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지난 8월 말에 한국에 잠깐 들어갔다가 작은 아버지를 만났는데요, 대뜸 하시는 말씀은 이랬습니다.
런던은 왜 이리 교통비가 비싸냐?
작년에 작은 아버지 딸, 사촌 동생이 런던 올림픽을 보기 위해 런던을 다녀 갔거든요.
저는 웃으면서 정작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싸게 다닐 수도 있다고 대답은 했습니다만, 제가 생각해도 영국의 교통비는 턱없이 비싸기만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유럽 여행 패키지를 보면, 런던은 아주 짧은 일정이 대부분이고, 유럽 여행 계획을 짜는 한국인들도 런던에서는 별로 머물지 못하고 주변 유럽국가로 이동하는 경우가 큰 것 같습니다. 영국인들조차도 비싼 교통비 (항공, 기차, 버스 등)로 인해 국내 여행보다는 오히려 교통비가 저렴한 주변 유럽국을 여행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 중에서도 오늘은 BBC 기사를 바탕으로 "영국 철도 민영화" 에 대해서 말해 보려 합니다.
금년 2013은 영국 철도가 민영화 된 지 꼭 20년이 된 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에 대해 다루는 언론이 많더군요. 사실 영국 철도의 민영화를 앞두고 영국에서도 요금 인상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영화를 주장하던 쪽에서는, 경쟁 체제가 되면 될수록 가격이 비싸지기 어려울 것이며, 오히려 현재 – 즉 1993년 당시 – 보다 싸질 수 있다고 했답니다.
Southeastern Trains
South West Trains
그런데 20년이 지난 현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0년이 지난 현재, 요금 인상이 안 되었다면 그게 더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요? 따라서 소비자 물가 인상률을 토대로 영국 철도 요금이 얼마나 상승되었는지를 알아 보겠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영국 물가는 약 66% 상승했습니다. 동일 기간 동안 영국 철도 요금은 노선 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훌쩍 넘는 가격으로 요금이 인상되었지요. 가장 극단적인 노선이 런던-만체스터 구간으로 208% 올랐다고 합니다. 물가 상승률 보다 약 3배 정도가 오른 셈이지요. 민영화된 지 2년 후인 1995년에 50파운드(약 10만원) 티켓 가격이 이제는 154파운드(30만원)나 하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훨씬 상회하는 열차 가격 상승률이라고 보여 집니다.
월급 인상률보다 8배 빠르게 오르는 영국 철도 요금 (출처: 구글 이미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영국 정부가 직장과 자기 집을 열차로 통근하는 사람을 위한 시즌 티켓(season ticket) 가격을 강력하게 통제해 왔기 때문에, 시즌 티켓의 가격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보다 약간 낮은 65% 라고 합니다.
(Source: BBC News)
그런데 문제는 민영화로 인해 가격 상승률뿐 만 아니라 요금 구조도 꽤 이상하게 바뀌었습니다. 전에 같이 식사했던 영국인 친구가 그러더군요.
왜 왕복과 편도 티켓의 가격차이가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친구의 불평은 그저 단순한 예일 뿐 입니다. 국영이었던 시절 단순했던 요금 체계가 민영화 이후 상당히 복잡해져서,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은 그저 돈을 쓸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지요. 제 사촌동생과 같이 단기간 영국에 체류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요금 체제를 알 턱이 없이 비싸게 다닐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영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기차 여행을 하고자 할 때에는 외국인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고 하네요.
영국 기차표는 이렇게 생겼어요.
저희도 다양하게 적용되는 복잡한 기차 요금 체제를 잘 몰라서 제 돈 다주고 비싸게 기차를 탔었는데, 나중에 현지인을 통해 기차 이용을 싸게 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런던까지 가는데 최소 만원 이상이 싸더라고요.
참고로, 영국 대중교통 저렴하게 제대로 이용하는 법은 책 261~270 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영국 기차, 코치(버스) 할인 이용법과 런던 교통 요금 가이드 정보는 필수 지참.
물론 언론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민영화 된 이후에, 열차의 안정성 등은 예전 국영이었던 시절보다 더욱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선이 훨씬 복잡해지다보니, 다른 루트로 갈아타거나 할 때에는 다소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런던 빅토리아 스테이션 기차 출발 시간 확인하는 곳
또한, 언론에서도 언급하듯이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 조차도 정부 보조금까지 받는 민영 철도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더군요. 그나마 가격 통제가 잘 된 시즌 티켓의 요금도 스페인과 독일의 세 배, 이탈리아의 10배가 된다고 합니다.
제 주변의 영국인 친구는 런던까지 매일 아침 기차로 출퇴근을 하는데, 약 4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일년에만 드는 비용이 약 3,000 파운드, 일년에 약 500만원(한화)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통근비가 많이 드니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큰 회사의 경우에는 아예 교통비를 대주는 곳도 있고, 일부에서는 회사에서 미리 교통비를 대주고, 나중에 월급에서 교통비 금액을 매 달 일정액 감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네요.
1990년대 초 중반까지, 한국 대기업들이 꽤 영국에 진출을 많이 했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영국의 평균 임금이 미국의 절반, 독일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랬던 영국이 20년 만에 독일보다 3배나 교통비를 넘게 내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이 불평할 만 합니다.
한국도 요즘 일부 구간의 철도 민영화를 놓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이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더군다나 한국과 영국은 철도 역사 자체가 근본부터 다른 나라이므로 적절한 비교 대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영국철도와 비교적 철도 노선이 단순한 한국은 차이점이 있으리라 봅니다. 다만 민영화를 먼저 했던 나라들의 사례를 잘 참고해서 한국 철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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