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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단재 신채호 역사 인식과 국사 교과서 국정화

by 영국품절녀 2015. 11. 3.

요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나라가 조용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저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습니다. 제 박사학위 전공이 비록 역사는 아니지만 학부 전공이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록 교양과정이지만 대학에서 역사과목도 3학기 째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학기 기말고사로 낸 문제 중 하나가 "국가 교과서는 국정화 되어야 하는가?" 였습니다. 선견지명이 저에게 있었다고 감히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만, 이미 지난 4~5월 중에 저 스스로도 이 문제가 적어도 사회적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정도는 직감적으로 느꼈던 모양입니다.

저는 오늘 포스팅을 통해서 제가 평소에 가졌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제 의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언론이나 많은 블로거들이 이 이슈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소신을 밝혔기 때문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인 들 무슨 더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 대신 일제시대에 한국사 연구에 온 힘을 기울이시다 돌아가신

"단재 신채호의 역사 인식"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요즘처럼 언론이나 인터넷 사회망에 많이 등장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이 했던 명언 중에 대표적인 것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외래의 사상과 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며 그에 종속되고야 마는 것을 비판한 단재 선생님의 명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외에 다음과 같은 명언이 남겨져 있습니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승만을 포함한 일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지도자들이 미국과 국제연맹에 한반도의 위임통치를 건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이승만 당시 임정 대통령을 비판하며 한 말이었습니다. 단재 선생은 시종일관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출처: MBC)

 

다만 요즘 자주 인용되는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를 실제로 언급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저도 이 말의 출처를 못 찾았습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 이 말은 본래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했던 말로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가 원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나마 이도 불확실해서 서구에서도 논란이 있는 듯합니다.

 

제가 보는 단재 선생님의 업적은 업적은 "한국사 저술" 에 있습니다. 백암 박은식 선생님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역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셨던 분들입니다. 다만 이러한 분들의 저작물 자체는 한국 사학계에서 중요한 사료로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합니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이 분들의 한국사 저술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의 우리역사 다시 쓰기라는 측면과 그분들의 한국사 인식 정도만 인정을 받을 뿐, 이 분들의 연구 결과물들은 학술 서적으로서 학계의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학술대회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을 "세 자로 하면 돌아이, 네 자로 하면 정신병자" 라고 까지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단재 선생님은 무조건 민족주의적, 즉 우리민족 중심이며 과연 외국에 배타적인 역사 쓰기를 했었는지 냉정하게 한 번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아는 나를 말하고 비아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말한다.

역사는 곧 나와 다른 사람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그 동안 바로 이 구절 때문에 많은 분들이 단재 선생님을 배타적인 민족주의자로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말 때문에 많은 분들이 단재 선생의 역사책은 과장과 왜곡을 통해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만 저술했으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역사 쓰기는 실증주의 사학자의 주장, 즉 역사가는 자신 개인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성적 입장을 버리고 철저히 객관적으로 저술해야 한다는 허구를 비판한 글입니다. 즉, 역사가는 시대의 산물로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재 선생님은 철저히 사료에 근거한 역사 쓰기를 주장한 역사가입니다.

 

역사는 역사 자체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객관적 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역사다

(조선상고사 1948 [2014] 29쪽)

 

 사마천 사기 이래 동아시아 역사저술의 기본은 포폄(褒貶: 포상과 폄하)을 바탕으로한 춘추필법(春秋筆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저술 방법 때문에 어떤 기록은 왜곡되기 십상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자체도 역사적 의미가 있기는 합니다. 다만 단재 선생님은 더하지도 덜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남의 관점이 아닌 우리의 관점으로 저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중화사관 혹은 일제의 조선사 편수회가 만든 프레임에 의해 비틀어지는 것을 비판한 것이지요.

 

이렇듯 단재 선생님의 역사 쓰기는 오늘 날 일부 학자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매도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저서에서 사실에 대한 과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집필 공간과 금전적 한계로 그는 모든 주장에 일일이 주석을 달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여전히 단재 선생님의 역사 인식은 유효합니다.

"한 두 명의 고대 역사가가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자기의 기호에 따라 마음대로 쓴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조선상고사 1948 [2014] 78-79[2014] 78-79쪽)

 

 

(출처: www.allinkorea.net)

 

저는 이 부분을 읽어 보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곧 과거가 되고, 시간은 더 흘러 고대사가 될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먼 훗날의 역사가가 한 권의 역사책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라고 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일까요? 그 역사책마저 부정되는 순간 이 시대의 사회상과 정신이 사라져 훗날 역사서에는 단순히 공백으로 남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역사는 과거를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시대의 사료가 되는 역사인식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훗날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사상의 자유와 개성이 넘치는 시대로 그리지 않을까 합니다. 교과서 문제로 어수선한 이 때 정치가와 역사학자를 포함한 모두가 단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우리에게 있어 역사가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공감 은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