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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

영국 대학의 민주적인 교수 채용 방식, 부러울 따름

by 영국품절녀 2012. 1. 25.



영국을 흔히 근대 민주주의가 발생한 국가라고 일컫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와 전통이 깊다 보니 영국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꽤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영국에 살다 보니 영국인의 삶이나 사회에 튼튼히 뿌리 내린 민주주의에 대해 가끔씩 놀라곤 합니다.

며칠 전 학교에 다녀온 울 신랑이 그날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켄트대학의 정치학과의 부속 연구소가 있는데, 이 연구소를 담당하던 교수가 곧 은퇴할 때가 되어 연구소 소장 겸, 새 교수(professor)를 채용한다고 했습니다.

잠깐, 여기서 영국의 교수직에 대해서 먼저 언급해 볼까요?

영국의 대학 교수직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몇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한국의 대학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의 순으로 직위가 올라가게 됩니다. 영국의 대학도 Lecturer, Senior Lecturer, Reader, Professor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Senior Lecturer에서 Professor로 바로 진급하기도 합니다. 현재 울 신랑이 다니는 켄트대학의 정치학과에는 교수가 거의 30명이 되는데, Professor가 겨우 4명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Professor 되기는 상당히 어렵나 봅니다. 영국에서는 Senior Lecturer로 은퇴하는 교수들이 많다고 해요.



                                                                         (출처: 구글 이미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 날 신랑이 경험한 것은 앞서 말한 연구소를 앞으로 담당할 교수 채용을 위한 인터뷰 과정이었다고 해요. 아침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4명의 후보가 돌아가며 자신의 경력과 연구 실적 등을 바탕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학과의 교수들 뿐만 아니라 박사과정 학생들까지 참여하여 앞서 언급한 과정을 모두 참관할 수 있었다는 거에요. 각 후보자들은 20분 정도 발표를 하고, 10분 정도 교수 및 박사과정 학생들과의 질의 응답을 했다고 하는데요. 신랑은 그 모든 것이 너무 새로워 흥미롭게 지켜봤대요.


모든 후보자들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학과장 주제로 자리에 남아 있던 교수들과 박사과정 학생들로 하여금 각각에 대한 느낌 및 소견을 들어 보는 시간이 따로 30~40분 정도 마련되었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교수 및 학생들이 의견을 교환하며 좀 더 어느 후보자가 더 나은가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일부 교수들은 꽤 거친 표현들도 주저없이 사용했다고 해요.


신임 교수 선발에까지 박사과정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닌 것 같습니다. 선발 권한을 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우습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투명하고 공정하게 교수 선발 과정을 공개하고 이에 대해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것을 볼 때 '영국이 과연 민주주의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집니다. 물론 모든 교수초빙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professor는 학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이자, 학과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위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공개적으로 선발하는 것 같습니다.


                                            옥스포드 대학교    (출처: 구글 이미지)

우스개 소리로 아인슈타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S대 교수가 못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S대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단순히 S대 출신이기 때문에 그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요. 당연히 실력과 능력이 없으면 임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 최고의 학부라는 옥스포드, 캠브리지 대학의 홈페이지를 한 번 둘러 본 적이 있었는데, 非 옥스브리지 출신 교수들도 굉장히 많았었습니다.

지연, 학연, 인맥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과 연구 성과 중심으로 교수를 채용하는 영국 대학의 풍토를 보면서, 이미 해가 져서 쇠락해 가는 나라이지만, 선진국으로서의 저력과 민주주의의 전통은 바로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