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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유학생 남편 둔 아내의 일기

돈 없는 영국 박사생 아내의 솔직한 조언

by 영국품절녀 2012. 11. 30.


영국은 제법 추워졌습니다. 가난한 한국인 학생들은 추운 영국 겨울이 참 싫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면 걱정없이 난방을 팡팡 때면서 살 수 있겠지만요, 보통 유학생 및 부부들은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 갑니다. 왜냐하면 집에 일찍 들어가면 난방을 해야 하니까요. 난방비가 비싼 영국에서는 한국처럼 따뜻하게 난방을 했다가는 세금 폭탄을 맞기 십상입니다. 저희도 손과 발이 시려서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난방을 했습니다. 역시 따뜻하더군요. "돈 없으면 손, 발이 고생하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서글퍼졌습니다.

 

                                   영국에서 2년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던 참 추웠던

 

제가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 제 처지 때문일 겁니다.

제가 솔직한 심정으로 저희 부부의 유학 생활을 조금이나마 공개하는 이유는 제 고생담이면서도, 앞으로 영국 박사 과정에 오실 분들이 궁금해하는 학비와 생활비 마련에 대해 알려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 "제 글들이 영국에서 개인적으로 학비, 생활비를 다 충당해 가면서도 학업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고 비판하는 댓글을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힘든 영국 생활기

다음 주에는 신랑의 마지막 학기의 학비를 내야 합니다. 원래는 10월 말까지인데, 돈이 마련되지 않아 이제서야 학비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의 경우, 영국에 오면서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정도면 일년 동안 직업을 구해 일을 하면서 나머지 학비와 생활비를 어느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거든요. 그래서 예식만 하고 예물, 예단 등등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신 그 돈으로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1년치 생활비는 6개월 만에 동이 났어요. 영국의 비싼 집값으로 인해서요. 또한 제가 제대로 된 일자리도 잡지 못하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저희 부부의 생활고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닥치는 대로 신랑과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습니다. 사실 매달 들어가는 집값과 생활비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래도 둘이 절약하면서 살면 어떻게는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었지만, 상당히 큰 금액의 학비를 낼 때마다 그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이 다 안 되더군요. 박사 2년 차에는 다행히 신랑이 학비의 약 60% 정도 되는 금액을 장학금으로 받았고, 나머지 돈은 저와 신랑이 틈틈이 학교 기숙사 청소, 번역, 과외, 연구 보고서 작성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충당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학교 기숙사 청소했던 울 신랑의 복장 

 

이제는 그 끝을 보는 3년차 마지막 학기의 학비인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액수가 너무 많은 거에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학비가 인상 된다는 조건을 저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번 마지막 학비를 준비하면서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시작이니 힘들어도 잘 이겨 나가자면서 굳게 신랑과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거의 3년이 넘다보니 저도 지치는가 봅니다. 이번 학비는 저희가 지금까지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을 탈탈 털어야만 학비가 겨우 마쳐지더군요. 딱 계산을 하고나니 드는 생각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입니다. 2년 동안 열심히 죽기 살기로 벌었는데도, 내 통장에는 돈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이 조금 슬프네요. ㅎㅎ

 

    

     제가 독 안으로 붓는 물이 구멍으로 빠져나가 울 신랑의 박사 학위로 돌아올까요?? (출처: 구글 이미지)

 

요즘 종종 제 블로그 및 이메일로 이런 문의를 받습니다.

박사 과정을 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요.

어떻게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셨나요? 

 

솔직한 답변은 "3년 학비 (보조, 마련) 없이는 절대 박사 과정 들어가지 마세요" 입니다. 

만약 저희처럼 배우자가 있어서 한 명이 돈을 벌면서 어느 정도의 생활비 및 학비를 보조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요. 단, 연봉이 어느 정도 된다는 조건이 들어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처럼 힘이 드니까요. 그래서 전 주변의 미혼 한국 유학생들에게 돈 없이 박사 입학하면 우리처럼 완전 고생하니까, 적어도 학비는 꼭 마련하고 박사 과정을 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또한 돈 없는 유학생 남편과의 결혼은 말리기도 합니다. 종종 유학생 남편 따라서 외국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주변 여자들이 있거든요.  (이거 남자들한테 욕 먹을까요?  여자분들 각오 단단히 하고 나와야 합니다. 거기다가 자녀까지 있으면 엄마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 거에요.)

 

실제로 외부 도움 없이 혼자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3년 이상의 박사 과정을 하기란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이 듭니다. 학업량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돈까지 벌면서 연구를 한다는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종종 신랑의 주변 동료들을 보면, 경제적인 이유로 중간에 하차하는 경우도 있고, 같이 들어 온 동료들은 제 기간에 다 졸업하는데, 돈 벌고 힘들어서 학업에 소홀한 학생들은 그만큼 늦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실 저희 신랑도 1년 차에는 같이 들어온 동료들보다 꽤 빠른 속도로 논문이 진행되었지만, 2년 차부터는 학비 마련 때문에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병행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서인지 한 동안 거의 논문을 쓰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는 치밀한 준비 없이 유학을 온 것이어서 참 무모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저희가 계획했던 일들이 다 어긋나는 바람에 더 힘들었어요. 솔직히 돈 없이 해외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석사 때에는 부모의 탄탄한 지원 아래 공부를 했으니 철 없는 저희들이 뭐가 어려운 줄 알았겠어요. 가끔 신랑과 저는 "이런 생활 두번 다시는 하지 못할꺼야, 절대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힘든 시간이 저희를 철 들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그 때의 생활은 고통으로 기억됩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요즘에는 그나마 생활의 안정을 찾긴 해서 다행이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  영국 대학원 장학금 신청 ( ORS, 영국 정부 장학금 )

한국에서는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이 아니고서는 장학금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영국 대학에서도 자체 장학금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영국 외무성(쉐브닝 장학금)도 석사생만 주는 것으로 바뀌었지요. 

현재 이 상황에 바라볼 수 있는 것은 ORS 장학금 정도일 것입니다.

(→ http://www.orsas.ac.uk/)

그런데 요즘 한국이 선진국 취급을 받다 보니 좀 줄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자격요건도 많이 까다로워졌고요. 더군다나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비유럽권 학생들도 선호하는 랭킹이 높은 학교들에 경우에는 경쟁률이 많이 까다로울 듯 합니다.

☞ 그 외에 사회과학 전공자는 영국 정부의 Economic and Social Research Council 도 펀딩기회를 줍니다. 다만 비영국인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도전해 보세요. (→ http://www.esrc.ac.uk/)

 

2. "학교 하향 지원"으로 학비 면제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방법은 하향지원입니다. 대학 및 학과 순위도 중요합니다만, 현 상황에서는 학비가 더 중요하지요. 인지도가 약간 낮은 학교의 경우에는 장학금은 주지 못하더라도 일정기간, (보통 2년~3년의) Teaching을 조건으로 학비를 면제해 주기도 하더군요. 한국 및 유럽 친구들 중 이런 형태로 학과에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석사 성적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유리하니 꼭 참고해 보세요. 요즘 유럽이 전체적으로 경기 불황이다 보니 대학원 오는 영국 친구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경쟁률이 좀 있지 않을까 싶기고 하고요. 신랑의 과에도 런던 정경대(LSE) 에 합격했는데, 일부러 장학금 때문에 온 친구도 있었으니까요. 아무래도 학교 랭킹도 중요하지만 장학금 지급 여부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 학교를 지원할 때, 지도교수 (적어도 세컨드 수퍼바이저)를 학과에서 영향력이 있는 프로페서(렉처러, 시니어 렉처러가 아닌)로 정해진 다음에 졸라 보세요. 길이 의외로 뚤릴 수도 있습니다.


저희 신랑의 경우에는 이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냥 왔는데요, 석사 성적이 무척 좋거나 이미 상위권 랭킹의 학교에서 박사 오퍼를 받으신 분들은 영국 장학금 신청 혹은 하향 지원을 통해 학비 면제를 요청해 보시길 바랍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까요. 학비 면제만 되어도 살만 합니다.

 

제 가족 및 주변 분들은 돈 한푼 없이 영국에서 살고 있는 저희 부부에게 기적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학비 및 생활비을 내면서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 말이에요. 물론 남들은 절대 모를 우리 부부만이 아는 그런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지금까지 살아온 저희 자신에게 칭찬 해주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런 시간도 웃으면서 회고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이렇게나마 글을 쓰고 나니 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네요. 저 만큼이나 힘든 신랑에게 그만 짜증부려야 겠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인생의 봄이 얼른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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