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불행 중 다행으로 진종오 선수가 한국팀에게 첫 금메달을 안겨 주었습니다. 아테네 올림픽부터 꾸준하게 선수 생활을 유지하는 그를 보면서 – 그것도 어깨에 철심까지 박은 선수가 – 강한 정신력과 자기관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종오 선수에게는 죄송하지만....
어제 하루 만큼 짜증났던 올림픽 개막식과 첫 날은 아마 저에게 있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저희 집에 인터넷 개통이 되지 않는 관계로, 저희 부부는 올림픽 개막식을 놓치기 싫어 집 근처 펍에서 보기로 했지요. 친하게 지내는 언니 부부가 이미 좋은 자리를 맡아 놓아 환상적인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한바탕 쇼가 끝나고 참가국 입장과 소개가 이어졌지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나라들에 대해서 배워가면서, 한국 선수단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열심히 화면을 쳐다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표로 누가 왔나??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다른 국가 입장할 때 잠깐 이건희 회장의 모습이 언뜻 비치더군요. 아마도 이건희 회장이 IOC위원이고, 삼성이 올림픽 공식 파트너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드디어 Republic of Korea라는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우리의 자랑스런 한국 선수단의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올림픽 5회째 출전이라는 핸드볼의 윤경신 선수가 기수로 들어왔고, 미디어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한국팀 단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BBC 화면에 잠깐 비춰진 사람은??
다름아닌 문 대 성
문대성이 물론 아직까지 IOC 선수위원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모습을 본 저희들은 너무 수치스러웠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갑자기 확~ 나서 바로 일어서서 펍에서 나와버렸습니다. 물론 시간이 너무 늦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기분이 상해버려서 더 이상 그 곳에 앉아 있기 싫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배수정 해명”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더군요. 이게 뭔가 싶어서 봤는데, 개막식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니 그녀가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네요. 사실 그녀를 메인으로 쓴 MBC의 불찰이지, 배수정은 잘못이 없다고 봅니다. 그녀는 당연한 사실을 말한 거에요. 그녀는 엄연히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 교육을 받은 영국 시민권을 가진 영국인이거든요. 차라리 영국에 대해 잘 아는 그녀를 올림픽 특별 리포터 정도로 사용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요. 그 기사를 보고 토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왠지 찜찜했었네요.
사실 어제(토요일)는 오전 일찍부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잠시 짬을 내서 “박태환의 예선” 경기를 봤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출발 시점에 친구에게 메시지가 와서 전 그 부분을 놓쳤어요. 그 다음에는 1등으로 들어오는 박태환의 모습을 보았지요. 그런데, “부정 출발 실격~~~” 정말 멘붕이었어요. 주변에는 외국인 친구들 뿐… 별 관심도 없는 그들에게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요.
다시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 거에요. 그런데 같이 일하는 영국인 친구들은 저와 신랑을 보고 한국 양궁의 임동현 선수에 대해 칭찬을 계속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오후에 있을 남자 단체전은 아마 영국인 전체가 지켜볼 것 이라고 했어요. 어제 BBC 올림픽 입장식 해설에서도 한국팀 소개에 임동현 선수에 대한 언급을 할 정도였거든요.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신랑 연구실로 가 인터넷을 다시 켜니 박태환 선수의 결승 진출 소식과 함께 양궁 준결승 경기가 하고 있었어요.
(출처: BBC)
박태환 선수의 소식에 잠시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양궁 경기를 지켜보았지요.
그래… 영국 친구들이 한국의 양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오늘 꼭 이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결국 졌네요. 제 주변의 영국 및 외국인 친구들이 다들 양궁 경기는 꼭 본다고 했는데….
에고… 한국 남자 양궁이 미국에게 덜미를 잡혔네요. 1등부터 4등한 팀의 감독이 한국인이라고 하던데, 이제 양궁도 더 이상 금노다지는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마음을 추스리고 본 박태환 선수의 경기는 역시 아쉽게도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 사실 실격이라는 황당한 일을 겪고도 메달을 딴 것 자체가 전 대단하다고 생각하니 큰 아쉬움은 없었고 박태환 선수에게 따뜻한 격려를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짜증났던 것은, BBC의 해설자가 "노골적으로 쑨양을 응원" 해서 순간 울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제부터 논란이 되었던 배수정의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워,” 발언과 듣도 보도 못한 한 모델 지망생의 “박태환 선수 실격처리에 대한 망언”이 한국 선수들이 자꾸 지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짜증났던 저의 화를 더욱 돋구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폭발 직전까지~~ 괜히 옆에 있는 울 신랑에게 화를 풀고 있네요.
오늘 하루 영국에서 살면서 이렇게 스트레스 지수가 높았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제가 이 정도인데, 한국에서 올림픽을 시청하시는 분들은 불쾌 지수 높은 여름 날씨에다가 시차도 잘 맞지 않아 올림픽 경기를 보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힘이 드실 텐데요, 어제처럼 이렇게 멘붕되는 사건까지 겹치면 경기 볼 맛 나겠어요?
앞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움 보다는 행복한 소식이 가득한 올림픽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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