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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

한국 장병들에게 꼭 알리고 싶은 시아버지의 명언편지

by 영국품절녀 2011. 7. 18.


영국에 있어도 인터넷 브라우저는 항상 한국 사이트이지요. 정치학을 전공하는 울 신랑 역시 가끔은 하염없이 한국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곤 한답니다. 특히 군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관심있게 보곤 하네요. 제대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육군 10대 군가를 외운다고 자랑하는 것 보면 울 신랑은 영락 없는 한국 남자인가 봅니다. 그런데 구타나 가혹행위 등이 문제시 되어 큰 사건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울 신랑은 군 경험자(육군 병장 제대)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최근 해병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접한 신랑이 뜬금 없이 자신이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동기들에 비해 조금 나이 먹고 군대에 가게 된 신랑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아버지와 단 둘이 훈련소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께서 울 신랑이 좋아하는 밥과 반찬으로 가득찬 3단 도시락을 준비하여 주셨다네요. 운전하시는 시아버지나 입대를 앞둔 울 신랑, 둘 다 별 말이 없이 훈련소로 향했다고 합니다. 점심은 잡초가 무성한 어느 폐교회 앞에 주차해 놓고 준비한 밥과 반찬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들이 돌을 씹는 느낌이 들어 거의 먹지도 못하고 남겼다고 하네요. 울 신랑 기억에 시아버지께서도 그냥 담담히 옆에 계셨다고 합니다. 


저는 남자들이 훈련소 입소하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터라 잘은 모르지만, 보통 넓은 연병장(운동장이 아니라고 하네요) 스탠드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대기하고 있다가, 방송이 나오면 일제히 연병장으로 나가서 줄을 선다고 합니다. 훈련소에 다녀온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그 때의 풍경은 헤어지는 가족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 그냥 고개 푹~ 숙이고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사람, 가족들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중간 중간에 뒤를 돌아보는 사람 가지각색이라고 합니다. 울 신랑은 마지막 경우에 해당 되었나 봐요. 그런데, 참 마음 아팠던 것은 정작 연병장에 내려가 이리 저리 정신없이 줄을 서다 보니, 시아버지가 계신 곳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에요. 남자 친구 입대에 따라갔던 제 친구 말을 들어봐도 비단 울 신랑 뿐 아니라 입대장병 모두 그렇다고 합니다. 


 


훈련소에 입소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집에 편지를 쓰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렇다 보니 군인들이 그렇게 기다리는 편지 역시 가족들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울 신랑은 시아버지로부터 첫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를 받고 입대 후 처음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합니다. 시아버지께서는 입소 당시의 심경을 담은 글에서, 당신은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보이는데, 정작 아들은 당신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 거리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아버지 역시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시할아버지로부터 받은 편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고 합니다. 울 신랑은 그 후로 제대할 때까지(병장 초반기) 시아버지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 시아버지가 대단하신 것 같아요. - 울 신랑은 아직도 첫 편지에 대한 추억을 못 잊고 있습니다. 특히 편지의 마지막 글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요.


軍隊(군대)는 他者(타자)의해 선택된 人生(인생)을 어떻게 有用(유용)하게 보내는 지 배우는 곳


멋진 말이지 않나요? 입대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말로서 이 보다 격려가 되는 말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결혼하고 울 신랑과 시아버지의 관계가 항상 원만한 것은 아닌 것 처럼 보이긴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뭔가로 연결 되어 있어 보인다는 것을 가끔씩 느낍니다. 울 신랑도 이따금 얘기하곤 하지요. 정작 군대 다녀온 후 아버지와 많이 다투긴 했지만, 군대 있을 때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커졌다고요. 그래서 자신도 아들을 나면 군대를 꼭 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아기가 없지만, 군대에서 사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중에 아들을 어떻게 군대에 보낼 지 막막하기만 한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울 신랑과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군대는 사람을 성숙하게 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 수도 있다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모든 장병들이 모두 울 시아버지께서 하신 "명언"을 마음에 새기고 제대하는 날까지 군대의 시간을 유용하게 보낸다면, 이번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고는 없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 해 보았습니다. 

현역에 계신 분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