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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신경숙이 표절한 우국은 일본 우익의 허상

by 영국품절녀 2015. 6. 24.

신경숙 작가의 표절이 메르스 사태에도 문학계를 넘어 사회에까지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저는 기말고사, 채점, 논문, 학회발표 등의 지난 4주간의 강행군 저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표현을 써 봤습니다 을 거치는 동안에도 이 표절 문제가 붉어지자마자 저의 관심사가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꼼꼼히 읽어보고 일부는 스크랩도 해보곤 하지요. 한 소설가가 표절 의혹을 제기했고, 어떤 사람은 검찰에 고발까지 하는 사태를 보니 이 문제가 확실히 문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논의가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가진 무게감과 그게 따른 실망감 혹은 아쉬움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신경숙씨가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소설 우국(憂國)’의 한 부분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미시마 유키오란 소설가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우국이란 소설을 읽어 보기도 했거니와 영국 대학에서 일본 정치와 사회라는 과목의 조교로 일하면서 학생들과 그에 관한 영화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조금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인물이 이번 표절 사태의 중심 문제가 아니어서 그런지 언론에서도 이 인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수업 시간에서는 그의 문학작품 자체보다는그의 작품을 통해 비춰지는 그의 사상과 행적을 다뤘는데요, 그 때 수업 교재로 쓰였던 영화가 마침 유투브에 있기에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 영화지만 미국과 합작영화라서 그런지 영어 나래이션과 자막이 있습니다. 일본어를 모르시는 분들도 접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이 영화제목은 <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1985)>로서 그의 유명한 네 작품을 통해서 그의 철학 혹은 시각을 잘 설명해 놨습니다. 이를테면 미(Beauty), 행동(Action), 조화와 펜(Harmony of Pen) 그리고 Sword()의 네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영화 자체를 꽤 재미있게 봤는데요, 그의 일대기와 네 작품의 연극적 재구성을 통해서 미시마 유키오라는 인물을 과장 없이 잘 그려낸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짧게 나마 말씀 드리고 싶은 부분은

"미시마 유키오란 인물을 통해 비춰진 한 천재의 뒤틀린 내면" 입니다.

 

 

 

DVD 표지입니다. 실제 미시마 유키오는 영화보다 조금 더 갸름한 얼굴을 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에게 평생 콤플렉스 중 하나가 군대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전장에서 죽는 것을 꿈으로 여겼다면서 정작 신체검사 받을 때 폐병이 있다는 거짓말로 면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군복을 못 입었던 것이 그의 평생에 한이 되었는지 자위대의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고, 결국 방패 모임()’이라는 준군사조직도 만들고 자신과 조직의 젊은이들에게 군복을 입혔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병들과 함께 고위인사를 감금하고 자위대 간부들 앞에서 자위대에 의한 쿠테타를 외쳤다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할복자살로 그의 삶을 마감하지요. 인터넷 등에는 그의 죽음으로 일본의 우익 정치세력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책을 제가 전부 읽어본 것은 아닙니다. 대학 시절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다 보니 그가 저술한 몇 권을 대학 시절에 읽었고, 훗날 그에 관한 영화, 그리고 짧은 수업에서의 논의 정도가 되겠네요. 제가 주제 넘게 그의 문학적 위치를 평하고는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보여준 "일본 우익의 허상" 이지요. 사실 일본은 전후 1960년대까지의 사회 전반에는 우익적인 분위기가 만연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정계에는 전범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복귀해 활동하고는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그들이 일으킨 전쟁을 찬양하거나 미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하고는 싶었으나 말하지는 못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군다나 1960년대 후반에도 일본에서도 학생운동이 꽤 격렬하게 일어나기도 했지요.

 

그랬던 시기에 당대 일본 최고의 인기 소설가였던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 간부들 앞에서 쿠테타를 역설하고 자결까지 했으니 큰 사회적 이슈가 될 법합니다. 다만 그가 지향했던 세계가 일본의 우경화를 다시 활발하게끔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데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네요. 극도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탐미주의자로 알려졌던 그가 바랐던 일본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제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그의 단편소설 우국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표절로 시끄러운 소설 우국의 영화는 미시마 유키오 그 자신이 감독, 주연, 제작, 각색, 미술까지 담당했었습니다. (사진은 <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1985)>의 한 장면 

 

우국이 말하는 바는 어렵지 않습니다.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고 국가의 충성을 바치는 것이 군인으로써 숭고한 가치를 지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비록 그가 10대때 꿈꿔왔던 전장에서 군인으로서 죽지는 못했지만, 그의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동명소설의 주연으로 나서 "나는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으로서 아름다운 죽음을 선택한다" 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제 소견입니다만, 그에게 있어 이러한 죽음만이 일본이, 그리고 일본 사무라이가 가진 고귀한 가치로 여겼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전 대학생 때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불편했습니다만, 글을 쓰다 보니 더 불편해졌네요.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그가 전쟁의 광풍으로 휩싸였던 그 시절에 대해 향수 혹은 망상 를 느끼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으니 말이지요. 앞서 얘기했지만 그의 할복자살 때문에 일본의 우익들이 다시 그들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덕분에 그와 친했던 이시하라 신타로 (역시 소설가이자 전 도쿄지사)와 같은 우익적 인물이 일본 정치 및 사회에서 목소리를 드높일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니까요. 사실 아베 총리가 예전에 말했던 아름다운 나라로서의 일본라는 아젠다 역시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수교 50주년으로 한일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만, 요즘 양국의 관계는 수교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나빠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양국의 정상들은 각각 대사관에서 열린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양국의 관계가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전공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지만, 우리로서는 일본에 대한 냉정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여러분의 공감 은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