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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

마가렛 대처 사망, 정책과 평가 되돌아 보면

by 영국품절녀 2013. 4. 9.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오늘 영국 언론은 일제히 자국의 전직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죽음을 머릿기사로 알렸습니다. BBC 등 TV 방송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대처 전 총리에 관한 프로그램으로 대체했습니다.

 

(출처: BBC)

 

한국 언론에도 이미 알려졌듯이, 마가렛 대처에 대한 평가는 영국 내에서도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 언론 역시도 좌우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언론사 별로도 대처를 보는 시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11년 (1979-1990)이라는 19세기 이래 최장수 총리 재임시기는 그녀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많은 지지자들과 반대파를 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로 인해 "영국의 국가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대처라는 인물과 정책을 이해하려면 2차 대전 이후의 영국의 정치, 경제적인 배경을 조금 알아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시장 개입을 통해 사회 및 복지제도 체제를 유지하며 국가를 관리 감독해 왔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옛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국가의 재정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재정부담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영국 정부는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큰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의 오일 쇼크 는 영국의 산업구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해 유전을 개발해 생산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 영국에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국의 휘발유 값은 한국보다 더 비쌉니다, - 석유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영국의 석탄산업은 영국 정부의 재정 운용을 압박함과 동시에 산업 경쟁력 마저 약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IMF의 구제금융까지 받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요. 20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양질의 삶을 살았던 영국인들이 불과 70년도 되지 않아 유럽의 2류 국가의 국민이 되어버렸고, 옛 제국의 경제주권은 외부인으로 손으로 맡겨지기까지 한 것이지요. 

 

(출처: BBC)

 

마가렛 대처는 이러한 시기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대처가 주도한 새 정부의 개혁 시작은 작은 정부의 수립부텨 였던 것 같습니다. 작은 정부의 목적은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 시켜 재정 적자를 줄이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그 동안 정부가 소유해 운영하던 많은 국영기업들이 민영화가 되었습니다. 대처의 재임 시기, 가스, 전기, 철도, 수도 등 많은 공공 기관 및 공기업들이 민영화되었지요.

 

그녀의 지지자들이 대처를 옹호하듯이, 당시 영국의 산업은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상태였으며, 많은 산업체는 강성노조 (Union bullyboys)에 의해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석탄 산업은 옛 제국의 산업 혁명의 근간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막 생산하기 시작한 북해산 석유(브랜트유)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나 효율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지요. 따라서 대처는 석탄노동자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해 기어코 석탄 노조를 제압했습니다.

그녀는 노동자를 힘으로만 제압한 것은 아닙니다. 적극적인 해외 자본 및 투자유치로 산업의 질을 바꾸려 하였죠. 노동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내의 노동법을 정비하였고, 이 결과 수 많은 해외 기업들이 영국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즉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선진 산업을 유치하고, 실업률까지 낮추는 3중의 효과를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대처 집권 후기인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의 대기업들도 영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투자를 많이 하게 됩니다. 비록 대처 스스로는 영국의 EU가입에 반대했었지만, 영국의 EU가입 및 낮은 임금 (1990년대 초반에는 영국의 노동임금은 미국의 반, 독일의 3분의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은 영국을 유럽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게끔 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그녀의 재임시기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3.3%, 일자리는 33.3% 증가했다고 합니다.

즉 대처의 작은 정부, 민영화, 기업 자유화 – 신자유주의 – 로 인해 이빨 빠진 옛 제국이 3차 서비스 산업이 중심인 새로운 국가로 체질이 바뀌어 졌지요.

 

그러나 제가 만나본 영국인들을 통해 느끼는 바에 따르면, 이들이 대처를 오늘날 문제의 원흉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네요. 특히 "이건 다 대처 때문이다" - "It's All the Thatcher's fault" -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즉, 오늘 날 영국이 안게 된 문제는 모두 대처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영국 언론에서도 지적하듯이, 反대처 정서(Thatcher-hate)가 크게 존재합니다.

 

대처의 죽음을 축하하는 런던 사람들 (출처: Picture: Danny E. Martindale)

 

대처로부터 시작한 급속한 신자유주의화는 영국의 일시적인 사회 안정과 경기 상승 효과를 가져온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은 영국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습니다.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이지요. 예전에 포스팅한 것과 같이, 철도 및 대중교통의 요금 상승은 대중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공공요금 상승은 임금 인상 및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영국은 곧 해외 기업의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잃게 만들었지요. 이를테면, 동유럽 국가들도 EU의 멤버가 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 기업으로서는 유럽 시장을 위해 굳이 비싼 영국에 공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해외 기업에 매각했던 영국의 제조업도 한국 기업들과 같은 이유로 공장을 놔두고 떠나는 일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에 대한 규제장치를 풀어버린 영국으로서는 떠나는 기업을 눈뜨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것이지요. 1,2,3차 산업이 골고루 발달한 독일과는 달리, 2차 산업을 모조리 매각하고 금융과 같은 3차 서비스만 기형적으로 발달했던 영국은 체질적으로 견디기 힘든 구조였던 것이지요. 양극화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대처에게 다른 대안이 있었냐는 점입니다.

공부가 아직도 한 참 부족한 제가 보기에도,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현재 많은 사회/경제의 문제점들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민영화와 양극화를 우려하는 한국 내의 많은 사람들도 이 부분을 지적하지요.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해야 할 것은, 단순한 대처의 비판이나 찬양이 아닙니다. 이 부분은 영국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 영국의 사례를 통해 교훈될 만한 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BBC)

 

제 좁은 소견으로는, 대처의 정책은 1970년대 당시 영국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과도한 재정적자와 실업률을 줄여야만 했으니까요. 작은 정부, 민영화, 해외 투자 유치 등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이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버티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오히려 이 시기의 복지정책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대처 정부 시절,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 붙이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영국 특유의 복지 정책의 핵심은 온전히 운영한 것 같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미국과의 차이점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의료보험을 1970년대 민간으로 완전히 이전시킴으로써 엄청난 의료비 상승이 나타날 수 밖에 없었지만, 영국은 국영 의료시스템을 유지하였습니다. 즉, 대처가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면서도 버리지 않았던 주요 복지 정책들은 현재 한국에게도 많은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이쪽 전공은 아니라서 말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쪽 관련 영국 법률 체계를 조사한 적이 잠깐 있었을 뿐이지요. 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인구나 경제 규모를 생각했을 때, 인구 천만도 안 되고 자원도 풍부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보다는 차라리 영국의 사례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비교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역사,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이 다르니 단지 참고 사항일 뿐이겠지만요.

 

(출처: BBC)

 

큰 인물이 지면, 그에 대한 평가가 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역사에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처가 한참 경기가 좋았던 2000년대 중반에 사망했었다면 평가가 어떠했을까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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