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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일보다 아내 출산이 중요, 과연 사랑의 과시인가

by 영국품절녀 2014. 5. 7.


안녕하세요? 영국 품절남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무척 바빴답니다. 사실 이번 주 금요일까진 정신이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예전의 품절녀님처럼 1일 1포스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 같습니다.

 

집사람이 임신을 하다 보니 저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부분이 변했네요. 우선 임신 후 밥 짓는 냄새에 민감해지다 보니 저녁 식사도 온전히 제 차지가 되어버렸고요. 집에만 있으면 힘들어서 누워있는 와이프를 보니 안쓰럽기도 하지만 청소까지 온전히 제가 맡게 되서 이래저래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빠가 된다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라 믿고(?) 어설프긴 해도 그럭저럭 집안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예비 아빠다 보니 예전에는 못 보던 일이나 뉴스에 신경이 쓰이는데요, 어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테니스의 황제라 불리는 로저 페더러 선수가 아내의 출산 때문에 마드리드 오픈을 기권하기로 했다는 뉴스였습니다. 테니스계에서 최고 기량을 뽐내고 있는 선수의 기권은 충분히 뉴스 거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전이었으면 무심히 지나칠 한 대목이 눈에 약간(?) 거슬리더군요.


이 소식을 전한 한국의 모 뉴스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페더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셋째의 출산일이 프랑스 오픈과 겹치면 대회에 기권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과시한 바 있다."

 

제 눈에 약간 거슬렸던 부분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과시한 바 있다" 입니다. 이 기사에서 팩트는 첫 단어인 "페더러는" 부터 "뜻을 내비치다"까지 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과시한 바 있다"는 이 문구는 작성한 기자의 추측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오늘 다루고 싶은 내용은 추측에 의한 기사 자체가 문제로 보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내의 출산을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경기 기권을 "가족에 대한 사랑의 과시"로서 이해해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입니다.


 

영국에서 좀 오래 있다 보니 그 동안 제가 가져왔던 가치관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이의 출산 문제도 그렇습니다. 와이프 임신 문제로 병원을 다녀보니 영국인들은 대부분 임신과 출산 과정에 부부가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더군요. 물론 모든 영국의 부부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런데 출산에 있어서는 거의 모든 남자가 만사를 제쳐두고 아내와 함께하는 것은 물론이고, 육아휴가까지 신청하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같은 유럽이라도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서유럽 문화권에서는 남편이 부인의 출산을 함께하고 같이 어느 정도 지내는 것이 꽤 보편적으로 보였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박사 과정 후 약 1년 동안 저는 제2 지도교수(Second Supervisor)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규정 상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해서 학과의 영국인 교수에게 부탁하러 갔었지요. 그런데 제 말을 들은 그 교수는 난처해 하며 "나 곧 집사람 출산으로 반 년간 휴가를 내기로 되어 있어서 누구를 지도해 주는 것이 힘들 것 같다"라면서 완곡히 거절했습니다. 모든 남자 교수가 부인 출산으로 인한 휴가를 받는 것은 아닌 듯 했습니다만, 저에게는 조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즉, 페더러 선수의 대회 기권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다"라기 보다는 "개인 업무보다 출산한 부인과 함께하는 것이 이들 문화 속에서는 더욱 소중한 가치" 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도 아내의 출산을 함께하러 잠시 선수단을 떠나 고국에 돌아가기도 하니까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사랑"을 그토록 과시할 정도의 일로 받아들여야 할 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일과 가족 중 어느 것에 더 우선 순위를 두느냐는 개인의 가치 판단문제이기 때문에 쉽사리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동서양 문화권의 차이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지요. 다만 서양인들의 가족 중심적인 사고와 문화 형태를 굳이 오버해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한국 뉴스가 조금 아쉽게 느껴집니다. 요즘 한국 언론을 보면 여느 매체나 할 것 없이 검증된 팩트의 전달 보다는 사실과 기자의 느낌과 추측이 혼재된 기사들이 많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 - 정확한 정보와 소식의 전달 - 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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