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제가 사는 이 곳 캔터베리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도시의 규모를 감안하면 많은 편입니다. 도시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작은 동네이지만 그래도 종합대학 2곳이 있고, 영어학원들도 있기에 한국 학생들이 꽤 있는 편이지요. 이곳에 사는 모든 한국인들이 서로 알고 지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한국 분들은 서로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지인의 아이의 돌잔치가 있어서 그 곳에 가서 오랜만에 한국인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 때 부모님를 따라온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요, 에너지 넘치는 10살 내외의 아이들과 노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아직 품절녀님의 뱃속에 있는 아이랑 앞으로 놀아줄 생각을 하니 암담했습니다.
저희 가족을 포함해 세 가족이 모였는데요.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대화의 주제도 학업, 영어 공부, 영국 생활, 한국 이야기 등등 대화의 주제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돌잔치를 준비하신 분 – 아이의 어머니 – 이 워낙 진수성찬을 차려주셔서 간만에 위가 늘어나도록 먹은 것 같습니다. 다만 품절녀님의 입덧 시작 후, 저도 먹는 것이 시원치 않은 터라 위가 줄어들었는지 예전만큼 많이 먹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 중 화제가 되었던 것은 지난 주 목요일 BBC에서 방영되었던 "The Hairy Bikers' Asian Adventure" 였습니다. 바이크족인 두 영국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오토바이를 타고 돌면서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이도 꽤 있어 보이고 머리도 치렁치렁 길게 늘어뜨린 두 바이크족 영국인은 상당히 재미있는 콤비였습니다.
사실 외국 언론에서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꽤 많이 있습니다. 주로 해외 유명인이나 전문 요리사들이 한국에 와서 음식을 소개하거나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 대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이들 Hairy Bikers는 전문 요리사는 아닙니다만,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맛 보고 도전하는 사람들로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요리책도 냈다고 합니다.
(출처: http://www.hairybikers.com/books)
BBC iPlayer를 통해 이들이 한국에서 겪은 음식 여행을 보니 기존의 해외 음식 프로그램과는 약간 다른 부분이 있더군요. 각각의 음식의 기원을 꽤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으며, 영국 혹은 서양의 음식과의 비교를 통해 다소 낯선 한국음식들에 대한 영국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습니다.게다가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 먹는 것 자체가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는 않았지만, 긴 머리 휘날리는 영국 중년 아저씨들이 능숙하게 직접 한국 음식의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장면들은 꽤 재미있더군요.
BBC 요리에 소개된 한국 육회 레서피
덧붙이면, 문어 볶음과 무생채 요리법도 있습니다.
(출처: BBC FOOD)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그 동안 가졌던 의문이 하나 풀렸습니다. 2년 전, 블로그를 통해 저의 영국인 친구의 한국음식 사랑을 포스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런던의 한인 식당에서 육회를 먹었다고 저에게 자랑까지 했었지요. 그 글이 포스팅 된 후, 많은 분들이 댓글을 통해 영국인이 육회를 먹었다는 것에 무척 놀라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보기
위 글의 댓글에서도 몇 분들이 말씀해주셨듯이, 중년 영국 아저씨들은 육회가 한국의 "Steak Tartare" 라고 하더군요. 타타르족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살던 투르크계 민족으로 몽골제국이 러시아까지 확장할 때 몽골인들과 함께 유럽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몽골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그 용맹함을 인정받아 러시아나 폴란드에서 용병으로 활약했고 그대로 유럽에 정착했다고 하는군요. 현재 독일, 체코, 헝가리 등의 중부 유럽에서 생고기를 날로 먹는 요리가 있는데, 바로 타타르인들의 식습관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육회를 서양에서는 타타르 스테이크(Steak Tartare)라고 하지요. 다만 한국의 육회같이 날 계란을 올리기도 하는데, 다른 점은 유럽인들이 먹는 타타르 스테이크는 주로 고기를 잘게 썰거나 다져서, 소금 후추 및 소스 등과 같이 먹는다고 합니다.
즉, 영국인을 포함한 유럽인들에게 육회는 전혀 새로운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죠. 제 영국인 친구가 육회를 먹었다는 것에 저는 놀라웠지만, 그 친구에게 한국요리 육회란 타타르 스테이크의 한국 버전이었던 셈이네요. 원래 한국 음식을 좋아하던 친구라서 이젠 육회까지 먹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육회는 유럽인들에게 낯선 음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금과 후추로 양념된 타타르 스테이크에 비해 참기름, 간장, 마늘 등으로 버무린 한국의 육회가 훨씬 더 유럽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한국 육회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만드는 영국 남자 둘~
육회를 만든 후 시식을 하면서 한 마디 합니다.
“I love this country.”
이들은 방송 말미에 한국 음식은 영국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아시아 음식 – 중국, 태국, 일본 – 처럼 충분히 인기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세계 음식들을 두루 즐기는 이들의 입맛이 보편적인 영국인의 입맛이라고는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든 영국인들이 육회는 뒤로하고 날고기를 좋아할지도 의문이고요. 하지만 육회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외국인들이 정작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한국의 맛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마치 예상치도 못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요. BBC에 소개된 육회 레서피가 참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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