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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영국인과 문화

한국 더위에 지친 영국인의 입맛 사로잡은 것

by 영국품절녀 2013. 8. 12.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한국의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처럼 무척 덥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작년 여름에 한국에 자료 조사차 갔었는데, 5주 내내 더위에 못 이겨 헉헉대다가 온 기억이 납니다. 자료 조사 및 인터뷰 때문에 이곳 저곳을 다녀야 했는데, 고통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상당히 힘이 들었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더위를 처음 접해 본 영국인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영국인 친구는 저와 같은 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친구인데, 혼자 책으로 독학을 했음에도 꽤 잘하는 편인데, 한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도 대단합니다. 한국에 잠깐 들어가는 한국 학생을 통해서 한국어와 영어가 같이 나온 컴퓨터 자판을 부탁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이 친구가 문법은 꽤 하는데, 회화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지, 작년부터 한국 유학생과 한국어 1대1 회화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한국인 유학생이 품절녀님의 친구여서 자연스럽게 그와 알게 되었지요. 작년 추석과 크리스마스 디너 파티 때 저희 집에서 조촐하게 한국 음식을 준비해 파티를 했었는데, 한국 사람 밖에 없던 자리인데도 잘 어울리려고 노력하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그 친구는 한국에 가 있습니다. 진지하게 한국에서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친구가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덥고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입니다. 의외로 한국의 장마는 별로 싫어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비가 시원하게 오는 것을 보면서 약간 영국이 그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마가 끝나고 찾아온 폭염은 이 친구가 상당히 견디기 힘든가 봅니다. 더군다나 영국에서는 거의 겪어보기 힘든 높은 습도는 유럽 밖으로 다녀 본적이 없는 이 친구가 경악할 만 하지요.

 

이제 영국은 무더위는 끝이 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이 더운 여름에 그 친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한국 홈스테이에서 매일 제공되는 뜨거운 밥과 국입니다. 보통 영국인들의 아침 식사로는 English Breakfast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실제로 English Breakfast를 먹는 영국인들은 별로 없다고 하더군요. 아침식사로는 너무 무겁다고 하네요. 대부분 시리얼과 토스트, 그것도 아니면 사과나 홍차 정도만 간단히 먹는다고 합니다. 그랬던 이 친구가 한국에서 특히 매일 아침마다 제공되는 밥과 국은 고역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는 왜 한국인들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밥과 국을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삼씨 세끼 뜨거운 밥을 먹는 한국 식습관을 서서히 극복해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네요. 다만 한국인이 왜 이 더운 여름에 삼계탕과 같은 음식을 먹는지 이해하려면 아직도 멀어 보입니다. ㅎㅎ

 

음식이야 그런대로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무더운 여름은 여전히 만만치 않지요. 더위에 입맛을 잃은 영국인 친구가 유일하게 찾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말하길..

한국 무더위에 난 수박 밖에 없을 것이 없어....

난 매일 수박만 먹고 살아...

 

영국에도 수박이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큰 슈퍼마켓이나 과일가게에서 수박을 팔기는 합니다. 그런데 딸기, 체리 등에 비하면 수박은 영국인들에게 그렇게 어필하는 과일은 아닌 듯 합니다. 한국 수박과 비교해서 맛이 그렇게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지요. 꽤 전형적인 영국인인 이 친구도 영국에 있을 때는 수박을 자주 먹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그러다 무더위로 인해 입맛에 맞게 찾은 한국 과일이 바로 수박인 것이지요.

 

 

 수박 껍질이 좀 다르지요?

 

수박을 잘라서 팔기도 하고요.

 

그 친구 말이 생각나 저도 처음으로 영국에 온 이후, 수박을 샀습니다.

가격은 2파운드 (약 3천5백원)

 

한국에서 먹었던 수박이 좀 더 맛있는 것 같아요. ㅎㅎ


 

제가 만나 본 영국인 중에서 한국에서 첫 여름을 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F로 시작되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아마 난 겨울이 체질인 것 같아" 입니다. 그런데 막상 무지막지한 겨울이 되면 다시 한국 겨울 너무 춥다고 F 문자를 대지요. 한국인들이 영국에 오면 구질구질한 날씨 때문에 불평을 자주하는데, 영국인들도 한국에 와서 하는 말은 딱히 다르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뚜렷한 4계절이 뭐가 딱히 그렇게 좋고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앞으로 이 친구가 다가올 한국의 추운 겨울을 나면서 어떤 말을 하게 될 지, 그리고 어떤 음식으로 겨울을 날지 참으로 궁금해 집니다. 역시 누구에게나 전혀 겪어 보지 못했던 외국 날씨와 낯선 음식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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