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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나라가 조용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저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습니다. 제 박사학위 전공이 비록 역사는 아니지만 학부 전공이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록 교양과정이지만 대학에서 역사과목도 3학기 째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학기 기말고사로 낸 문제 중 하나가 "국가 교과서는 국정화 되어야 하는가?" 였습니다. 선견지명이 저에게 있었다고 감히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만, 이미 지난 4~5월 중에 저 스스로도 이 문제가 적어도 사회적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정도는 직감적으로 느꼈던 모양입니다.

저는 오늘 포스팅을 통해서 제가 평소에 가졌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제 의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언론이나 많은 블로거들이 이 이슈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소신을 밝혔기 때문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인 들 무슨 더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 대신 일제시대에 한국사 연구에 온 힘을 기울이시다 돌아가신

"단재 신채호의 역사 인식"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요즘처럼 언론이나 인터넷 사회망에 많이 등장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이 했던 명언 중에 대표적인 것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외래의 사상과 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며 그에 종속되고야 마는 것을 비판한 단재 선생님의 명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외에 다음과 같은 명언이 남겨져 있습니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승만을 포함한 일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지도자들이 미국과 국제연맹에 한반도의 위임통치를 건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이승만 당시 임정 대통령을 비판하며 한 말이었습니다. 단재 선생은 시종일관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출처: MBC)

 

다만 요즘 자주 인용되는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를 실제로 언급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저도 이 말의 출처를 못 찾았습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 이 말은 본래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했던 말로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가 원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나마 이도 불확실해서 서구에서도 논란이 있는 듯합니다.

 

제가 보는 단재 선생님의 업적은 업적은 "한국사 저술" 에 있습니다. 백암 박은식 선생님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역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셨던 분들입니다. 다만 이러한 분들의 저작물 자체는 한국 사학계에서 중요한 사료로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합니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이 분들의 한국사 저술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의 우리역사 다시 쓰기라는 측면과 그분들의 한국사 인식 정도만 인정을 받을 뿐, 이 분들의 연구 결과물들은 학술 서적으로서 학계의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학술대회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을 "세 자로 하면 돌아이, 네 자로 하면 정신병자" 라고 까지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단재 선생님은 무조건 민족주의적, 즉 우리민족 중심이며 과연 외국에 배타적인 역사 쓰기를 했었는지 냉정하게 한 번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아는 나를 말하고 비아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말한다.

역사는 곧 나와 다른 사람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그 동안 바로 이 구절 때문에 많은 분들이 단재 선생님을 배타적인 민족주의자로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말 때문에 많은 분들이 단재 선생의 역사책은 과장과 왜곡을 통해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만 저술했으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역사 쓰기는 실증주의 사학자의 주장, 즉 역사가는 자신 개인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성적 입장을 버리고 철저히 객관적으로 저술해야 한다는 허구를 비판한 글입니다. 즉, 역사가는 시대의 산물로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재 선생님은 철저히 사료에 근거한 역사 쓰기를 주장한 역사가입니다.

 

역사는 역사 자체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객관적 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역사다

(조선상고사 1948 [2014] 29쪽)

 

 사마천 사기 이래 동아시아 역사저술의 기본은 포폄(褒貶: 포상과 폄하)을 바탕으로한 춘추필법(春秋筆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저술 방법 때문에 어떤 기록은 왜곡되기 십상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자체도 역사적 의미가 있기는 합니다. 다만 단재 선생님은 더하지도 덜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남의 관점이 아닌 우리의 관점으로 저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중화사관 혹은 일제의 조선사 편수회가 만든 프레임에 의해 비틀어지는 것을 비판한 것이지요.

 

이렇듯 단재 선생님의 역사 쓰기는 오늘 날 일부 학자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매도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저서에서 사실에 대한 과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집필 공간과 금전적 한계로 그는 모든 주장에 일일이 주석을 달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여전히 단재 선생님의 역사 인식은 유효합니다.

"한 두 명의 고대 역사가가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자기의 기호에 따라 마음대로 쓴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조선상고사 1948 [2014] 78-79[2014] 78-79쪽)

 

 

(출처: www.allinkorea.net)

 

저는 이 부분을 읽어 보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곧 과거가 되고, 시간은 더 흘러 고대사가 될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먼 훗날의 역사가가 한 권의 역사책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라고 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일까요? 그 역사책마저 부정되는 순간 이 시대의 사회상과 정신이 사라져 훗날 역사서에는 단순히 공백으로 남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역사는 과거를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시대의 사료가 되는 역사인식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훗날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사상의 자유와 개성이 넘치는 시대로 그리지 않을까 합니다. 교과서 문제로 어수선한 이 때 정치가와 역사학자를 포함한 모두가 단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우리에게 있어 역사가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공감 은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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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국품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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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yw02 2015.11.05 00:15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문제는 그 동안의 교과서들이 모두 쓰레기 수준의 질 낮은 교과서라는 거였습니다. 품절남님께서 하시는 말의 의의는 알겠지만 지금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시면 답이 안나오고 다양성에서 나오는 창의력이나 다양성보다는 획일화된 민족주의 사관에 빠져있어서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금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들의 책임도 크고요.
    저도 국정화가 절대 답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동안의 역사교과서는 문제가 많아도 심각했습니다.
    학창시절 영국에서 역사를 배우고 한국에서 역사를 배운 저로서는 우리나라 역사교과서가 일본의 역사교과서나 나치 히틀러의 역사교과서랑 다를점이 없다고 봅니다.

    만약에 국정교과서가 이런 기존교과서의 문제점을 고치고 학생들이 역사를 암기과목이 아닌 영국처럼 토론과 반성의 의미로 삼을 계기를 마련해준다면 저는 찬성입니다. (물론 기대는 안합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일테니...그래도 모르죠).

    단적으로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왜 광복군이 1920, 30년대에 활약을 했는데 그 다음에는 흔적도 없는지, 조선시대에 무었 때문에 사회발전이 정체가 되었는지, 우리나라역사와 세계역사와 비교해서 이해가 안가는 것들을 제대로 가르치고나 있나요? 기존교과서의 좌파 편향 논란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민중사관, 민족주의가 너무 심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 규규 2015.12.26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새누리당 당대표의 아버지는 일제때 전투기 공납을 최대로 하던 놈이었고 지금의 당대표(자기 자식)을 야스쿠니 신사에 묻겠다고 했던 인물입니다.

      또한 현 박 대통령은 만주국 친일파는 다들 알지만 공산주의자였다는것은 잘 모르죠

      문제는 이사람들이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이사람들을 뽑아주는 사람들에 문제가 있는거지요

      박근령 친일적 발언도 그렇고 요즘은 TV에서 일제때 쌀을 수탈 당했는데 정상가의 10분의 1을 받았으니 수탈이 아니고 수출이다 라고 당당하게 정부쪽에서 주장하더군요
      뉴라이트지요

      이런 친일 반민족 세력을 지역 자체가 지역 이기주의로 밀어준다는거에서 이미 한국인이 아닌게 되지요

      상식을 가지고 이걸 한번 보시고 죽은후 어디갈지 스스로 판단해 봐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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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를 열고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이 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라며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2. 희영 2015.12.23 20:53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이런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도 한참 읽지 않았던 역사책들을 다시 읽으면 옳은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3. 규규 2015.12.26 12:33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국정화 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나 일부 동남아 독재국가가 유일무일 하지요
    해외 언론에서도 독재자의 딸이 국정화 한다고 비아냥 대니까요
    독재자가 국민과 나라를 자기 사유 재산으로 착각하고 있는것과 같지요

  4. 궁금이 2016.11.23 23:54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근데요 조선성리학도 나름의 독자적인 발전이 있었고, 고려불교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발전한 점이 있었지 않았나요?
    실학도 성리학의 일종이고요.
    또힌 신채호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아나키스트여서 무신론 성향이 강할 것이며, 따라서 종교를 낮게 볼 수 밖엔 없지 않나요.
    중세 시대를 예로 들면, 흔히 암흑시대 어쩌고 말하는데, 재평가되는 추세입니다. 그럭저럭 산 시대로요. 십자군 전쟁도 포함이죠.
    걸러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대답이 2017.02.01 1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 성리학
      남송에서 고려로 들어온 성리학은 이(리)와 기 중에 철저히 '이(리)' 중심의 학문이었지요. 정도전을 비롯한 개혁적 신진사대부(혁명파), 조선의 북인들은 성리학자입니다. 하지만 그 성리학 그자체의 이념(리)보단 부국강병, 보국안민을 우선시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성리학자들이 한국의 성리학자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주류가 아니었고 성리학계에서 문묘에 올라가 있지도 않습니다. 즉 이색, 정몽주, 송시열 등의 성리학파가 주류이고 이들은 철저히 '리'중심의 사고를 지녔던 인물들입니다.
      단재는 이들의 성리학을 비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민족)을 위한 성리학이아닌, 성리학을 위한 국가(민족)'인 사고를 지닌 이들을 말입니다.

      2. 불교
      승병장(휴정, 유정 등)으로 대표되는 호국불교의 모습으로 한국에서 변한 부분은 한국적 불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거란의 침입, 몽고의 침입 당시에 불심으로 나라를 지키겠다하여 초조대장경,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을 조판하는 모습은 불교를 위한 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조선시대엔 불교가 크게 위축되었고요.(왜란당시 승병장의 활약으로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긴 했습니다만) 한국불교의 모습엔 국가(민족)를 위한 모습도 있었지만, 주는 불교 그자체(속세를 떠나있는)에 있었기에 단재는 그를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3. 기독교
      기독교는 뭐.. 현재 우리들 모습만 보더라도 충분해 보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살인자도 천국에 가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성인군자도 지옥에 간다'는 그들의 논리에 국가(민족)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4. 사견
      신채호가 역사학자이고, 무정부주의자고를 떠나서 그의 행적과 언행을 보면 머릿속에 '민족'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속에서 단재의 일생에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이나 타협이 없었습니다. 단재의 비판은 국가(민족)를 위한 삶을 살지 않는 이들에게 향해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