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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일제시대 잔재인 대학 군기 문화, 통탄할 일

by 영국품절녀 2014. 3. 19.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래 저래 몸은 바쁜 요즘입니다. 며칠 전 시내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2년 전, 어학연수를 왔다 돌아갔던 일본인 학생인데 시내에서 저를 우연히 보고 무척 반가워하더군요. 오전 중 학교에 잠시 볼일이 있어 갔다가 오후에 그 친구와 연락이 되어 펍에서 맥주 한 잔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대학을 막 졸업했는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서 걱정을 하더군요. 일본의 취업 시장도 얼어붙었는지 그 때 제가 봤던 그의 일본 친구들 역시도 대부분이 아직 구직 중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번 영국과 아일랜드 여행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했습니다. 이야기가 그 쪽으로 흘러다가 보니 본의 아니게 인생 선배로서 약간 조언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일본도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친구와 만난 후 느꼈던 제 감상 대해서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일본에서 블로그를 쓰시는 분들께서 일본의 경기나 분위기를 훨씬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주제 넘게, 그것도 일본인 대학생이나 구직자 한 두 명을 만나보고, 관련 글을 쓰기에는 부적절하겠지요. 다만 영국에서 꽤 오랫동안 살면서 다양한 일본인 친구들 – 일반 대학생, 중고교 교사 및 대학 교수 등 – 과 교제하고 일본인 학교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 및 대학 문화" 를 비교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젠 나이를 약간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두 가지의 차이를 "옳다" 혹은 "틀리다" 라는 관점이 아닌 그저 "다름"으로 보는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90년대 후반에도 군대 문화가 대학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요즘 문제가 되는 체육대학만큼 군기를 잡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전공이 역사이다 보니 전국 곳곳으로 답사를 자주 다녔는데 이 때 일부 예비역 선배들이 평소 건방지거나 뻣뻣해(?) 보이는 – 이 조차도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 후배들을 불러놓고 혼을 내고는 했었지요. 이런 일들은 보통 술이 얼큰하게 들어간 뒤에 일어나기 마련이라 술이 약한 저는 선배들에게 불려가서 맞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위기의 순간은 몇 번씩 있었지만 그 때마다 전 부지런히 도망갔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시리라 생각되어서 이에 관한 설명을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뉴스에서 보여준 체대의 군기는 제가 대학을 다녔던 90년대에 남아 있던 군기 문화는 애교로 봐줄 정도였습니다. 선배에게 전화 걸거나 문자를 할 때마다 군대식으로 관등성명을 밝혀야 하고, 저학년들의 복장까지 규제하더군요.

 

 

 

학교의 군대문화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를 약 30년간 이어진 군사정권 치하의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조금 더 그 근원을 일제시대의 잔재로 보기도 하지요. 저는 후자를 지지하는 쪽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을 일제시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다만 이 학원의 군대문화만큼은 일제시대의 잔재로 보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봅니다.

 

일제시대의 학원 교육의 목표는 교양 있는 시민사회의 일원 배출이 아닌 일왕에게 충성을 바칠 제국신민의 양성이었습니다. 중등 교육부터는 아예 일본군 장교가 학교마다 상주해 교련수업을 받도록 했지요. 이런 제도가 군사정권에 그대로 도입되어 거의 20세기 끝날 무렵까지 한국의 고등학교 (1996년 폐지)와 대학 – 대학교의 교련은 고등학교에 비해 조금 이른 1989년 폐지 – 에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없어져도 분위기는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일본의 – 그것도 일제시대의 – 문화가 21세기의 대한민국, 그것도 교육의 현장에서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이지요.

 

(출처: 세계일보)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제가 반장이었는데 – 부끄럽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손들어서 된 결과였습니다 – 환경미화 심사로 전 학교가 청소 및 게시판 꾸미기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환경미화 심사 직전, 저와 다른 반 반장들은 모두 학생부실에 모여 심사를 주관하는 교사에게 거수경례하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교실 앞 문 앞에 서 있던 저는, 옆 반 심사를 마친 교사들에게 거수경례를 했고, 곧 이어 자세히는 기억 나진 않지만 "2학년 X반 환경미화 심사 준비 끝" 이라는 말로 보고를 했습니다. 저의 보고를 받은 교사들은 심사를 위해 교실로 들어갔는데, 저도 그 때 교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때 번쩍, 체육선생이 저의 뺨을 때리더군요. "어디서 보고자가 고개를 돌리냐고, 정신 못 차리냐고.."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만 13~14살 밖에 되지 않은 중학생이 왜 거수경례와 군대식 보고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 때의 충격이 커서인지 그 때 체육선생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직도 중/고교에 이런 문화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꽤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위해 영국에 온 그 친구와 꽤 이런 저런 주제로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요즘 일본의 고등학교나 대학의 선후배나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떠한 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학교마다 조금 차이가 있을 것 같다고 먼저 선을 긋긴 했지만, 보통 후배는 선배에게 경어를 쓰지만, 친한 사이 - 특히 여학생 - 에서는 반말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다만 운동부는 조금 엄격하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는 자신이 근무하던 고등학교의 배구부 보조 교사였는데, 평소에는 선후배 사이에서 장난도 치긴 하지만 유니폼을 입고 훈련이나 경기에 나서면 꽤 엄격해 진다고 합니다. 지도교사도 이 시간만큼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험한 말도 섞어가면서 학생들을 닦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니폼을 벗으면 선후배 사이의 관계나 사제관계도 그렇게 딱딱하지는 않다고 하더군요. 물론 현재의 일본의 오늘날 한국의 해답은 될 수 없겠지만, 정작 일본에서도 없앤 일제시대의 잔재가 한국에 남아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참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기가 군대에서 중요한 이유는 전장에서의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관리하는 집단으로서의 군대는 군기가 바로 서야지만 사고도 예방할 수 있으며 강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체육학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체육을 학문으로서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이들의 엄격한 규율은 훈련장 혹은 경기장에서 필요할 뿐입니다. 저는 유독 체육학과에서 이런 문화가 유지된 것에는 "교수들의 책임" 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교수들이나 학과의 묵인 없이 이런 군대문화가 대학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요? 대학의 상징인 지성은 뒤로하더라도 오늘날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군대 문화가 대학에 버젓이 남아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겠지요.

 

선후배 혹은 학생과 교사 사이에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군기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예의와 상식이 있으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겠지요. 서구와 같이 나이나 학년에 관계없이 친구처럼 지내기는 한국의 현실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구성원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늦었지만 조금씩 한국 실정에 맞는 선후배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힘들게 공부하고 비싼 등록금까지 내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처음 배우는 것이 학문이 아닌 폭력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이번 기회가 대학의 군기 문화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책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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