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 품절남입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추석 연휴 잘 보내셨어요?
회사에 따라서는 오늘까지 쉬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영국 캔터베리에 온 이후 세 번째로 맞는 추석인데요. 지난 두 번의 추석은 굉장히 바쁘게 지냈었습니다. 일단 첫 해의 추석은 품절녀님이 한국에 잠깐 들어가셨던 관계로 굉장히 허전했었습니다.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추석 음식을 만들기로 했는데요, 공교롭게도 다들 바쁜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저 혼자 하루 종일 음식 장만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 추석 (작년) 때에는 저희 집에서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모여 추석을 즐겼습니다. 품절녀님이 있다 보니 같이 음식 준비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겉절이 김치까지 담그느라 정신 없이 준비를 했었네요. 다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은 후, 윷놀이까지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저는 보통 한국 남자들처럼 “프리~덤”이었습니다. 품절녀님이 한국인 친구들에게 각자 맡은 음식을 다 해오게 했네요. 꼬치전, 잡채, 불고기, 주먹밥 등을 모두 각자의 집에서 만들어 오게 시켰습니다. 저에게는 지난 주 런던 코리아 타운에 간 김에 불고기를 사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추석 당일에는 혼자 요리하기 힘든 한국인 친구들이 저희 집에 와서 음식 준비를 하다 보니 부엌은 북적북적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음식 장만하는 모습을 보니 명절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자니 아주 어색하더군요. 품절녀님도 제가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는 모습이 아주 낯설다고 했습니다. 사실 명절 뿐 아니라 보통 음식 초대를 할때마다 제가 거의 음식 준비를 주도하거든요. 작년까지만 해도 저의 주도하에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그랬었는데, 올해에는 품절녀님이 감사하게도 저에게 쉼을 허락했습니다. 사실 인원도 늘고 부엌에서 일할 사람들이 많아지니 저는 그저 소파에 앉아 있을 일 밖에 없었다는 이유가 더 적절했지만요. 야구, 축구 하이라이트 등을 보다 그것도 재미없어서 강남스타일 패러디도 좀 챙겨보고 있었습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제가 안 되어 보였는지 품절녀님은 저에게 DJ라도 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음악을 틀려고 하니 당최 무슨 음악을 틀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김광석 노래 틀었다가 바로 잘리고, 그렇다고 최신 아이돌은 잘 모르겠고… 무~척 답답하더군요. ㅎㅎ 그래서 제 결론은 추석특집 음악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그냥 틀어놨습니다. 뭐 아무도 안 듣더군요. 다들 영국에 좀 오래 있다 보니 한국 노래에 대한 감을 잃은 게 틀림없습니다.
유학생들의 추석 명절 음식~
다들 음식들을 정갈하고 무척 맛있게 만들어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품절녀님은 자신은 20대에 음식을 하나도 못했었는데, 어린 학생들이 이런 명절 음식을 해왔다는 자체가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올해 대학 입학한 세내기들이 만든 손이 많이 가는 꼬치전
기름이 싫어 익힌 야채로 만든 석사생 친구의 잡채
부드러운 스테이크 살로 만든 박사생 친구의 불고기
군대 갓 제대하고 복학한 학부생의 주먹밥
드디어 식사시간. 예의 바른 한국 청년들 그나마 가장 연장자라고 제 얼굴을 쳐다 봅니다. 진수성찬 앞에 두고 긴~말하면 욕먹는 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기에.. “자~ 먹읍시다.” 하고 바로 젓가락부터 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들 안도하더니 음식을 먹기 시작하더군요.
우리 추석~, 혹은 유학생활에 지친~ 어쩌고 저쩌고 한마디 했으면 무지 욕 먹을 뻔 했네요.
음식 앞에 두고 연장자의 말이 길어지면 다들 싫어하잖아요. ㅎㅎ
조촐하지만 추석 명절 기분 제대로 낸 추석 한상 차림입니다.
음식을 다 먹은 후, 일부러 막내들 (대학 1학년)은 쉬라고 했습니다. 테이블에 앉혀 놨는데 언니들이 설거지를 하니 무지 신경 쓰여 하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옆에 있던 저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남학생 (제대한지 얼마 안 되는 싱싱한 예비역)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늘상 빠지지 않는 군대 얘기를 했습니다. 한참 신나게 하고 있는 이제 대학교 1학년에 입학한 막내 여학생 2명은 재미도 없을 이야기를 눈만 깜빡깜빡 거리면서 듣고 있더군요. ㅎㅎ
참, 음식이 많이 남는 바람에 한국 음식이 그리운 어린 학생들에게 남은 음식을 가져가도록 했어요. 아쉽게도 제가 사온 불고기는 다들 배가 불러서 맛도 보지 않아, 조금씩 싸주기만 했습니다.
남은 한국 음식을 싸주니까 학생들은 완전 명절 기분 제대로 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도 큰집 혹은 시골에 모인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남은 명절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것처럼요.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학생들은 이제 슬슬 모두 술이 당기나 봅니다. 다 같이 2차로 근처 펍에 가서 맥주 - 막내들은 아직 애기(?)들이니까 주스 – 등을 마시며 마지막 이야기 꽃을 피웠네요. 마침 버밍엄에 다녀오던 유학생 형님네도 합류하게 되어 추석날 마지막 2시간을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영국에 와서 이렇게 편한 추석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보람차게 뒹굴뒹굴 거리면서 보낸 추석이었습니다. 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진짜 한국에서 추석명절 보내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남자 여러분들 제 마음 아시죠? ㅎㅎ 요즘 날이 궂어 우중충하지만 그날만큼은 둥근 보름달이 보이더군요. 모두 좋은 소원 하나씩 비셨나 모르겠습니다. 추석 마무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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