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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

영국에서 야구팬으로 살아가기, 참 외롭다

by 영국품절녀 2013. 10. 31.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스포츠는 언어, 민족 및 국경을 초월해 서로 땀을 흘리며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간의 행위가 아닐까 합니다. 규정된 룰만 따른다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저도 영국에 첫 발을 내 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은 기숙사에 살던 이탈리아, 헝가리, 일본, 스페인 친구들과 넓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팀 구성이 유럽 vs 아시아로 했는데, 꽤 큰 점수차이로 진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축구를 무척 잘하더군요. 다들 선수 같았습니다. 경기에서 진 후, 저를 포함한 아시아 친구들이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한 것이 "우리는 축구보다 야구를 더 잘해" 입니다.

 

(출처: Google Image)

 

한국과 이웃나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는 10월이 되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열립니다.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서 한 시즌에 열리는 경기수가 무척 많지요. 한국은 팀 당 120~130 경기 정도를 한 시즌에 하는데, 미국은 160 경기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1년 내내 경기를 하니까, 겨울 정도 제외하고 1년 내내 거의 매일 시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긴 정규시즌을 마친 팀들 중, 상위권 팀들이 격돌하는 포스트시즌 기간은 그야말로 매일 저녁 스포츠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단골 소재이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요.

 

사실 프로축구도 좋아해서 곧잘 경기도 보러 가기도 했었는데, 제가 살던 지역을 기반으로 하던 모 프로축구팀이 연고지를 옮기는 바람에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렸죠. 영국에 온 이후에는 만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긴 했지만, 박지성 선수가 팀을 떠난 후부터는 아예 클럽 축구를 보지 않게 되더군요.

 

(출처: BBC)

 

영국에서 야구팬으로 살아가기에는 조금 외롭답니다.

박사과정 친구들 중에 미국 출신 친구들이 있어 가끔 야구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만, 류현진 선수가 진출하기 이전까지 메이저리그 팀 순위도 몰랐던 저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저의 동갑내기 절친이었던 일본인 친구가 일본 프로야구 역사까지 줄줄 꿰고 있어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둘이 같이 북경 올림픽, WBC 및 다큐멘터리 등을 같이 보면서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었습니다. 야구 때문에 오히려 더 친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2년 전, 그 친구가 석사학위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는 무척 아쉬웠었죠. 라쿠텐 이글스를 응원하는 그 친구는 아마 현재 진행중인 일본 시리즈를 광적으로 응원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저 역시도 응원하는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이후, 매일 짬을 내어 관련 뉴스기사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출처: Google Image)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에도 저는 홀로 경기를 보다 잠이 듭니다.

 

그런데 야구의 인기가 바닥 중 바닥인 영국 땅에서, 혼자 컴퓨터 모니터 앞에 우두커니 앉아 보는 한국 시리즈 역시 외로운 것은 사실이네요. 시대가 좋아져서 한국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는 종목에 관계없이 함께 관전하면서 응원해야 더 재미있고 신나잖아요? 하긴 이 곳 영국에서 한국 야구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같이 관전하면서 즐기기엔 무리가 있겠지요. 한국의 야간 경기 시간이 영국 시간으로 아침 9시가 되니까요. 저도 연구실에 가서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야구중계를 조용히 틀어놓거나, 아니면 문자 중계 창을 띄워 놓는 정도이지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2006년 – 석사시절 – 한국 야구팀이 제1회 WBC에서 승승장구하며 4강까지 올라갔었지요. 저는 기쁜 나머지 영국인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는데요. 이들은 모두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눈만 말똥말똥 뜨며 바라보더군요. 아마 속으로 "그런 지루한 미국 스포츠가 뭐가 재미있냐?"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때 처음으로 같은 영어를 사용하지만, 좋아하는 스포츠는 확연히 다른 영국과 미국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영국인들 중에는 크리켓은 싫어해도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꽤 있습니다.

 

사실 영국에서도 야구와 비슷한 라운더(rounders)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저희 학과에서도 1년에 한 번씩 학교 잔디밭에서 교수, 직원 및 박사과정 학생들과 게임을 즐기곤 하지요. 그런데, 정확하게 규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건 뭐 그냥 던지고 치고 달리는 정도네요. 생각만큼 인기는 없는 모양입니다. 야구의 기원이 영국이라는데 – 하긴 영국인들이 많은 근대 스포츠를 발명 혹은 보급하긴 했지요. 이를테면 축구, 럭비, 골프,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등 – 야구만큼은 흥미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야구팬인 저는 늘 외롭네요.

 

(출처: Google Image) 

영국에서는 라운더를 여학생들도 합니다.

 

오늘은 한국 시리즈 6차전이 열립니다. 마침 이번 주가 방학이라 – 영국 학교는 보통 학기 중 1주 정도 방학을 합니다 – 볼 시간도 있네요. 제가 응원하는 팀이 오랜만에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터라 이번에는 꼭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준 플레이오프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극적으로 승승장구하며 경기를 이기고 올라오다 보니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오늘은 품절녀님이라도 옆에 앉혀놓고 아침부터 컴퓨터를 틀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 경기장에서 보시는 분들 혹은 치맥을 즐기며 호프집에서 야구를 보시는 분들,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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