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품절녀님이 바쁘신 관계로 제가 또 글을 써야 될 것 같습니다. 품절녀님 글을 기다리셨던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어제 오후에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간만에 여유를 느꼈지요. 원래는 조용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보고 싶었던 책을 읽고 싶었는데요, 날씨가 너무 안 좋은 바람에 그냥 집에서 쉬었답니다. 이번 주까지만 쉬고 이제 슬슬 다른 일을 준비해 봐야 할 듯 합니다.
올해 2014년은 영국인들에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해인 듯 합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World War I)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지요. 벌써부터 영국 BBC에서는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부터 조금씩 읽고 있는 책도 유명한 역사학자인 닐 퍼거슨(Niall Ferguson)의 The Pity of War (전쟁의 비애) 입니다.
아직 몇 장 읽지 않아서 말하기 어렵지만, 이 젊은 역사가는 1차대전이 우리(유럽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 비참하고 부끄러운 역사라고 정의하는 듯 합니다. 하긴 1916년에 벌어진 솜전투 (Battle of the Somme) 첫날에만 영국군 5만 8천명이 다치거나 사망했습니다. 약 4개월 반에 걸쳐 벌어진 이 전투에서 영불 연합군은 고작 12km만 전진했을 뿐인데, 양쪽의 사상자는 무려 100만 명이 넘었을 만큼 치열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반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오늘 날 한국군 (60만 명)보다 더 많은 병사들이 쓰러져 나간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영문 서적을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을 "The Great War" 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Great의 의미는 “위대한”아닌 “엄청난”이란 의미일 듯싶네요.
지난 월요일 근처 중고 서점에 갔다가 득템한 한 권당 3,000원 책입니다.
이 엄청난 전쟁은 수많은 전쟁 사상자를 낳은 것은 물론이고 사회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가 주목한 변화 중 하나는 "여성인권의 향상" 입니다. 야만적인 전쟁은 수많은 남자들을 무의미하게 사지로 몰아 넣은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능력이 남성 못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여성의 권리 향상을 운동은 이미 이전 19세기부터 있어왔습니다. 특히 정치적 권리 (참정권과 피선출권 등)를 얻고자 많은 선구자적인 여성들이 노력을 해 왔었지요. 뉴질랜드와 같이 아주 일부 국가 – 이 때까지도 영국의 식민지이기는 했습니다 – 는 이미 19세기에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하였지만, 대부분 서구 국가에서 여성은 정치에서 소외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9세기를 통틀어 영국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여성은 오직 빅토리아 여왕 (재위 1937-1901)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앞서 말씀 드렸듯이 국가 총력전 형태로 진행된 전쟁은 유럽 각국의 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버렸습니다. 국가 시스템 자체가 전쟁을 위해서 돌아가게 된 것이지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남자를 전선으로 보내야 했을 만큼 전선의 사정은 급박했기에, 유럽의 국가들은 귀족이든 공장 노동자이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남자라면 모두 징집 대상이 되었지요. 바로 남성의 빈자리를 여성이 채우게 된 것입니다. 중산층 이상,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여성들은 사무직으로, 노동자계층의 여성은 군수공장으로 가서 총과 탄약을 만들었지요. 특히 무기 공장에서는 폭발사고도 종종 일어나 희생도 컸었다고 합니다.
(출처: http://www.huffingtonpost.com/tove-hermanson/women-pants-politics_b_541555.html)
1918년 공장에서 비행기 엔진 부품을 만드는 영국 여성들
기존에 남성들이 하던 일들을 거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체하게 됨으로써, 직업에서의 남녀 구분이 점차 무의미해지게 된 것이지요. 여담입니다만, 이러한 여성 근로자들을 위해서 보급형 생리대가 개발되었다고도 합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커질 수 있었던 사회적 토대입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전쟁 중에도 사회적/정치적 권리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을 했고, 결국 전후 영국 정부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곧 여성 의원도 배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우리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1948년)과 함께 제정된 헌법에 성별에 구분 없이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였습니다.
덧붙여서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 패션과 헤어 스타일까지도 전쟁이 바꿔 놓았다는 것입니다.
"The Cycle Hut in the Bois de Boulogne" by Jean Beraud, c. 1901-10
위 사진과 비교해 보면, 여성들이 입었던 풍성한 무릎 길이의 바지가
전쟁 이후로는 남성들이 입는 바지처럼 통이 좁아지면서 길어졌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에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특징은 바로 보이쉬한 숏컷과 바지 패션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성적인(masculine) 룩이 선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잡지 Life에서는 검은색 아이섀도와 가늘고 기다란 아이라인, 빨간 립스틱에 숏컷을 한 모델 사진들이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남자 (품절녀님 남편) 이지만 여성 인권 발달의 한 일면을 소개한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여성분들도 서구 여성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상식 정도로나마 알아 두시는 것이 좋을 듯 싶어서입니다. 물론,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해 이들 서구의 선각자들처럼 대 정부 투쟁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100년 전의 방법을 21세기에 적용시킬 수는 없겠지요. 다만, 오늘날 일부 여성운동이 일반 대중 및 여성들에게 조차도 큰 호응을 못 받는 것이 현실 임을 감안할 때, 다시 한 번 여성운동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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