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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

영국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보물, 에릭 홉스봄

by 영국품절녀 2013. 1. 4.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오늘은 영국의 중고 서적과 한 영국인 역사학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 한국에도 중고 서적 시장이 꽤 활발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살던 부산의 보수동과 서울의 동대문 근처에는 중고 서점들이 많아서 꼭 사지는 않더라도 그 쪽으로 갈 일이 있으면 한 번씩 둘러보고는 했습니다. 중고 서적을 취급하는 곳들이 한국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대학을 다니던 때와 비교를 해보면 조금 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반해 영국은 조그만 시골 동네의 채리티 샵이나 중고서점이 있어서 잘만 하면 괜찮은 책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국은 책값이 비싸다 보니 중고 서적 시장이 활발한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채리티 기관인 옥스팜에서 운영하는 "Oxfam Books" 는 의외로 전공서적이나 책장을 장식하기에 적절한 물론 읽으면 더욱 좋겠지만 하드 커버로 된 고전 들까지 구입할 수 있지요.

 

 

 

 

 

지난 12, 학기 끝 무렵 즘에 품절녀님과 제가 학교 캠퍼스를 거니는데 중고서적 시장이 열린 것을 봤습니다. 전공서적이나 재미있는 소설 등도 많으며 가격까지 괜찮아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생들이 책을 구입하더군요. 저와 품절녀님도 괜찮은 책이 있나 둘러보다가 의외로 득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책은 맑시스트 역사학자로서 작년 (2012) 10 1일에 사망한 에릭 홉스봄의 시대시리즈 중 마지막인 극단의 시대 (the Age of Extremes)”였습니다. 그것도 단돈 8천원 (4파운드)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을 했습니다. (원래 가격은 2만5천원 (13. 99 파운드) 입니다.)

 

 

 

 

에릭 홉스봄의 시대시리즈는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혁명의 시대 (the Age of Revolution)" , "자본의 시대 (the Age of Capital)", 그리고 "제국의 시대 (the Age of Empire)" 입니다. 이 시리즈는 각 권의 주제 (혁 명, 자본, 제국 및 극단) 를 통해 18세기부터 20세기의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통사(通史)에 가깝습니다. 홉스봄 스스로가 투철한 공산주의자이긴 합니다만, 그가 딱히 맑시스트의 유물론에 바탕을 두어 투철한 계급투쟁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만 역사서를 썼다고는 말하기는 힘들 정도로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저술활동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공산주의자로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역사학적으로 증명해 내며 자본주의의 개혁 혹은 수정 을 주장했지요. 따라서 그의 역사서술은 단지 과거의 일을 밝혀낸 것에 그친 과거사가 아니라 현대 우리가 갖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살아있는 현대사였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홉스봄의 역사학자로서의 명성을 드높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저도 논문에 홉스봄의 글을 꽤 참고했습니다만, 특히 그가 제시한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은 근대 민족국가 형성에 있어서 과거의 전통이 어떻게 재해석되고 오늘날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논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과거의 민족 전통이 사실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민족 지도자들에 의해 재발견되고 교육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스코틀랜드의 전통행사나 전통복장인 퀼트(kilt)도 사실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스코틀랜드의 지도자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지요. “만들어졌다혹은 창조되었다는 어휘 자체가 제가 보기에도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과거의 역사나 전통이 재해석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실제 홉스봄의 의견에 가까울 듯 합니다.

 

 

그의 요지는 근대 민족국가가 단지 근대 산업화 및 교육의 산물(어네스트 겔너)이라든가 동일한 전통을 지켜온 단일혈통에 의한 집합체라는 의견을 배척합니다. 즉 민족이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지도자가 영토라는 영역 내의 사람들로 하여금 단일한 전통을 공유하게 하여 공통된 민족 정체성 및 민족주의를 프로그램 했다는 말이 되겠네요. 민족사를 강조하는 역사를 중학교 때부터 배우고 대학 때까지 역사를 전공했던 저에게는 꽤 신선하게 다가온 논의였습니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이만 하고, 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책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을뿐더러 밑줄 조차 그어져 있지 않아 깨끗합니다. 사실 중고 서적을 살 때면 은근히 다른 사람의 메모나 밑줄을 기대하곤 하는데, 이전 책 주인의 취향이나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585쪽에 달하는 두께의 압박이 굉장합니다. 책장을 장식하는데야 괜찮을 수도 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고서야 선뜻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읽은 폭력의 시대(원제는 Globalisation, Democracy and Terrorism이며 시대의 홉스봄 시대에는 속하지는 않습니다만 번역본 제목을 이렇게 붙였더군요)도 한글로 읽는대도 고생을 꽤 했었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학위 마친 다음에야 손이 갈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캔터베리 보다는 런던에 가면 괜찮은 중고 서적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제가 가끔 들르는 곳이 하나 있는데, 기회가 되면 다음에 포스팅하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 보았던 신기했던 풍경 중 하나가 전철을 타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더군요. 물론 영국 지하철에서는 휴대폰이 터지기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한국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은 날이 많이 춥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듯 합니다. 스마트폰도 좋지만 마음이 따뜻해질 양질의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이 겨울을 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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