자음과 모음의 결합까지 설명을 보다보니, 처음 한글을 접한 할머니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끼셨을 것 같긴 합니다. 저는 그저 한국어 알파벳 모양과 발음이 이렇다 정도만 아시면 된다고 안심시켜 드렸지요. 그렇게 첫 날은 동영상 하나를 보고 끝이 났습니다.

 

그 후 몇 번 만남이 있은 후에 할머니는 한국어 수업에 있어 이런 제안을 하셨어요.

나는 이미 70세야. 언어를 배우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지. 한국어를 읽고 쓰기보다는, 그저 내가 궁금한 한국어 한 마디씩배우고 싶어, 그리고 그것을 일주일 동안 연습해서 직접 사용하고 싶어.  

 

사실 저는 할머니에게 한국어를 어떻게 얼마나 가르쳐 드려야 할지 좀 난감했거든요. 연세도 있으시고, 몸도 좀 불편하셔서 글씨를 쓰는 것 자체도 좀 불편해 하셨거든요. 그런데 할머니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나니 훨씬 편하게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할머니가 알고 있는 말들을 복습해 보고, 새로운 한국어 한 문장씩을 알려 드리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할머니의 테라스에 앉아 수업을 합니다.

 

 

 

테라스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인데요, 상당히 높아서 좀 무서워요. ㅎㅎ

 

그 동안 할머니가 배우신 "한국어 표현" 정리해 볼까요?

 

할머니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할머니는 저에게 Hi 가 아닌 "안녕~~" 하십니다.

그럼 저는 고개를 숙이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리지요. ㅎㅎ

 

보통 영국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면, 인사와 동시에 호스트는 이런 말을 합니다.

Come in~~

 

이에 할머니는 한국어로는 뭐라고 말하는지 물어보셨어요.

"들어 오세요" 혹은 "어서 오세요" 라고 알려 드렸어요. 할머니는 일주일 내내 "들어 오세요" 를 중얼거리셨나 봅니다. 그것을 들으신 할아버지가 더 잘하신다고 하시는 거에요. 할머니는 약간 머뭇거리시면서 말씀하시는데, 할아버지는 아주 유창하게 하시더라고요. 할머니는 자신이 배운 한국어 표현들을 아들 가족과 스카이프로 대화를 할 때 종종 사용하시는데요, 지난 주에 아들에게 "들어 오세요" 했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What?"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웃으셨어요. ㅎㅎ

 

이렇게 인사가 끝나면, 할머니는 언제나 이렇게 물으십니다. 

(What) Would you like to drink? 

 

종종 할아버지가 차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는데요,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제가 차 끓이는 것을 돕지요. 저는 할머니의 차 만드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듭니다. 그 이후에 저도 이제 이렇게 마시고 있지요. 보통 영국인들은 티백을 우려낸 홍차에 우유, 설탕을 첨가해 마십니다. 취향에 따라 더 강하게 혹은 약하게 티백을 우려내지요. 이에 반에 할머니는 약하게 티백을 우려낸 후, 거기에 얼려 놓은 레몬 한 조각을 넣어서 드시더라고요, 저도 할머니를 따라서 그렇게 마셨는데요, 정말 맛있어요. 참, 할아버지는 레몬이 아닌 꿀을 넣어서 드시네요. 꼭 한국인들이 먹는 꿀물같아요. ㅎㅎ

 

 

 

그래서 제가 이번 주에 알려드린 한국어 표현은요?

 "차 마실래요?"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책에는 "차나 커피 마시겠습니까?" 와 "차 마실래요" 가 적혀 있는데요, 할머니는 짧은 표현을 기억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해서 이 표현을 알려 드렸지요. 할머니는 한국도 Tea 를 차라고 하느냐면서 인도 차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기억하시기 수월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할머니는 저에게 "안녕?", "들어 오세요" 그리고 "차 마실래요?" 라고 물어봐 주시겠지요. 할머니와의 상당히 간단한 한국어 대화이지만, 참으로 유쾌하기만 합니다. ㅎㅎ

 

그 동안 할머니는 유럽 여행을 다녀 오시고, 저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통에 몇 주 빼먹어서 아직까지 한국어를 많이 알려드리지는 못했지만요, 할머니는 이렇게 한국어 한 마디씩을 배우고 실생활에서 사용까지 할 수 있으니 더없이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저 역시도 할머니와의 만남이 항상 기다려집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심정을 할머니도 아시기 때문인지 항상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거든요. 국적과 나이를 초월하여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큰 행복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영국인 할머니의 유쾌한 한국어 도전기에 많은 응원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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