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이번 한일전의 승리는 지난 글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과 같이 이번 올림픽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나 합니다. 축구 한일전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올림픽 중계였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관심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한일전에 승리하고 난 다음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 올라온 인기 검색어가 바로 “일본인의 반응”이었습니다. 축구 한일전의 결과는 그 만큼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큰 후유증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캔터베리에 있는 일본인 학교에서 강의를 맡았었는데요, 이 학교는 일본에 있는 모대학의 분교로서, 1학년 학생들과 그 대학 재단의 고교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와서 영어 연수 및 공부를 합니다.
4월 정도로 기억하는데요. 오전 10시 강의가 있었던 터라 조금 일찍 도착해 학교 식당에서 차를 마시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본인 선생님이 이번에 온 대학 1학년 학생 중에 한국계 학생이 있다고 알려 주었어요. 이름을 물어보니 완전한 일본인의 이름이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야 재일 교포들이 일본식 이름을 쓰기도 한다지만, 외국까지 와서 일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재일교포 4세 정도로 일찍 귀화한 학생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드렁하게 "아~ 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일본인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중에 갑자기 한 남학생이 다가와 인사를 꾸벅하며 이름과 함께 자신을 한국계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먼저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것이 기특해(?) 보이기도 해서 간단히 차를 마시면서 몇 마디 나누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이런저런 문제로 그 학생을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는데요. 축구 한일전이 끝나서야 그 남학생의 귀국일자가 8월 중순이라는 것을 깨닫고 전화를 걸어 식사초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도 귀국 전에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초대해 주어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난 금요일의 축구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일부러 축구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친구가 자신이 중학교 때 축구부 주장이었다는 말이 나오면서 그 축구 한일전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사실 일본으로 귀화한 교포에게 한일전 축구 어느 쪽을 응원했냐고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렵게 식사 자리를 만들었는데 난처한 질문을 하기도 그러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는 당당하게
저는 한국을 응원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있을 때, 한 번도 일본을 응원해 본적이 없습니다.
일본과 다른 나라의 경기라면 일본을 응원하지만…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하다 보니, 그 학생이 태어난 곳이 바로 한국이더군요. 어머니가 일본사람인데 한국에 유학 왔다가 한국남자를 만나 결혼해 10년 넘게 한국에 살았다고 합니다. 자신은 유치원 때 일본에 가서 한국어를 듣는 것만 되지만, 그의 형은 일본에 갔을 때가 초등학생 때라 아직도 한국어 잘한다고 합니다. 국적도 한국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저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아버지를 둔 "한국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부모님의 귀화가 제가 미성년일 때 이뤄져 국적이 일본인이 되었지만,저는 주변에 항상 "한국계" 라고 밝힙니다.
일본에서 차별은 없었냐고 묻자, 그런 것은 거의 못 느껴봤었다고 합니다. 제가 봤을 때 그 이유는 그 친구가 조금 마르긴 했지만 키도 크거니와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 무에타이, 주짓스 등의 격투기를 했었기 때문이 주변에서 아예 건드리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좋은지 고등학교 때는 축구를 그만두고 육상부에 들어 고2때 100m를 11초에 끊었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재일 한국인 (출처: Google Image)
제가 지금까지 재일 교포들을 꽤 만나본 편입니다.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말도 꽤 잘하지만 정신세계는 완전히 일본인인 교포도 있었는가 하면, 이 학생처럼 국적은 일본이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아직도 강하게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은 분명한 듯 합니다.
얼굴도 작고, 키도 훤칠한 그 친구의 꿈은 배우라고 합니다. 지금의 전공과는 무관하게 자신은 연기학원에 들어가 전문적인 배우 수업을 받길 원한다는 군요. 자신의 뿌리에 당당했던 그 남학생과 헤어지면서 국적은 바뀔 수도 있지만, 뿌리(근본)는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품절녀님을 대신해서 영국 현지에서 올림픽 관련 포스팅을 했었는데요. 이제 다시 바통을 품절녀님께 넘깁니다. 저는 학교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오늘 오후 (영국시간) 비행기로 한국을 잠깐 (약 5주) 방문하게 되어 당분간 여러분들과 만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부족한 저와 함께 런던 올림픽을 즐겁게 보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국품절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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