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 언론에 실린 "서울대 대학원생"의 실태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주변에 꽤 많은 친구들도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녔기에 간접적으로나마 한국 대학원생들의 학교 생활을 알고는 있었는데요, 오늘 읽은 기사 내용을 보니 과히 충격적이더군요. 더군다나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한국과 영국의 대학원생 문화를 비교하는 일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일단 영국에서의 저와 신랑의 경험을 비추어 글을 써 보도록 할게요.
(출처: 뉴스엔)
이번 기사는 서울대 인권센터가 주관한 심포지엄에서 발표가 된 서울대 대학원생의 인권실태입니다. 이 발표문을 인용한 연합뉴스는 크게 세 카테고리로 나누어 문제점을 짚고 있습니다. 첫째로 과도한 업무, 둘째로 논문 대필 및 가로채기에 '졸업 감사비' 문제, 마지막으로 성희롱ㆍ성폭력에 폭언과 욕설 문제였습니다. 제가 이 발표문을 직접 읽지 못하였기 때문에 서울대의 여건에 대해서는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저희가 경험한 영국 대학원생의 교수와의 관계에 대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1) 과도한 업무
예전에도 블로그를 통해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영국 대학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강의 및 그 관련 업무만 제외하면 행정적인 업무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보통 한 학과에 행정 관련 직원이 5~8명이 있기 때문에 조교들이 학과의 업무를 이끄는 한국과 비교해보면, 영국의 대학원생들은 자기 연구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학생들은 오로지 자신의 논문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다고 보면 됩니다.
이번 서울대 보고서에는 심지어 학생들의 인건비마저 가로챈 교수들이 있어서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영국 – OECD 국가 중 어떤 나라가 또 이럴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 대학에서는 구조적으로 있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학과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와 그에 관한 펀딩은 기본적으로 학과 행정직원이 각 교수 및 학생과 만나 서류를 작성하고 역할에 상응하는 금액은 개인의 통장으로 직접 지급됩니다. 즉, 교수가 학생들의 통장과 도장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2) 논문 대필, 가로채기에 졸업 감사비
저도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 혹은 다녔던 – 친구들로부터 이미 들어왔던 터라, 이 부분은 기사를 읽었을 때 별로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요즘 한국 대학의 교수들도 예전과 달라서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고 합니다. 진급 등을 위해서는 항상 일정 분량의 연구 실적을 채워야 하겠지요. 그러다 보니 제자들의 프로젝트나 연구 주제는 교수들로서도 바로 눈앞에 있는 금단의 열매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학생보다는 그 분야에 정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실적 혹은 과업을 가로채서 보다 훌륭하게 다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말이에요. 물론 모든 교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보고서에 나타나듯 서울대에서 대필이나 가로채기가 8.7%나 있었다는 보면 다른 대학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까요?
이 부분은 영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부분이라서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졸업 감사비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바 없고요.) 영국 역시 교수의 실적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만큼이나 교수들은 열심히 자신의 연구에 몰두합니다. 이를테면 저희 신랑 교수님은 매일 아침 8시면 학교에 도착하여 자신의 수업 준비 및 학회 발표 글 등을 쓰신다고 해요. 방학 때에도 거의 매일 나오신다고 하니까요. 이번 여름 방학에는 신랑에게 먼저 연락해 "혹시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도와 줄 것이 없냐?"고 묻기까지 하셨다네요.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쓰고 있는 책에 대한 내용을 놓고 신랑과 대화를 종종 나눈다고 합니다. 정말 학생들 등처 먹는 일부 한국 교수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않나요?
3) 성희롱, 성폭력, 폭언 및 욕설
위와 같은 폭력은 한국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반 회사들도 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그래도 요즘 이와 관련된 문제가 부쩍 강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서는 나아지는 추세라고 봅니다. 그런데 대학은 특히 대학원의 경우에는 그 교수가 활동하고 있는 분야에 들어간다는 말이기 때문에 교수와의 관계가 보다 더 수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가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게 아닐까요?
한 번 찍히면 외국으로 나가지 못할 바에야 발 디딜 곳 조차 없어져 버리니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원생들이 떠안게 되는 구조이지요. 결국 이 문제는 교수들이 변화해야만 바뀔 수 있다는 말인데 쉽게 고쳐질까 의문입니다. 교수가 대학원생을 지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영국 대학도 한국과 다르지는 않지만, 영국의 경우에는 교수들 스스로도 노동자라는 의식이 강하고, 학교의 자체 감시 기능 및 피해자 보호에 철저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정작 쓰다 보니 자신의 공부에 시간을 투자해도 부족할 한국 대학원생들은 전혀 엉뚱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최근 해외 언론 평가에 서울대가 세계 대학 59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순위가 오른 것은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순위 상승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이 문제는 비단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도덕 불감증의 세태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도 부족할 대학마저 이렇다면 –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 – 어떻게 하나요? 이왕 문제가 발견되었으니 문제 해결에도 최선을 후속 조처가 꼭 이어졌으면 합니다. 입학성적만이 대한민국 최고가 아닌 훌륭한 지성과 품격을 갖춘 최고 대학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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