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품절남입니다.
오늘은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까지 응원가서 한국 축구의 올림픽 4강 진출을 현장에서 지켜본 제 친구의 사연입니다. 그 친구는 예선전을 모두 경기장에서 직접 봤을 뿐 아니라, 한국의 조 2위 진출까지 미리 예견한듯 8강전 티켓까지 일찌감치 사두었답니다. 아~ 부러워라. 어제 그 친구와 30분 가량 통화를 하면서 들었던 올림픽 축구, 한국 대 영국의 8강전에 대한 생생 후기입니다.
(참고로 아래의 글은 그 친구에게 직접 감수받았음을 밝힙니다).
그 친구가 말하는 현장 분위기는 제가 BBC 화면으로 지켜보았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영국 시골의 경기 당일 펍 상황 (올림픽 축구에 관심조차 없는 영국인들)이나 어제 교회에서 만난 영국인들은 토요일에 획득한 6개의 금메달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딱 한 명만이 “한국이 우리를 이겼어”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축구 경기가 열렸던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는 사뭇 달랐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웨일즈 출신 축구선수들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한국 대 영국의 8강전이 열렸던 밀레니엄 스타디움 (그 친구가 보내준 사진입니다. ^^)
그럼, 경기 당일 현장의 모습은 어땠는지 들어볼까요?
장면 1. 지동원의 첫 골~
(출처: BBC)
그 친구가 앉았던 좌석은 골대 뒤쪽으로 경기를 즐기기에는 조금 불편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주변은 전부 영국인들 뿐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지동원의 첫 골이 작렬하는 것은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지동원의 중거리 슛이 골대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조금 어리둥절 했답니다. 주변이 너무 고요해 중거리 슛임에도 “오프 사이드인가?”라고 착각할 정도 였다고 하네요. 스타디움에 한국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그나마 “대~한민국” 응원을 따라 할 때마다 “조용히 해라” “나가라” 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렸다고 합니다.
장면 2. 돔구장에서 축구를~
예선 세 경기를 모두 쫓아다녔던 이 친구에게 밀레니엄 스타디움의 돔구장은 새롭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마치 음향이 빵빵하게 잘 갖춰진 영화관에서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그런지 축구장 반대편에서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이고, 한번 응원을 시작하면 일반 축구 경기장 응원 이상으로 시끄러워져 옆 사람과의 이야기도 어렵다고 할 정도니 그 가운데서 선전한 한국팀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특히 경기 시작하기 전부터 전광판에 홍명보 감독을 비춰주거나 한국 선수가 나오기만 해도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 찼다고 하네요. 전반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이 공격하는 순간 야유가 멈추지 않았지만 한국이 너무 압도적으로 경기를 하는 바람에 야유가 점점 줄어들고 한국 팀의 응원소리가 커졌다는 군요. 유독 이번 경기는 한국이 세트피스 상황이나 코너킥 상황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관중들은 조용했다고 합니다. 그 고요 속에 기성용 선수가 코너킥을 찰 때, (골대 뒤쪽에 앉아있던) 그 친구가 큰 소리로 “기성용 파이팅! 기죽지마”를 외치자 기성용 선수가 차기 전 힐끗 한 번 봤다고 합니다.
장면 3. 헐레벌떡 기차역으로~
태극기를 당당하게 들고 사진까지 찍은 이때까지만 해도 용감했습니다. ㅎㅎ
예선 경기와 달리 8강전은 늦게 시작했을 뿐더러 연장과 승부차기까지 했던 터라 시간이 꽤 늦었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가봉전 때 웸블리에서 귀가전쟁을 치렀던 저로서도 카디프역에 몰릴 수만명의 관중들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귀가 전쟁을 한번 치렀던 그 친구도 한국의 승리가 확정되자마자 역으로 뛰어갔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리 나와 줄을 서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경기 전부터 술을 마시고, 경기장에서까지 술을 마셨던 영국 젊은이들이 그 친구의 일행에게 시비를 걸고, 한국 욕을 엄청나게 하더랍니다. 실력이 없어 졌으면 매너라도 좋아야지 이건 뭐.... 술에 취한 그 영국 젊은이들은 기차 안으로 따라 들어와 뒷자리에 앉더니만, 의자를 발로 차고 심지어 그 친구 일행의 머리도 툭툭~ 치더랍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친구가 혹시나 해서(?) 슈퍼에서 조그마한 영국 국기를 사가지고 갔었다네요. 기차에서 시비를 걸던 그 영국 젊은이들은 손에 든 영국 국기를 보고는.....
너 우리(영국) 응원했냐? “응” 너네 한국인 아니었냐? (일단 봉변은 모면해야 했기에) 아니, 우리 중국인인데… (마침 중국 친구가 옆에 있었다네요.)
그래? 미안하다. 난 중국인을 좋아해.
너네 금메달 많이 따던데, 꼭 미국 이겨라.
그의 말을 들으니 영화배우 강동원씨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 당시 강동원씨는 이탈리아에 있었는데, 한국인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가 외친 말은 “차이나 파이팅, 재팬 파이팅, 위아더 월드” 였다고 합니다. ㅎㅎ 역시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몇 한국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들립니다. 홈팀과 연장전까지 치르느라 많이 피로할텐데 빨리 원기 회복해서 마지막 그 순간까지 선전을 기원합니다.
로그인 필요 없으니, 추천 버튼 꾸욱~ 눌러 주세요.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
'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 > 영국인과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 외국 여자의 셀카 포즈, 이렇게 달라요. (13) | 2012.10.15 |
---|---|
입에 달고 사는 영국인의 인사말, 왜 이리 어색할까 (12) | 2012.08.18 |
런던 올림픽 경험해 보니, 이것만큼은 휼륭해. (14) | 2012.08.03 |
영국에서 더 보기 힘든 한국 올림픽 경기, 어쩜 좋아 (28) | 2012.07.26 |
영국에서 현지인 친구 사귀기, 왜 이리 어려워 (18) | 2012.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