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요즘 품절녀님이 바빠서 그런지 저보고 글을 쓰라고 압력을 주네요. 저도 정신이 없는데 말이죠. 지난 몇 주 좀 무리를 해서 그런지 어제는 몸이 좀 쳐지더군요.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습니다. 집에서 제가 빈둥거리는 꼴을 못 보는 품절녀님.... 여지없이 큰소리가 나옵니다.
오늘은 "영국 교회 예배 시간" 에 있었던 에피소드에 관해서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영국 교회라면 전통적이고 엄숙한 분위기를 상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나 대형교회는 그런 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반교회의 분위기는 한국보다 훨씬 자유스럽습니다. 목사님이 설교 전에 인형극을 몸소 보여주기도 하고요. 설교도 목사님이나 강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농담을 섞기도 하더군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정장도 있지만, 나이든 분들인데도 간편한 복장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영국 교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 영국 교회들 중에는 성가대를 유지하기 어려운 곳도 많은 것 같네요. 그래서 일부 젊은 사람들 위주로 밴드를 구성하거나 몇 명의 리드 싱어를 중심으로 예배의 찬송을 이끄는 실정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도 이미 심각하게 고령화가 진행되어서 그런지 밴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 교회에서의 찬송가를 듣다 보면 오히려 한국 찬송가에 미처 실리지 않은 최신 가스펠송이 많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음향조정을 담당하기 때문에 주로 듣는 편입니다만, 가끔 귀에 익숙한 노래가 나오면 반가워서라도 안 굴러가는 혀를 굴려가며 따라 부르곤 한답니다.
어느 일요일 마지막 찬송시간에 제 귀에도 무척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더군요. 마침 이 찬송은 밴드가 아닌 오르간을 사용하더군요. 저는 오르간 멜로디를 듣자마자 속으로 약간 당황은 했지만 – 그 이유는 곧 설명해 드릴게요 – 오랜만에 아는 노래라 목청껏 불렀습니다. 일단 멜로디를 들어보시죠.
아니나 다를까, 노래가 마친 후 영국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목사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 곡이 싫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하신 할머니인데, 이 때에는 언짢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 분의 말에 동조하는 몇 분의 할아버지들도 계셨네요. 바로 그 노래 제목은 한국 찬송가에도 있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 (Glorious Things Of Thee Are Spoken)" 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찬송가가 바로 독일 국가" 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놀랐던 것이지요. 2차 대전을 경험한 – 제가 사는 켄터베리에도 독일 공군의 폭격이 꽤 심했었다고 하더군요 –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은 아직도 독일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캔터베리는 유럽대륙 - 특히 프랑스 – 과 가깝다 보니 독일이 수많은 폭격기를 보내어 영국 남부지역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이 때 캔터베리, 포츠머스, 사우스햄튼, 브리스톨 등 영국남부 도시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 곳 사람들은 심하게 폭격을 받아 도시가 다 부서지고 즉 평평(Flatten)해졌어요. City Centre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도 동쪽 지역만 남고 나머지는 파괴된 것 같아요.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 난리통에도 캔터베리 대성당은 무사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난 어떤 할아버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은퇴할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가르칠 힘이 있다고 하시는) 은 저와 만난 저의 전공이 역사와 정치학이라고 하니.. 조심스럽게 저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시더니
우리(영국인)는 독일을 믿지 못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
80이 넘는 모든 영국 분들이 독일을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전쟁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신가 봅니다. 그 할머니도 마찬가지시고요. 가사는 찬송가이지만 멜로디가 독일국가이다 보니 역시 따라 부르기는 싫으셨나 봅니다. 원래 독일 국가는 1차대전 후에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공식 지정되었지만 아무래도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후, 대중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국가를 더욱 널리 대중들에게 불리게 한 것 같습니다.
전쟁 후, 한동안 불려지지 않다가 다시 국가로 공식행사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애국적(?)인 내용이 가득한 1, 2절 대신 "3절만 정부 공식행사" 에서 쓰인다고 하더군요. 물론 일반 대중들은 종종 1, 2절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독일 국가 뿐만 아니라 "영국 국가"도 한국 찬송가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피난처 있으니"라는 노래 제목으로 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종종 불려지고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들어보시죠. 이왕이면 오르간으로요.
하긴 우리도 안익태가 작곡한 한국 환상곡 선율이 애국가로 공식 지정되기 전까지 애국가의 가사에 스코틀랜드 전통 민요인 "석별의 정 (Auld Lang Syne)" 의 멜로디에 가스를 붙였다고 하지요. 독립군들은 조국을 그리며 이 이렇게 불렸다고 하더군요. 만약 이를 스코틀랜드인들이 들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국가(國歌)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 글을 쓰면서 그 동안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국가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문득 든 생각은, 우리는 일본국가의 가사내용이나 멜로디를 잘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일본이라면 싫어하는 우리가 과연 일본의 국가나 그것이 왜 일본 사회 내에서도 논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지 한 번 반성해 봅니다.
BBC에서는 요즘도 끊임없이 2차 대전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냅니다. 처음에는 전쟁에 이긴 나라이기도 하고 전쟁 역사를 좋아하는 영국인들이라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드신 영국인들에게 독일은 아직도 공포의 대상이자 신뢰할 수 없는 나라이네요. 일반 영국인들도 독일인의 기술력과 준법의식 및 성실함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더욱 강력해지는 독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뜬금없는 결론입니다만, 애국가를 좀 더 사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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