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결혼 후에 5번째 맞이하는 생일이었습니다. 아직 신랑이 유학생이라 결혼 선물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에 온 처음 2010년에 딱 한번 신랑이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 주었지요. 어제 정각 12시가 넘은 4월 10일 00:00시가 되자마자, 신랑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어요.
나 오늘 생일이잖아~~~~ (즉, 나를 위해 뭔가를 해달라는 것이지요. ^^)
갑자기 신랑은 침실로 컴퓨터를 들고 오더니, 디즈니 생일 축하 노래에 맞춰 코믹 춤을 추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아주 엉성하게 불러줬어요. 가사가 길어 계속 따라부르기 쉬운 HAPPY BIRTHDAY TO YOU~~라는 부분만 크게 외치더군요. 신랑의 우스꽝스러운 춤과 축하의 말로 저의 결혼 후 5번째 생일은 시작되었어요.
신랑이 불러 준 아주 신나는 디즈니 생일 축하 노래
아침에 일어났더니, 신랑은 미역국도 안 끓여주고 하는 말~
"오늘 생일이니깐, 내가 알아서 밥 먹고 점심 싸가지고 갈테니깐 더 자~~"
그리고는 신랑은 쌩~하니 학교에 가 버렸답니다.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아 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다짐했지요. 다행히 점심에 친구가 생일 선물로 맛있는 음식, 선물 및 카드를 주어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이 친구마저 없었으면 올 생일은 진짜 우울하게 끝나겠구나' 했습니다. 신랑은 전화로 "일찍 집에 가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전 사실 배도 부르고 할 일도 많아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신랑에게 "집에 빨리 오지 않아도 된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이미 전 신랑에게 화가 나 있었지요.)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전 속으로 내심 "그래도 생일인데, 신랑이 짜잔~하고 생일 파티를 해주지는 않을까?" 하며 기대를 했어요. 그런데 집에 와보니 신랑이 이미 퇴근을 했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나 너한테 짠~ 하고 생일 상 차려 줄라고 했는데...."
저의 일그러지는 표정과 함께 말끝마다 계속 틱틱거렸더니, 신랑은 분위기를 파악한 뒤로부터는 조용히 밥과 미역국을 막 만들더군요. 신랑은 금방 기본 반찬과 함께 북어 미역국을 끓여 생일밥상을 단촐하게 차려 놓았어요. 그래도 생일이 지나기 전에 미역국을 먹으니 서글픈 마음은 좀 진정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신랑은 저에게 그러더군요.
"나한테 너무 그러지마~~ 너가 그러면 나 힘들잖아~~ 5월에 완전 로맨틱한 장소에 데려갈테니깐, 이번 생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자~~ 응???
신랑의 솔깃한 말에 전 바로 넘어가 서글펐던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진짜?? 어디로 갈껀데?? 진짜 가는거야!!!! 약속 꼭 지켜~~"
이렇게 약속을 하면서, 저의 올 생일은 막을 내렸답니다.
신문 기사를 보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은 바로 정성이 듬뿍 담긴 "현금"이라고 합니다. 아내들은 살림하느라 자기 자신에게 쓸 돈이 부족한게 사실이에요. 항상 남편, 아이의 것을 우선 사잖아요. 그래서 아마도 현금을 꼽은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현금이 아닌 신랑의 따뜻한 축하 인사 혹은 생일 카드가 꼭 함께 동봉되면 좋겠습니다. 이럴 때 아내들은 신랑에게 여전히 관심을 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거든요.
영국 남자들은 무슨 기념일 혹은 생일이면 꼭 상대방에게 꽃과 카드를 포함한 선물을 준다고 합니다. 이들은 카드를 주고 받는 것이 영국의 문화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카드를 쓰는 동안 상대방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단지 짧은 문구라도 말이지요.
저 역시 생일 케이크, 꽃, 카드, 선물도 주지 않는 무심한 신랑의 행동으로 인해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생일 분위기를 반전시켜주는 한방 덕분에 기분 좋게 넘어갈 수 있었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선물만 밝히는 그런 여자인 가 봅니다. (앞으로 5월에 있을 울 신랑의 생일이 고민 되네요.)
5월에 울 신랑이 어떤 선물로 저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지 기대해 봅니다. ^^
더 보기
'영국품절녀 & 남 in UK > 유학생 남편 둔 아내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인처럼 더치 페이로 결혼한 한국 유학생 부부 (34) | 2012.05.02 |
---|---|
영국 여대생의 데이트 신청, 거절한 한국인 남학생 (29) | 2012.04.28 |
시어머니가 알면서도 속아주는 며느리의 꼼수 (37) | 2012.03.19 |
신랑 국적 놓고 중국인 부부 싸움한 사연이 웃겨 (28) | 2012.03.18 |
새벽에 영국 경찰차 타고 귀가한 한국 유학생, 당황스러워 (13) | 2012.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